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와 살인 사건의 연관성 밝힌 KBS
등록 2019.06.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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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9년 5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방송 부문에 KBS <뉴스9> 사회부 이슈팀의 <여성 살인의 전조(前兆) ‘스토킹’> 연속 보도를 선정했다.

 

2019년 5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방송 부문 심사 개요

수상작

KBS <여성 살인의 전조(前兆) ‘스토킹’>

매체: KBS <뉴스9>, 취재: 유호윤‧허효진‧이화진‧권준용 기자, 김유나 리서처

보도일자: 5/22~24

선정위원

공시형(민언련 활동가),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박진솔(민언련 활동가),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정수영(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조선희(민언련 활동가)

심사 대상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KBS<뉴스9>, MBC<뉴스데스크>, SBS<8뉴스>, JTBC<뉴스룸>, TV조선<종합뉴스9>(주말<종합뉴스7>), 채널A<뉴스A>, MBN<뉴스8>에서 보도한 뉴스

선정사유

KBS가 ‘조현병 범죄’로만 알려졌던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을 ‘스토킹 범죄’로 조명하면서 사건의 또 다른 본질을 공론화했다.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을 상세히 파고들어 ‘스토킹’이란 ‘전조’가 있었음을 짚은 것이다. 대부분의 보도가 사건의 자극적인 단면만 재생산하는 상황에서 KBS의 보도는 범죄의 구조적 원인과 근절 대책을 강구할 계기를 마련했다. KBS는 진주 사건에 그치지 않고 강서구 등촌동 살인사건, 데이트 폭력 살인 사건 등의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사건 발생 전 스토킹이 꾸준히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스토킹’이 이러한 여성 대상 강력 범죄의 전조일 수 있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지난해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진 살인․살인미수 사건 381건을 분석, 여성 피해자인 경우 30%에 이르는 사건이 스토킹 범죄 이후 발생했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관련 사건의 판결문 분석하고 KBS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스토킹 피해 사례 중 ‘반복적인 전화나 문자 연락’이 유독 많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 경찰마저 범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스토킹 행위들이 피해자들에게는 큰 공포가 되며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보여줬다. KBS는 처벌이 매우 경미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시급한 대책도 요구했다.

‘스토킹 범죄’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이를 강력범죄의 원인으로 짚는 분석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KBS와 같이 큰 파문을 일으킨 강력범죄로부터 ‘스토킹’의 위험성을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도출해낸 연속 보도는 드물었다. KBS 보도는 이후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 현상의 본질을 찾아 공론화해야 한다는 언론의 역할을 KBS가 충실히 이행한 결과이다. ‘정신질환자가 가해자인 사건’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건에서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점 또한 큰 성과이다. 이에 민언련은 KBS <여성 살인의 전조(前兆) ‘스토킹’>을 2019년 5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방송 부문에 선정했다.

 

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졌던 방화․살인 사건, 이른바 ‘안인득 사건’을 대부분의 언론은 ‘조현병 범죄’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당시 경찰에서 피의자의 조현병 전력을 조사 결과로 밝힌 데다 언론이 이를 조현병 범죄로 규정, 그의 정신 병력에 집중해 보도한 것이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날을 전후로 포털에 송고된 기사 수를 보면, ‘조현병 범죄’란 단어가 포함된 기사가 15배 가까이 늘었다. 2월 17일~4월 16일 사이엔 139건이던 것이 4월 17일~6월 16일 사이엔 2,133건으로 치솟았다. 의학계에서 ‘정신질환이 반드시 범죄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설명해도 이미 ‘조현병 프레임’은 견고했고 대중들도 ‘조현병 범죄’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KBS는 ‘스토킹 범죄’라는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안인득 사건을 더 깊게 취재해 ‘스토킹’이라는 전조가 있었음을 밝혔고, 다른 강력범죄까지 분석해 스토킹이 살인사건 전 하나의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꼬집었다. KBS의 보도는 ‘조현병 범죄’라는 프레임으로부터 범죄의 또 다른 본질로 시청자의 시선을 이끌었고 당사자에겐 일상의 공포인 ‘스토킹 범죄’를 공론화했다. KBS 보도 이후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터지면서 스토킹 범죄가 재차 사회 문제로 떠올랐는데, KBS가 선제적으로 이슈화한 공로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스토킹 범죄’를 꺼내다

KBS의 ‘스토킹 범죄’ 연속 보도는 진주 방화 살인 사건에서 시작했다. KBS는 이 사고로 숨진 이들 중 최 양 유가족의 증언과 해당 가족이 현관문 앞에 설치했던 CCTV 등을 토대로 이 사건이 가진 스토킹 범죄의 측면을 확인했다. 물론 해당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피해자들의 사연과 CCTV 화면이 보도되긴 했으나 이는 사건의 참혹성과 특이성을 보여주는 용도로 쓰였을 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보도에선 스토킹이 아닌 ‘조현병 범죄’라고 불렀다.

 

KBS의 첫 보도인 <쫓아오고 지켜보고안인득 스토킹범죄>(5/22 허효진 기자)에 따르면 가해자가 최 양의 가족을 찾아온 것은 지난해 2월부터다. 당시엔 최 양과 그의 큰 어머니 단 둘이 지내는 집에 찾아와 벌레를 던지지 말라는 황당한 항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해 9월과 올해 2,3월 계속해서 현관문에 오물을 뿌리거나 큰 어머니에 계란을 던지는 등의 스토킹을 일삼았다. 이후 최 양 가족은 문 앞에 CCTV를 설치했고 경찰에도 수차례를 신고했다. 그러나 스토킹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CCTV를 설치한지 한 달 후,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가해자의 난동이 이전부터 여러 번 발생했음은 기존 보도들을 통해 알려졌다. 사건 당시 KBS의 보도 <오물 투척폭행, 신고만 5대응은 부실>(4/17 박상현 기자)에 이런 사실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보도에선 “안 씨는 평소 다른 이웃과도 폭행시비를 자주 벌여왔고 승강기에 오물을 뿌리며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고만 언급했고 “경찰이 여러차례 아파트에 출동했”으나 부실한 대처 때문에 사건이 커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가해자에 대해 “2015년에 폭력혐의 재판에서 조현병 판정을 받아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던 점을 설명하고 경찰의 대처에 대해 “재물손괴로 1건만 입건했을 뿐, 조현병 이력은 몰랐”다고 짚어 특히 이사건을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범죄로 부각했다. KBS도 사건 당시에는 ‘스토킹’까지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KBS는 추가적인 취재를 통해 보도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의 괴롭힘이 얼마나 지속적이었는지 날짜와 기간을 통해 알렸고 특히 피해자 가족이 스토킹을 겪으며 ‘내가 타겟이 맞구나’, ‘그때부터 단 하루도 안 불안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다는 진술도 보도했다. 이미 조현병 범죄로 낙인찍힌 범죄를 다른 시선에서 보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정신질환 자체는 강력범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사건에 ‘조현병 범죄’라 이름 붙이는 언론들이 많다. 그 사이에서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는 KBS의 노력이 더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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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안인득 사건에서 스토킹이란 단서를 찾아냈다.(5/22)

 

 

법원 판결문 381건 분석한 KBS, 강력범죄와 스토킹의 연관성 밝혔다

KBS는 진주 방화 살인 사건에서 시작, 스토킹과 강력범죄와의 연관성을 다른 살인사건들에서 찾았다. <살인의 전조 스토킹얼마나 심각하나?>(5/22 이화진 유호윤 기자)에선 지난해 10월 강서구에서 벌어진 전처 살인사건과 지난 1월 관악구에서 있었던 여자친구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 또는 지인을 인터뷰해, 두 사건 모두 사전에 스토킹이 있었단 진술을 확보했다. 전처 살인사건의 유가족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보호받지 못했다’고, 여자친구 살인사건의 유가족은 ‘실제 폭행 또는 위협이 있었다면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실제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은 얼마나 될까. 스토킹이 살인이나 강력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을 설명할 통계 자료는 없다. 이에 KBS 이슈팀은 지난해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진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 381건을 분석해 통계 자료를 만들었다. 그 결과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 159건 중 48건(약 30%)에서 범행 전 스토킹이 포착되거나 의심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이 피해자인 사건의 경우 5%(219건 중 11건)만 스토킹이 발견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스토킹 범죄가 살인에 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연관성을 KBS가 발견한 것이다. 또한 KBS는 판결문 분석을 통해 사건 발생 전 “경찰에 신고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이 중 경찰의 신변 보호까지 받았지만 범행을 막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실제 사건에서 경찰 대응이 얼마나 미흡했는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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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판결문 분석 결과 여성 피해 사건의 30%에서 스토킹이 발견됐다.(5/22)

 

 

KBS 여론조사 결과…열 명 중 한 명 ‘스토킹 당해본 적 있다’

<‘나도 당했다스토킹 처벌 강화해야>(5/23 허효진 기자)에서는 KBS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스토킹이 일부만 겪는 고통이 아님도 짚었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천 2백여 명 가운데 133명, 즉 10명 중 한 명꼴로 ‘스토킹을 당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주변에서 스토킹 피해를 겪은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27.1%로 직접 당했다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직접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133명을 대상으로 스토킹 피해 유형을 조사한 결과, 가해자가 연락 없이 집이나 직장에 찾아온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나친 전화와 문자 연락, 미행이 뒤를 이었다.

 

여기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드러났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 상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된다. 경범죄처벌법 2장3조41호(지속적 괴롭힘)에 따르면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에 대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즉, 같은 행위가 지속적이고 반복되어야 입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KBS 여론조사 결과처럼, 실제 당사자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단순히 횟수나 지속성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연락 없이 근처에 찾아가거나 지나치게 연락하는 등의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범죄라고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랑하니까’, ‘연인이니까’ 등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에겐 스토킹 피해로 인지될 수 있고 또한 스토킹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KBS가 환기시켰다.

 

 

우선순위 미뤄진 스토킹 처벌법, 정부‧국회서 잠잔다

‘지속적 괴롭힘’의 범죄 요건이 성립하더라도, 처벌 수위 자체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끝으로 KBS는 <스토킹은 경범죄?처벌 강화 법안은 표류>(5/24 허효진 기자)에서 스토킹 범죄 처벌에 손 놓고 있는 정부와 국회를 짚었다. KBS는 먼저 “지난해 정부는 스토킹 처벌을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법안 발의를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지난해 5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기엔 △스토킹 범죄 전담 검사 지정 △사법경찰관에 긴급 조치 권한 부여 △벌칙 규정 등이 담겼으나 아직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KBS에 “입법예고하고 법제처 사전 심사도 의뢰했는데 다른 부처에서 의견 제출한 것도 있고 법제처에서도 의견 제출한 게 있어서 완전히 조율이 안 돼서…”라고 밝혔다. 20대 국회서 발의된 스토킹 관련 처벌법도 7건이나 되지만 한 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한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이 KBS에 한 말은 언론과 시민의 관심이 더욱 필요함을 깨닫게 했다. 그는 “스토킹에 대해서 의원님들 사이에 빠른 통과를 해야 하겠다는 인식의 공유가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라고 취재진에 답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오래됐다. 스토킹 관련 법안이 국회서 처음 발의되고 언론서 새로운 사회 문제로 지적하기 시작한 때가 1999년이다. 올해가 20년째임에도 사회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입법권과 법안 발의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와 정부는 스토킹처벌법을 우선순위서 미뤄놓고 있다. 최근 누리꾼과 시민들을 경악케했던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을 비롯 여성을 거주지까지 따라가거나 무작정 뒤쫓는 등의 사건이 최근까지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KBS가 스토킹 범죄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했으니 이제 나머지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 및 제도의 변화를 바라며 민언련은 KBS의 <여성 살인의 전조(前兆) ‘스토킹’>를 2019년 5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방송 부문에 선정했다.

 

 

<끝>

문의 조선희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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