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책이야기] 언론은 그 나라 시민의 수준을 닮는다 <뉴스와 거짓말>
등록 2019.03.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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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거짓말 정철운 지음 인물과 사상사.jpg

《뉴스와 거짓말》(정철운, 인물과사상사, 2019)이라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언론을 감시하는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다. 책에 나오는 언론의 오보, 조작, 왜곡 보도 사례의 대부분은 <미디어오늘> 기자로서 썼던 기사들이다.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만 보면 한국이 금방 망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018년 8월 24일 보도한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라는 제목의 기사처럼 최저임금 때문에 서민 고통이 가중되고 경제가 망해 가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최저임금이 올라 삶이 나아진 노동자들 인터뷰는 없고 특이한 경우의 자영업자 사례만 든다. 사실 그 자영업자도 익명이라 독자들은 누군지 잘 모른다.

수구 보수 언론들은 숱한 가짜뉴스, 왜곡된 뉴스, 집요하게 비틀고 교묘하게 짜깁기한 뉴스들을 생산한다. 그중에 <조선일보>는 자칭 ‘1등신문’답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는 이 <조선일보>가 “유독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관련된 오보를 자주 냈다”고 꼬집는다. 2015년 4월 30일자 기사에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참여연대 현직 공동대표라고 보도해 놓고 하루만에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라고 정정했다. 2015년 11월 7일자 기사엔 ‘이석태 세월호 특조 위원장이 받은 8개월 치 급여가 ’세전 1억 1,689만 원, 한 달 1,461만 원‘이라고 보도했다. ’세월호 특조위가 혈세를 펑펑 낭비하고 있다‘는 프레임으로 귀결되는데, 일주일 뒤 “’8개월 치 월급은 세후 7,550만여 원’이며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는 보도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힌다. 의도적으로 오보를 내고 정정하고 있다고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독자들은 ‘바로 잡습니다’라는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나온 기사는 보지 않는다. 먼저 낸 오보가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언론은 신문뿐만 아니라 영상도 조작한다. KBS는 2012년 유치원 교사의 원생 학대 영상으로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법정에서 가려진 진실은 달랐다. KBS가 영상을 두 배로 빠르게 재생시켜 교사가 원생에게 폭력을 가한 것처럼 보도하는 등 허위 리포트를 내보냈던 것이다. 법원은 정정 보도와 함께 4,0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영상을 조작한 방송은 또 있다. 저자는 ‘21세기 최악의 조작 방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른바 ‘찐빵 소녀’ 사건이다. <SBS> ‘긴급출동 SOS24’는 제작진이 방송을 만들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가두기도 했고, 인사하느라 꾸벅 고개를 숙인 영상을 빠르게 몇 번 돌려 굽실거리는 장면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SBS는 피해자 가족에게 3억 원 위자료를 물어냈지만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자들은 거의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긴급출동 SOS24’는 2011년 폐지됐지만 제작팀장이었던 허 아무개 PD는 최근까지 <TV조선> ‘시그널’에서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괴상한 보도 중 하나로 홍가혜 사건을 든다. 홍 씨는 해경 명예훼손으로 101일 동안 수감됐다. 언론의 허위, 왜곡 보도 때문에 인격 살인에 가까운 악플에 시달렸다. 홍 씨는 2015년 3월, 1심 명예훼손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2018년 6월 21일 홍 씨는 거짓 보도를 냈던 언론사에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냈고, 피고 <세계일보>, <스포츠월드>는 각 500만 원, <스포츠월드> 기자 김 아무개는 1,000만 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대체 이들을 보고 언론, 또는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언론의 심각성을 진즉 알고 있지만 《뉴스와 거짓말》 책을 읽으면서 새삼 분노가 일었다. <조선일보>는 2018년 7월 21일자에 고 노회찬 씨를 가리키며 ‘노동자 대변한다면서 아내의 운전기사는 웬일인가요’라는 칼럼을 실었다. 거짓말이었다. 20일 뒤 <조선일보>는 “사실을 오인해 고인과 유족,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상처를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며 지면 한구석에 사과했지만 노회찬 의원은 그 사과문을 볼 수 없었다.

노무현 정권 때 <SBS>는 ‘박연차 전 태양실업 회장한테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보도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거짓말이었다. 이인규 전 대검중수부장은 논두렁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열흘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SBS>는 아직도 건재하고 손혜원 의원 투기 의혹 등 검증되지 않은 의혹 보도를 일삼고 있다.

 

왜곡, 조작 보도는 가짜 뉴스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이 사회의 폐해가 너무 크다. 이런 허위‧날조 뉴스를 생산해 내는 찌라시 같은 언론을 법으로 처단하는 것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런 뉴스를 가려낼 줄 하는 시민의 성숙함이 있어야 언론이 바로 잡힌다. 그 나라 대통령 수준은 그 나라 시민 수준과 같은 것처럼, 언론도 그 나라 시민 수준과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을 언론사 지망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꼭 읽어야 할 까닭이다.

 

글 안건모 작은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