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영화이야기] 다큐멘터리영화 ‘삽질’을 아시나요
등록 2019.11.26 18:13
조회 268

 

 

 

전 10년 차 영화 기자입니다. 리뷰, 인터뷰, 현장 취재 등 이 루틴의 나날 중 우연과 필연의 조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듀서를 맡게 됐습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삽질>은 저의 첫 작품입니다. 13년간 쌓인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약 2년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 기억을 소환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삽질 스틸 08.jpg

 

 

 

“대체 언제 적 이야기야 이미 끝난 거 아냐?”, “4대강 사업은 가뭄과 홍수를 막은 거 아냐?”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본격적으로 기획해 진행했을 때 많이 들은 말들이다. 벌써 지지난 정권인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일을 들춘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냉소는 덤이었다. 나 역시 이 영화에 결합하기 전엔 무관심에 가까운 쪽이었다.

 

 

내가 아닌, 그러니까 이 작품이 영화화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십수 년 전부터 그들은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담보로 돈 잔치를 벌이려는 MB 정부를 끈질기게 비판하고 추적해왔다. 13년, 그것도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닌 직업 기자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기자의 땀과 피가 담긴 결과물. 그 하나만으로 영화 <삽질>은 일단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4대강 사업의 시작과 끝을 본격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삽질>을 거칠게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는 일반 관객의 시간과 돈을 유혹(?)하기엔 다소 약해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는 어떨까. 국민 세금 22조 2천억 원. 2천억도 아니고 2조도 아니고 22조다. 그걸 5년 만에 대한민국 4대강 바닥을 뒤엎고 보를 세우는 등에 쏟아부었다. 사업이 마무리 단계였던 2012년 인구로 환산하면 갓난아기까지 포함해서 1인당 약 45만 원을 쭉 빨아먹은 셈.

 

 

이 역시 약해 보인다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한 국민과 전문가들을 국정원과 검찰을 동원해 사찰하고 강압 수사해놓고, 찬성하는 단체를 금전적으로 지원 육성하며 지금으로 치면 가짜 뉴스를 전국적으로 생산했다. 공사장 곳곳에서 작업 인부가 죽어 나갔지만, 책임자들은 하청업체를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급급했다. 결정적으로 4대강 사업에 찬성하고 지지한 사람들이 ‘모두’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교수로, 정치인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다.

 

 

그러니까 <삽질>은 망가진 강의 아픔과 함께 자연을 돈놀이 판으로 이용한 아주 악질인 권력자에 대한 고발이기도 한 것이다. 게다가 가까스로 구속된 이명박 씨마저 풀려나 있으니 말이다. 단 한 사람도 지금까지 처벌받지 않은 거의 완전 범죄다. 전 법무부 장관은 그의 아내와 딸에, 검찰 인력을 총동원해 먼지떨이 수사를 하더니 ‘굵직한’ 죄를 지은 자들에겐 오히려 솜방망이를 휘두른다. 대대손손 물려줘야 할 환경을 단 5년 만에 철저히 파괴했고, 비판하는 이들을 탄압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이런 사회를 우리가 원했던 건가. 잠시 분노와 허탈함을 접어두자. 솔직히 스스로를 돌아보면 <삽질>은 이젠 멸시와 조롱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기레기’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는 걸 고백한다. 어림잡아 5400여 건. 10년 가까이 영화 기자로 지내며 썼던 기사의 개수다. 그때는 매 순간 고비였고, 아주 가끔은 보람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참 멀리도 걸었다 싶다. 3일, 3달, 3년마다 위기가 온다는 ‘3의 법칙’도 무색해질 만큼 매너리즘에 빠졌던 무렵 덜컥하고 다가온 프로젝트가 바로 <삽질>이었다.

 삽질 스틸01.jpg

 

 

 

내 무관심에 대한 벌이었을까. 영화화를 진행하던 2년이라는 시간에 겪은 위기와 절망이 앞선 8년의 몇 배에 달했다. 계약 문제, 예산 문제, 편집과 자막 음향 오류 등 각종 기술 문제는 덤이었다. 그리고 개봉을 앞둔 지금은... 홍보 마케팅의 문제에 닿아있다. 영화가 ‘정치적’이란 이유로 이름 대면 알만한 영화 커뮤니티에서 이벤트 제안을 거절했고, 각종 영화 SNS 채널도 각종 이유를 대며 협업을 피하곤 했다.

 

 

‘아니,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 생각이 날 지배하기 직전이다. 답답한 마음에 지난 주말(9일)엔 지인과의 약속을 핑계로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혼자 영화 전단을 돌렸다. 내 안의 검열, 당신 안의 검열, 그들의 검열을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4대강을 파헤치고 뒷돈을 챙긴 자들이 부끄러움도 모른 채 심지어 떵떵거리는데, 심지어 4대강 찬성론자였던 고려대 곽승준 교수 같은 사람은 유명 예능 프로 진행자를 맡기도 했는데! 권력과 부를 지닌 이들이 기득권들인데 이들을 쫓은 영화가 정치적인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나에게 이 영화는 프로듀서 데뷔작이기 전에 기레기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발버둥이자, 나를 부끄럽게 만든 4대강을 지키고자 큰빗이끼벌레를 씹어 먹고, 온몸에 ‘녹조라테’를 뒤집어쓴 시민기자들에 대한 헌사다. 그래서 영화 <삽질>이 부디 '삽질'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 영화가 14일 개봉했습니다. 예매율이 높아야 상영관을 그나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대중적 셀링 포인트가 뭐냐고요? <자백> <공범자들>에 참여했던 정재홍 작가가 구성을 맡았습니다. 역대 최고 빌런인 MB가 여러 차례 나오고요. 또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대부분 악역들이 출연합니다.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과 16개의 대형 보 등. 세트 비용만 22조 원이 들어간 본격 고예산(?) 영홥니다!

 

 

이선필 오마이뉴스 기자

 

* 2019년 12월호 PDF 파일로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