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_영화이야기|<콜 미 바이 유어 네임>·<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첫사랑
등록 2018.05.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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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내가)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던 상대가 누구였는지 여전히 기억한다. 첫사랑은 첫 번째 사랑이라기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사랑이다. 언젠가 술 취한 밤 전화 걸어 묻고 싶었다. ‘우리는 해피엔딩’이었는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늘 궁금했던 '사랑은 어떻게 상대방에게 닿을지' 해답을 알려준다. ‘사랑은 길이 없어도 전속력으로 닿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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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올리버는 저보다 더 나은 사람 같아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에게 올리버(아미 해머)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다. 내 안에 나를 밀어내고 완전히 자리를 차지했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 별장에서 열일곱 살 엘리오는 부모님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다. 어느 날 고고학자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 연구를 돕기 위해 스물네 살 올리버가 찾아온다. 그가 등장한 이후 엘리오는 쉼 없이 흔들렸다. 설레고 기쁘고 두렵고 행복하고 불안한 감정. 오묘하게 뒤엉킨 감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랑이었다. 영화는 2007년 안드레 애치먼이 발표한 <그해, 여름 손님 Call me by your name>을 각색했다. 원작에선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탈리아 소년과 미국에서 온 철학 교수가 주인공이다. 원제 'Call me by your name'은 영화에서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에서 흐른다. 실은 엘리오 혼자 가슴앓이한 게 아니었다. 엘리오를 보자마자 올리버 역시 사랑에 휩싸였고 몇 번 조심스럽게 신호를 보냈다. 엘리오가 눈치채지 못하거나 오해했을 뿐.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로맨틱 밀어 같기도 주문 같기도 한 고백은 반으로 나뉘어 헤매던 두 마음을 드디어 하나로 묶는 서약이었다. 감독은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때 우리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엘리오는 상심했다. 당장 눈앞에 사랑하는 이가 없으니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엘리오 가족은 다시 크레마 별장에 왔다. 아버지 펄먼이 아들 엘리오를 위로한다. 부모님은 이미 두 사람 관계를 알았다. 아들에게 건넨 따뜻한 위로이며, 자신에겐 짙은 미련과 아쉬움이다.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이 단 한 번 주어지지. 마음은 갈수록 닳아 헤지고 몸도 마찬가지야. 시간이 흐를수록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져. 지금 너의 슬픔 그 괴로움을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영화 마지막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엘리오는 벽난로 모닥불을 바라보며 한참을 흐느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엘리오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슬픈 환희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처음 마주한 소용돌이에서 삶에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겪은 엘리오, 엔딩에 흐르는 OST가 쓸쓸하다. 수프얀 스티븐스가 부른 ‘Visions of Gideon’.


나는 당신을 마지막으로 사랑했어요. I have loved you for the last time.”
이건 그저 영화속 장면인가요? Is it a video?”


이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전작 <아이엠 러브, 2009>, <비거 스플래쉬, 2015>를 잇는 '욕망 3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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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사랑에 같은 모양은 없다.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목소리를 잃은 그녀는 고아로 자랐다. 아기 때 어느 강가에서 발견했다. 섬세한 눈빛과 따뜻한 숨소리로 내면을 표현한다.


어느 날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더그 존스)가 수조에 갇혀 실험실에 왔다. 엘라이자는 왠지 알 수 없는 생명체에 이끌렸다. 남미 아마존 원시 부족이 신으로 추앙했던 생명체는 지능, 공감 능력이 있다. 엘라이자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엘피판을 틀어 생명체와 교감을 나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먼저 우주로 진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1960년대. 실험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생명체를 해부해 우주 개발 연구에 활용하려고 한다. 계획을 눈치챈 엘라이자는 생명체를 데리고 실험실을 탈출한다.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란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기. 사실 이 영화는 첫사랑을 지배하는 복잡다단한 감정보다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말하는 ‘사랑’ 정의도 명쾌하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부드럽지만 우주에서 가장 강하고 가변성 있는 힘이기도 하다. 사랑 또한 그렇지 않은가? 여성이나 남성, 기타 생명체 등 사랑을 어떤 모양에 집어넣건 사랑은 바로 그것의 모양이 된다.” 감독은 엘라이자와 괴생명체 관계를 통해 이념, 인종, 종족, 성적 취향 등 흔하고 뿌리박힌 편견과 차별, 증오를 초월하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에서 ‘물’과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엘라이자가 퇴근길 버스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을 어루만지는 장면은 지금껏 빗방울 씬 중에 가장 아름답다. <킹스 스피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색계>의 음악을 연출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감독은 두 주인공에게 음악색을 선명하게 입혔다. 엘라이자는 흥겨운 리듬 왈츠에 휘파람, 괴생명체는 플루트를 사용해 맑고 투명하게 움직이는 물의 본질을 표현했다.


내내 흐르는 메인 테마곡 ‘The Shape of Water’에는 플루트 12대가 합주했다.


영화 엔딩에서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가 읊조리는 시 한 편이 이들 사랑이 영원할 거라 예상한다.


그대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그대가 내 곁에 있음을 느끼네.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두 눈을 채우고
어디에나 있는 그대만이 내 마음을 겸허하게 하네.

 

김현식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