영화 이야기

재심은 사법부에게 잘못을 사과할 기회를 주는 것
등록 2017.03.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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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자가 저지른 ‘실책’을 그의 추종세력은 실수라 둔갑시킨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대중을 선동한다. 면책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말도 안되는 나라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권력자와 결탁한 소수만이 행복하고 나머지는 점점 더 불행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국민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자신과 자신의 자식 세대가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한다. 


시시비비를 가려보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누구를 질책하는 것이 맞을까? ① 권력자. 실책을 저질렀으므로. 게다가 추종세력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책을 실수로 둔갑시키게 했으므로. ② 실책을 실수라며 꼬이는 몇몇 추종세력. 권력에 결탁해서 취할 사익 때문에 거짓인지 알면서 진실로 포장했으므로. 게다가 대중을 거짓 선동했으므로. ③ 대중.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 무관심도 죄이므로. ④ 대중 속의 일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해 때문에 동의했으므로.


위의 질문은 지난 2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재심>(2017, 김태윤 감독)을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내가 한 많은 생각 중의 하나다. 아마도 2017년 2월 현재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말도 안되는 시국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극장에서 상영 중일 때 한 번 이상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내겐 정말로 흔치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4일 만에 두 번째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사가 제공하는 보도자료 같은 정보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 본 것만 가지고 영화평을 쓰기는 어렵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였다. 토요일 조조였다. 영화평론가의 정체성을 탑재하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지루하게 광고를 바라보고 있던 내 시야에 오른쪽 두 열 앞의 30대 남자가 들어왔다. 큼지막한 팝콘 통이 보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팝콘을 즐기며 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했다. 


러닝타임 119분의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안에 불이 켜졌다.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하던 내 눈에 그의 팝콘 통이 다시 들어왔다. 팝콘은 거의 없어지지 않았다. 무고한 한 시민의 억울한 옥살이에 가슴 아파하고,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오용하는 폭력 경찰에 분노하고, 실책을 감추려고 힘없는 약자의 진실을 외면하는 야비한 검사에 치를 떨고, 속물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변호사에 감동하느라 팝콘에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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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은 실화인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사건의 재심 청구 과정을 영화화한 것이다.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한 차례씩 총 두 번에 걸쳐서 다룬 사건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녹록하지 않은 도전이다. 이 경우에는 억울한 청년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찾겠다는 명분은 있지만 관객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게 영화로서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김태윤 감독은 누명을 벗을 재심을 청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관객이 몰입해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게 직조하는데 성공했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추리를 섞으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스릴러 장르의 구조를 갖되 정보를 조금씩 더하거나 빈 정보를 채우는 방식으로 플롯을 구축했다. 이런 플롯 구조로 인해서 영화는 완급조절을 하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현재와 과거의 넘나듦은 주요 등장인물이 대화하다가 질문을 던졌을 때 그에 대한 대답으로 과거 사건의 시간 즈음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설정한다. 그것을 공식처럼 반복하여 관객을 편안하게 해준다. 두 명의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 변화는 연속되는 사건들을 매개로 서로 갈등하고 이해했다가 다시 갈등하고 마침내 공감하는 기승전결 구조 속에서 이루어져 설득력을 확보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살인 사건은 아주 성기게 묘사된다. 2000년 8월 10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약촌오거리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고 달리는 현우(강하늘)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찾아 담배에 불을 붙이던 그는 부딪칠 뻔 한 검은 실루엣의 남자를 피하느라 길바닥에 오토바이와 함께 나뒹군다. 관객에게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남자는 비척이며 도망간다. 살해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은 목격 상황을 설명하던 현우를 범인으로 몬다. 재판에서 그는 15년형을 선고받는다. 항소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다. 세상을 원망하며 술로 세월을 보낸다. 


이어서 이준영 변호사(정우)의 처지에 대한 정보가 몇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드러난다. 출세를 위해 큰 변론 한건을 노리던 준영은 신도시아파트 입주민들을 들쑤셔서 건설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걸지만 패하고 돈을 잃는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대형 로펌에 취직하기 위해서 대표가 원하는 무료 법률상담을 하러 갔다가 현우를 만난다. 사망한 택시기사에게 지급한 보험금 4천만원에 이자를 더한 1억 수천만원을 보험공단은 현우에게 요구한다. 구상권을 행사하는 공단에게 그 돈을 갚지 못하면 현우는 다시 감옥에 가야한다. 절박한 상황에서 현우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으려고 준영이 내민 손을 잡는다. 물론 이때까지 준영은 현우의 무죄를 믿기 보다는 로펌 취직을 위해 사건을 승소를 이끌려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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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준영이 변하는데 처음엔 머리에서 변하고, 그런 후에 마침내 가슴에서 변한다. 준영의 속셈을 읽었는지 재심을 거부하고 뛰쳐나간 현우를 뒤쫓아 가다가 살인 현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경찰이 작성한 사건 기록지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분노한다. 현우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수도 있겠다 싶어진 것이다. 이어 현우가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된 현장인 모텔에 동행한다.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곳에 도착했을 때 현우는 상처입은 작은 짐승처럼 떨면서 현장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고문이 그의 영혼에 남긴 상처와 그를 절망의 나락에 주저앉힌 누명의 억울함이 온전히 준영의 가슴에 박힌다. 현우의 아픔에 공감한 준영은 현우를 끌어안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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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건 담당 검사는 자신의 실책을 감추려고 재심 개시를 방해하고 돈으로 재심 포기를 종용한다. 그러나 현우와의 만남을 통해서 달라진 준영은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분투하여 재심을 허가받는다. 재심 재판장에서 준영은 말한다. 자신이 재판장에 나온 이유는 현우의 변호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고. 15년 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나온 것이라고. 

 

다시 글의 서두에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백번 양보해서 실책이 아니라 실수라 치자. 그 경우에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잘못을 사해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가해자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아니,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한번 더 잘못을 더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염찬희 회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