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책이야기] 일본의 양심, 우에무라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방법
등록 2019.12.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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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기자.jpg《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 2016)를 읽었다. 이 책을 쓴 우에무라는 1991년, 일본군 ‘위안부’를 〈아사히신문〉에 최초로 보도한 기자다. 그 뒤 일본의 수구 우익들한테 ‘날조 기자’로 낙인찍혀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날조 기자’로 찍히게 된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때 ‘여자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쟁터에 연행돼 일본 군인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강요당한 ‘조선인 종군위안부’ 가운데 1명이 서울 시내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윤정옥 공동대표, 16단체 약 30만 회원)가 (증언) 청취 작업을 시작했다. 동 협의회는 10일 여성의 사연을 녹음한 테이프를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공개했다.”(10쪽)

이 기사가 나온 지 3일 뒤 한국에서는 김학순 할머니가 실명으로 증언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잇달아 증언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니시오카 쓰토무라는 우익 인사가 월간 <문예춘추> 1992년 4월호에 우에무라가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중대한 사실 오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때는 크게 문제 되지 않고 넘어갔다.

이 책의 저자 우에무라는 <아사히신문> 기자를 하면서 2012년 4월부터 호쿠세이학원대학의 비상근 강사(시간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에는 고베시에 있는 기독교계의 고베쇼인여자학원대학 교원 공모에 응모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도 치르고 부임하는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교원에 부임하기 직전, <주간문춘> 잡지에, 1991년에 우에무라가 쓴 기사에 ‘날조’라는 딱지를 붙인 기사가 떴다. 기사 제목이 선정적이었다. 〈‘위안부 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아가씨들의 여자대학 교수로〉. 이 기사는 〈분노의 총력 특집, 한국의 ‘어두운 부분’(약점)을 쏴라!〉라는 특집 시리즈의 하나로 이른바 ‘혐한’ 기사의 일종이었다. 그런데 ‘혐한’이라니? 한국인을 혐오한다는 뜻 아닌가? 우에무라가 한국인인가? 아니다. 부인이 한국인이었다. 우에무라는 ‘위안부’ 할머니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한국인 여자와 결혼했다. 유독 우에무라만 이토록 공격을 받았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주간문춘〉과 우익들은 저자와 그의 딸한테까지 잔인하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런데 일본 우익들이 우에무라를 공격하는 논리가 너무 유치했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이 ‘조작’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은 머리채를 끌고 간 적이 없으니 ‘조작’이고, ‘날조’ 아니냐고 주장한다. 속여서 끌고 가는 건 강제연행이 아닌가? 또한 ‘정신대’는 ‘위안부’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때는 그 말을 구분해서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트집을 잡기 위한 억지였다. 그런데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그런 억지가 통한다. 역사수정주의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인정하는 것을 회피하고,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수정주의는 그런 억지 논리를 생산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배했던 한국, 중국을 혐오하게 된다. 1991년에 보도한 ‘위안부’ 기사가 2014년부터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역사수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 우에무라는 이들 우익들의 공격 때문에 고베쇼인여자대학대학원 교수직으로 가지도 못하고 아사히신문사도 그만둬 전직 기자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비상근 강사를 하고 있는 호쿠세이학원대학도 공격 대상이 됐다. 전화나 메일 등으로 격렬한 항의가 잇따랐다. 이 때문에, 대학은 경비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교직원들은 피폐해졌다.

하지만 일본에도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살아 있었다. 2014년 10월 4일 강상중 세이가쿠인대학 총장 등 시민들이 〈지지 마라 호쿠세이! 모임〉을 만들어 ‘우에무라 테러’에 대응하기 시작했다.(한겨레 2014년 10월 6일자) 한 달여 만에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천 명을 넘어섰다. 전국 380명의 변호사들이 대학에 협박 편지를 보낸 이들을 위력업무방해죄로 형사고발했다. 약 270명에 달하는 변호인단과 지원자들이 우에무라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우에무라는 명예를 되찾고자 자신을 ‘날조 기자’라고 한 사쿠라이 요시코와 〈문예춘추〉 등 3개 출판사를 상대로 사과 광고 게재와 손해배상 요구 소송을 걸었다. ‘우에무라 공격’의 원조 격인 니시오카에게도 소송을 걸었다. 지난 12월 16일, 도쿄에서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렸다. 선고는 내년 3월 3일이다. 사쿠라이 요시코를 상대로 한 삿포로 소송 항소심 선고일은 오는 2월 6일이다.

우에무라는 현재 한국 가톨릭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데, 요즘 한국 언론에 많이 나오고 있다. 2018년에 김용근 민족교육상, 2019년 올해 제7회 리영희 상도 받았다.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책을 꼭 한번 읽어 보고 재판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일본의 양심, 우에무라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방법이다.

 

안건모(작은책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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