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여는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등록 2015.12.3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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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완기 상임대표

 

 

2015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매년 이맘때면 한 해를 돌아보면서 민주화와 언론개혁을 위해 새해의 희망과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론은 왜곡되고 오만한 정권의 독선과 독주가 끝 간 데 없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견제장치가 되어야 할 야권은 분열의 조짐만 보인다.


올 한 해에도 대한민국은 수많은 이슈와 사건들로 도전과 응전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더 척박해졌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그런 속에서 책임 회피는 우리 시대 기득권층의 일상적인 특권이 됐다. 메르스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은 것은 온전히 정부의 무능 때문이었는데도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박근혜 정권 핵심 인사들의 선거자금 비리가 죽음을 무릅쓴 한 기업인에 의해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폭로되었지만, 검찰은 이들 대부분을 무혐의 처리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야 합의까지 갔던 국회법 개정안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물거품이 됐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에 각을 세웠던 집권당의 원내대표는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끌려 내려왔다. 이제는 청와대의 일개 수석이 입법부의 수장에게 직권상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지시하는 세상이 됐다.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이념전쟁의 선전포고를 한다. 박근혜는 8·15광복절 기념사에서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슬쩍 바꾸더니, 마침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터뜨려 온 나라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국민을 ‘혼이 비정상’이라고 매도하면서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의 명단도 공개하지 못한 채 조작된 서명지를 ‘차떼기’로 운반하는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한다.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참지 못한 민중은 총궐기했다. 그러나 국민의 저항은 차벽으로 원천봉쇄되고 박 정권은 물대포를 직사해 무고한 농민 백남기를 사경으로 빠뜨렸다. 박근혜는 복면금지법, 테러방지법, 노동5법 등을 들이대며 국민의 기본권을 압박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전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참사의 비극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쥐어짠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가동되고 1차 청문회가 열려 참사의 진상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는 듯했지만 진실에 접근하는 데는 상당한 진통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영원히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청문회 증인들의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발뺌 발언이 대부분이다. 그 많은 증인 중에서 구조실패에 대한 양심고백이 나오지 않는 것은 비루하고 천박한 우리 공동체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고 했던 대통령 박근혜가 자신의 7시간 행적에 침묵하고 있고, 여권 추천의 특조위원들이 ‘대통령 7시간’을 사생활 침해라며 아예 특조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으니, 우수마발의 증인들이 양심 고백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며 국가는 또한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차벽과 물대포로 짓밟는 나라에서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는가. 약자를 짓밟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 번의 대선 승리로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 채 온갖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민주주의 체제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침몰하는 배 속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생명에 “가만 있으라” 하고 바라만 보았던 국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가. 무고한 국민을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은 국가를 국민은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집단 오보로 구조를 지연시켜 더 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것도 모자라 폭언과 막말로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언론은 우리 사회의 목탁인가 흉기인가.


이 모든 적폐는 결국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곡기를 끊고 저항하는 사람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우리가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짐승도 아프거나 죽어가는 무리 옆에서는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 어쩌다가 인간의 심성이 짐승보다 못한 지경으로 변했는지 그 본질과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총선이 있다. 정치환경의 변화가 우리 운동에 주는 영향이 적지 않고, 우리의 운동이 정치환경에 주는 영향 또한 분명하다.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 싶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뜬구름 잡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절망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으며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