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언론의 선정적 보도 지양해야

스쿨미투 보도, ‘페미니즘 교육’을 말해야 한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18.11.14 11:15
조회 435

지난봄 경의중앙선 전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근 시간이 지난 오전, 승객은 많지 않았다. 60~70대로 보이는 남성이 연신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주변 사람 모두가 그를 힐끗거렸다. 마침내 전화를 끊나 싶었더니 다른 누군가에게 또 전화를 건다. 똑같은 말을 더 크게 한다. 승객들은 이제 대놓고 그를 쳐다보았지만 누구도‘어르신’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다른 칸으로 옮겨갈까 생각하는 순간, 앳되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아유~ 시끄러워라~.” 바로 내 옆에 있던 젊은 여성이었다. 짧은 적막 속에 승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중년들은 민망해하며 눈 둘 데를 찾지 못했고 젊은이들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어르신’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단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 여성은 주위 반응에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고 두 정류장을 더 가서 바쁜 걸음으로 내렸다. 

 

‘조용히 해달라’가 아니라 그냥 시끄럽다는 ‘사실’부터 말하기.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옆 칸으로 피해갈 궁리나 했던 나는 당황했다. 아, 저럴 수도 있구나. 요즘 젊은 여성들의 거침없는 태도에 계속 놀라고 있다는 선배 여성운동가의 말이 떠올랐다. 할 말을 하고 필요하면 낯선 방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즈음 ‘스쿨미투’운동이 화제가 되고 있던 터라 세대의 당찬 변화가 이래저래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이제 참지 않는다, 말한다….  

 

광장으로 나온 ‘스쿨미투’ … 그들은 말한다
지난 3일, 잠시 잊고 있던 스쿨미투를 다시 접했다.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광화문에서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이었다. 스쿨미투가 시작된 것이 지난 4월. 교육부에 따르면 그동안 학생들의 제보가 나온 학교는 65곳에 이른다. 그러나 대다수 학교들이 사태를 어물쩍 넘겼고 이 과정에서 2차 가해도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미온적 대응에 청소년과 스쿨미투 지지 단체들은 광장으로 나와 목소리를 냈다.

 

이날 참가자들은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을 증언하고 성범죄 교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요구했다. 나아가 단순히 가해자를 미워하고 처벌하는 것을 넘어 성차별과 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인 페미니즘 교육 시행 △학생들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도록 2차 가해 중단 △학내 성폭력 전국 실태조사 △성별 이분법에 따른 학생 구분‧차별 금지 △사립학교법 개정과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민주적 학교 조성 등 5개 요구안을 내놓았다. 

 

경향신문, KBS, 연합뉴스 등 여러 언론이 이날 집회를 다뤘고, 참가자들의 증언과 요구를 전했다. 당국의 엄정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언론이 스쿨미투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일부 기사의 경우 참가자들의 핵심 요구보다 ‘여자는 아프로디테처럼 쭉쭉빵빵’, ‘허리 잘 돌려야’ 같은 교사들의 성희롱 발언을 제목으로 부각했다. 언론이 스쿨미투마저 선정적으로 다루는 게 아닌지 지켜볼 대목이다. 

 

‘페미니즘 교육’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스쿨미투가 주장하는 페미니즘 교육 등 근본 대책에 대한 적극적인 공론화 노력도 필요하다. 교직원들 다수가 성차별이나 성범죄에 대해 둔감했던 시대를 살아왔고, 체계적인 성평등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학생과 교사, 학교 구성원 모두가 성평등과 상호존중의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솔직히, 교내에서 벌어지는 성차별과 성범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적어도 성차별은 ‘일상’이었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는 따위의 외모 품평, 시집 잘 가는 게 최우선이니 남자에게 사랑 받게 행동하라는 훈계, 바지를 허용하지 않는 규율, 적성과 관계없이 ‘여자에게 딱’이라며 특정 직업을 권하는 진학지도 등등.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차별이 문제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은근슬쩍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일삼는 교사가 있으면 ‘좀 이상한 사람’ 정도로 넘기고 알아서 피했다. 심지어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성희롱을 ‘편애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우리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차별이고 폭력인지, 그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행히 2018년의 청소년들, 10대 여성들은 성차별과 성범죄를 말하고 나섰다. 이것만으로도 침묵하고 피해왔던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한 걸을 더 나가 대책까지 내놓았다.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언론도 눈치를 살피는 예민한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이란 말에 지레 겁먹고 침묵해서는 곤란하다. 누구나 성(gender)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를 배우는 것이 핵심이다. 언론의 스쿨미투 보도가 단순 전달에 머물지 말고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사회적 토론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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