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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아흔 살의 사랑은 어떤 느낌일까
[방송모니터위원회]2017 EBS 국제다큐영화제 수상작 소개
등록 2017.10.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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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총 24개국 70편을 상영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14회를 맞이한 EIDF는 ‘조용한 흥행’을 거듭하며 이제 세계적으로 명성을 인정받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EIDF는 세계 유수의 다큐멘터리를 EBS 스페이스홀 등 여러 오프라인 상영관에서 상영함과 동시에 EBS 종일편성으로 각 가정에서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웹상에서도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전용 VOD 서비스를 제공하여 시공간의 제약 없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죠. 이는 교육전문 공영방송인 EBS가 아니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행사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EBS가 교육 공영방송으로서 담당하고 있는 사회 교육 및 교양 분야에서도 EIDF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EBS가 단순히 청소년의 학습 전문 방송이 아닌 교육전문 공영방송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EIDF와 같은 사업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가치를 지닌 영화제이지만 지난 2008년, EBS는 EIDF 담당PD를 타부서로 발령 내고 EIDF의 대폭 축소를 감행한 바 있습니다. 당시 언론계와 시민사회는 EBS 경영진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또한 다큐멘터리 장르의 대중적 인기가 비교적 떨어져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상존합니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온 EIDF는 꾸준히 규모를 확대하며 세계 속 다양한 시선을 시민들과 공유했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굴하지 않고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새삼 되새길 수 있는 영화제라 할 수 있습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EIDF와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2017년 EIDF 수상작 중 하나인 프랑스 영화 <아흔 살 소녀 블랑슈>를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올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년의 사랑’을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어떻게 된 거야? 블랑슈가 고백했잖아”
영화를 보는 내내 물어야 했다. 과연 ‘블랑슈의 사랑’이 이뤄질까, 최대 관심사였다. 블랑슈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은 예상 외로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나이가 92세라는 사실과 그녀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상황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흔 살 소녀 블랑슈> 속 블랑슈는 이름 그대로 블랑슈였다. 다른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 없는, 환자도 노인도 아닌 한 명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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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춤 출 때는 어때요?” “그건 꿈만 같아요.”
다큐멘터리 영화 <아흔 살 소녀 블랑슈>는 노인 요양병원 ‘샤를르 푸아’에서 시작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후, 몸이 나른해지는 그 시간에 한 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의 이름은 ‘티에리 티유 니앙’,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 온 안무가다. 그는 춤을 춘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 손을 마주잡은 사람, 블랑슈 모로. 그녀도 춤을 춘다. 다리를 구부리거나 고개를 든다. 하늘은 자몽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마 블랑슈의 사랑도 그 때 번진 것으로 보인다.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보편적인 감정이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사랑을 이루고자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많은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은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다. 인간의 수는 사랑의 수와 같다. 보편적인 동시에 다양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은 어떨까. 자유롭게 사랑하고 있을까. 영화 <아흔 살 소녀 블랑슈>는 그들의 사랑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보통 기억하는 노인의 사랑은 인생의 황혼기, 정 때문에 단지 함께 사는 노부부의 모습 정도이다. 3년 전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애틋했지만 관객에게는 노부부의 ‘사랑’보다는 그들의 삶 자체가 주는 파장이 더 컸다. TV, 신문, 책, 그 어디에서도 노인의 사랑을 찾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노인의 사랑’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블랑슈의 사랑이 반가운 이유다. <아흔 살 소녀 블랑슈>는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노인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랑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흔 살 블랑슈의 설레임 가득한 그 눈빛에서, 우리는 노년의 사랑이 지닌 특별함이 아닌 인간의 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보편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끊임없이 당신을 생각하는 게 유일한 낙일 거예요”
블랑슈는 그와 춤을 춘다. 자신을 믿으라는 남자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눈을 감는다. 몸이 들리기도 하고 빙그르르 돌기도 한다. 그와 함께 춤추는 시간은 곧 블랑슈의 일상이 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오후에 그를 만났듯이, 평소와 같이 춤을 춘 오후에 블랑슈는 드디어 고백을 한다. 그 담담한 고백처럼 블랑슈는 사랑을 한다. 전혀 어색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런 사랑을 한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고백의 결과는 살 떨리는 찰나로 다가온다. 관객은 어느새 ‘아흔 살 노인’ 블랑슈가 아닌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감정에 동화된다. 내레이션 한 마디 없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진 힘은 바로 여기 있다. 보편적인 우리 모두의 감정을 확인하는 평범한 일을, 이 영화는 특별한 계기로 만들어 준다. 바로 ‘아흔 살 소녀 블랑슈’를 통해서 말이다.
 
문의 이봉우 선임활동가 (02-392-0181)  정리 이정진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