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음악이야기] ‘클래식 콤플렉스’ 극복기
등록 2019.11.26 18:15
조회 236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어보자. 가브리엘 신부님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접경의 과라니족 마을에 선교를 갔다. 원주민들은 낯선 백인의 등장에 긴장하여 화살을 겨누며 접근한다. 신부님이라고 왜 두렵지 않겠는가. 그는 오보에를 꺼내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과라니족 사람들은 신부님이 자기들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마을로 안내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마음이 선하다. 누구도 해치지 않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세상에 좋은 음악이 더 많이 흐른다면 그만큼 증오와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https://youtu.be/n9g09MToUCU

 

 

클래식 하면 지루하다며 손사래 치는 사람이 많다. 가사도 없는 곡이 왜 이리 길까? 이탈리아말로 된 용어들, 생소한 악기 이름들, 작곡자와 연주자에 대한 정보까지 넘어야 할 벽이 하나둘이 아니다. 클래식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까지 준다. 바흐, 모차르트 들어도 좋은지 모르겠는데, 내가 무식한 게 아닐까? 모른다고 하면 창피하고, 안다고 할 수도 없으니 괴롭다.

MBC경남의 전우석 PD가 연출한 <클래식 콤플렉스>란 다큐멘터리가 있다. 전 PD는 “나는 클래식을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한 뒤 이 콤플렉스의 실체가 뭔지, 자신이 클래식 애호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러 직접 발벗고 나섰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에게 악기 가격을 묻는 등 황당한 질문부터 “클래식 음악이 왜 좋은가?”처럼 본질적인 질문까지,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스스로 ‘클래식 콤플렉스’ 치유에 나선 용감한 전 PD에게 시청자들은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누구든 귀에 익은 클래식이 몇 곡은 반드시 있다. 영화나 광고, 핸드폰 신호음, 지하철 안내멘트의 배경음악 등 우리는 매일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며 산다. 어떤 곡이 좋다고 느꼈고 주제가 기억난다면, 제목과 작곡자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두면 좋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이름, 취미, 식성이 궁금해지지 않는가?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클래식이란 게 재즈, 트로트 등 하나의 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음악으로 오래도록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검증된 음악을 통틀어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클래식은 역사 속에서 탄생하여 진화하고 소멸하는 수많은 음악 중 하나다. 클래식은 1600년 경 유럽의 인문 정신에서 탄생하여 시민혁명이 일어난 18세기 말에 정점에 도달했고 유럽 문명이 쇠락한 20세기에 황혼을 맞은 음악이다. 클래식의 역사는 약 400년 정도 된다. 하지만 클래식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요즘 우리가 듣는 음악들이 100년 뒤 살아남아서 여전히 사랑받는다면 그게 바로 클래식이 될 테니까. <가브리엘의 오보에> 같은 영화음악이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같은 팝송, 심지어 용재 오닐이 연주한 <섬집 아기> 같은 동요도 클래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0대 중반에 음악 취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이 든 뒤 클래식으로 취향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좋아한 음악을 계속 즐기되 조금 영역을 확장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클래식은 돈과 시간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든 유튜브, 팟캐스트, MP3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클래식이 특권층의 사치라는 시각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귀족과 성직자들이 지배하던 봉건시대의 잔재일 뿐이다. 음악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 사람이 음악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다. 이 시대, 클래식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벗이 되어야 한다.

나는 좀 특이한 클래식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 스스로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클래식은 ‘유한계층이나 즐기는 것’,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겐 사치스런 여흥’,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곤혹스런 상황에서 나를 건져 준 사람은 뜻밖에도 1989년 무렵 ‘노동자문화운동연합’ 의장이던 김정환 형이었다. 정환 형은 20권이 넘는 시집을 냈고, <클래식은 내 친구> 등 음악 에세이도 많이 쓴 우리 시대의 천재다. 어느 날 정환 형 집을 방문했다. 집 앞에 도착하여 번짓수를 확인하는 순간, 어디선가 모차르트 음악이 들려왔다. 아마 다른 집에서 나오는 소리겠지 했는데, 형이 문을 열어주는 순간 무지갯빛 폭포처럼 쏟아지는 음악,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장조였다! 잠시 넋을 놓고 음악을 듣다가 질문했다. “아니, 노동자문화운동 하시는 분이 모차르트가 웬 말이요?” 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노동자가 모차르트 들으면 안 되냐? 좋은 음악은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장조 K,216

바이올린 힐러리 한,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교향악단

https://youtu.be/N-mA9OMP3DE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2006넌 모차르트 책을 낼 때도 나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책의 머리말에 나는 “먹고 살기 힘든 때에 웬 모차르트냐, 거짓과 사기와 부패가 판을 치고 무감각과 무관심과 무례함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에 음풍농월이나 하고 있냐고 힐난하는 분이 있다”고 쓴 뒤 이렇게 덧붙였다.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그의 음악을 나누는 일은 나의 개성이자 ‘달란트’다. 나의 이런 특성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혹한 시대에 모차르트 책을 낸 것을 변명하는 말투였다. 모차르트 음악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백안시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나 또한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마술피리> 등 모차르트 오페라를 강연하며 “모차르트가 봉건 신분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용감하게 옹호했다”고 말하게 됐으니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2019년 12월호 PDF 파일로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