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법률자문 회신서 전문 공개 등 투명한 정보공개 나서야

방통위, 종편 미디어렙 위법 ‘셀프 감사’ 꼬리 자르기 안 된다
등록 2018.04.1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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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허가·재허가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이나 봐주기가 있었는지 살피기 위해 내부 감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방통위는 지난해 지분 소유제한 규정을 위반한 TV조선, 채널A, MBN 미디어렙을 재허가 해줬는데, 이 중 TV조선과 MBN미디어렙은 2014년 최초 허가 당시에도 지분 소유제한 규정을 위반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이들 종편 미디어렙사에 대해 미디어렙법에 따른 허가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는 대신, 시정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뒤늦게야 이를 인지했기 때문이란다. 왜 위법을 행한 종편 미디어렙을 허가·재허가 했는지, 그동안 왜 아무도 위법을 인지 못한 것인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등에 대해 방통위는 일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종편과 얽히는 순간마다 방통위는 왜 이장폐천(以掌蔽天)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가. 답은 간명하다. 네 개의 종편을 허가한 것부터가 무리수였기 때문이다. 태생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기에 이들 종편을 생존시키기 위해선 수많은 봐주기와 특혜가 필요했다. 지난해 재승인 심사에서 기준 점수를 채우지 못한 TV조선에 ‘조건부 재승인’을 해준 게 대표적이다. TV조선이 방송 사업을 지속하기에 능력이 부족한 사업자라는 결론을 내고서도 갖가지 이유를 붙여 연명시킨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그간 종편과 관련한 숱한 ‘밀실’·‘특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방통위에 대한 ‘외부 인사 중심의 성역 없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슬그머니 진행하는 ‘내부 감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벌써부터 담당자의 ‘과실’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허가 신청서에 특수관계자 현황 등 표기 항목 부재…처음부터 ‘구멍’ 심사

민언련은 종편 미디어렙 허가·재허가와 관련해 방통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최근 일부 자료를 우선 전달 받았다. 그렇게 공개된 자료만 봐도 종편 미디어렙 허가·재허가와 관련한 방통위의 행정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자료 확인 결과 방통위는 2014년 허가 당시 주주 구성의 적격성 등과 관련해 종편 미디어렙사들로부터 어떤 자료도 제출받거나 보고받지 않았다. TV조선과 채널A, JTBC 미디어렙 허가 당시인 2014년 2월 28일과 MBN 미디어렙 허가 당시인 2014년 11월 4일 심사위원회에서 보고된 목록은 ‘-­’으로 표시돼 있었다. 심사위에 제출된 관련 자료 자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종편 미디어렙사에 대해 미디어렙법 제12조(결격사유), 제13조(소유제한 등)에 위반되는 부적격 신청법인은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민언련은 방통위에서 종편 미디어렙의 위법을 인지한 후 법무법인에 의뢰한 법률자문과 관련한 일체의 자료 공개를 청구했는데, 방통위는 자신들이 작성한 법률자문 의뢰서만을 공개했다. 이 중 2017년 12월 13일에 작성한 법률자문 의뢰서에는 TV조선과 MBN 미디어렙이 최초 허가 시점부터 지분 소유제한 규정을 위반한 데 대해 미디어렙 법 제11조에 따른 허가 취소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질문하면서 방통위는 ‘종편PP 미디어렙 허가 신청 양식에 주주의 특수관계자 현황, 소유제한 위반 여부 등을 표기하는 항목은 없었다’고 밝혔다. 위반 시 사업의 취소까지 가능할 만큼 중요한 사항에 대한 심사 항목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송사가 광고를 직접 판매하지 못하게 하고 광고판매를 대행할 별도의 회사(미디어렙)를 설립하도록 강제한 미디어렙법의 취지는 방송의 제작·편성에서 광고 영업을 분리하기 위함이다. 대기업이나 일간신문, 뉴스통신사 등의 특수 관계자의 미디어렙 지분 소유를 일정비율 이하로 제한하며 지주회사와 광고대행자는 아예 지분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도 방송의 제작이나 편성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방송 제작·편성의 독립은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중삼중의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소유 지분 제한은 미디어렙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핵심 조항인데 점검할 심사 항목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허가·재허가는 사무처 공무원들의 실무 점검과 방통위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한 심사위원회의 심사뿐 아니라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방통위원들의 의결을 거친다. 2~3기 방통위에서 허가에서 재허가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복했는데 어느 누구도 핵심 점검 사항 중 하나인 소유제한 위반을 살필 자료를 제출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걸 어떻게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MBN 미디어렙 최초 허가 기간 만료 이틀 후 법률 자문…명분쌓기용?

이뿐만이 아니다.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자료를 검토할수록 방통위가 MBN 미디어렙 최초 허가 기간 동안의 지분 소유제한 규정 위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던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 2월 방통위는 TV조선과 MBN 미디어렙에 시정명령을 내리는 데 그치면서, 최초 허가를 내주면서 인정한 유효기간 3년 내에만 행정처분이 가능하다는 법률 자문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TV조선 미디어렙은 최초 허가 기간이 만료된 뒤에야 방통위가 이 문제를 인지하여 허가 취소를 검토할 시기를 넘겼기 때문에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MBN 미디어렙 재허가에는 이 변명조차 통할 수 없다. MBN 미디어렙의 문제를 재허가 이전에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2월 21일 방통위 전체회의 당시 사무처의 보고 자료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지난 2월 사무처 보고 내용에 따르면 방통위가 일부 미디어렙사의 지분 소유제한 규정 위반 사실을 처음 인지한 시점은 미디어렙사의 영업보고서를 검증하던 2017년 6월이었으며, 전체 종편 미디어렙사의 주주현황을 조사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건 같은 해 8월이었다. 그런데 방통위가 법무법인 등에 처음으로 MBN 미디어렙 관련 법률자문을 의뢰한 시기는 MBN 미디어렙 최초 허가 기간 만료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7년 11월 29일이었다. MBN 미디어렙을 비롯한 종편 미디어렙사들의 지분 소유제한 규정 위반 사실을 8월에 확인하고 그해 11월 27일까지 MBN 미디어렙 최초 허가기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법률자문 의뢰는 최초 허가기간 만료 이틀 후에야 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방통위에서 최초 허가 만료 후에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법률적 판단을 이미 해놓고 명분 만들기 차원의 법률자문을 진행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유가 종편 미디어렙의 위법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고 두 미디어렙사를 살려주기 위한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방통위는 문제를 알고도 왜 즉각 법률 자문을 의뢰하지 않았는지 답변해야만 한다.

 

종편 미디어렙 위법 고의성 조사 내용 없는 법률자문

또한 방통위는 법률자문 과정에서 종편 미디어렙들의 지분 소유제한 규정 위반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전제를 교묘하게 깔아두는 모양새를 보였다.

일례로 2017년 12월 5일 방통위의 법률자문 의뢰서는 지주회사와 광고대행자의 미디어렙 지분소유 금지 규정 위반에 대한 내용으로, TV조선 미디어렙의 위반에 대한 것이었다. 방통위는 미디어렙사가 2014년 2월 28일 최초 허가 시 제출한 서약서에서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고 서약사항을 위반하였음이 밝혀질 경우 허가 취소 등의 처분을 감수’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언급하며 ‘방통위가 위반 사항을 인지하지 못하고 허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렙법 제11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허가 취소 또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를 요청했다.

방통위는 지난 2월 21일 회의 당시 “고의로 숨겼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한데 고의로 숨기거나 누락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 같다”(김석진 상임위원), “서약서만으로는 행정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게 공통적으로 나왔다”(고삼석 상임위원)고 말했다. 고의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약서만으론 허가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법률 자문 결과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법률자문 의뢰서에선 방통위가 종편 미디어렙의 고의성 여부를 어떻게 조사했는지, 왜 고의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저 ‘방통위가 위반 사항을 인지하지 못하고 허가’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을 뿐이다. 법무법인에선 방통위가 의뢰한 내용을 토대로 법률자문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방통위의 의뢰가 과연 정확한 법률자문을 도출하기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금과옥조처럼 내세운 법률 검토 관련 정보는 비공개 결정

더구나 방통위는 종편 미디어렙에 허가 취소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근거로 법률자문 결과를 내세웠음에도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공개를 요청한 법률자문 수행 법무법인명과 변호사 명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법률자문 회신서(본문)를 모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방통위는 비공개의 이유로 경영·영업상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방통위에서 의뢰한 법률 자문에 대한 회신 내용을 공개하는 게 해당 법무법인의 경영·영업상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국민의 세금으로 공적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을 구한 것이며, 법무법인은 법적 판단에 근거해 행정에 대한 자문을 했을 뿐이다. 대체 어느 대목에 해당 법무법인의 경영·영업상 비밀 등이 담겨있단 말인가.

더구나 정보공개법은 ‘위법·부당한 사업 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를 금지할 수 없는 예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종편 미디어렙이 지분 소유제한 규정을 위반해 주주구성을 한 것은 방송광고 시장의 공정 경쟁과 거래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로, 이는 공익성과 공공성에 기반한 방송을 시청할 국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일이다.

민언련은 현재 방통위의 비공개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를 신청했다. 방통위가 이제라도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을 하길 촉구한다. 방통위가 깜깜이 행정이 될 수밖에 없는 내부 감사를 고수하며 실무자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 이는 방통위 스스로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개선할 능력과 의지가 없는 조직임을 실토하는 것이다. 만약 방통위가 계속해서 또 하나의 ‘종편 봐주기’ 의혹을 늘려나가는 부적절한 행태를 계속한다면, 민언련은 국민감사청구 등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끝>

 

4월 1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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