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영화이야기] <월성> 원전 인접 지역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나’의 책임에 관하여
등록 2019.12.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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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옆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부산의 고리원전, 울진의 한울원전, 영광의 한빛원전, 경주의 월성원전. 이들 원자력발전소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월성원자력발전소 인접 지역인 경주시 양남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영화 <월성>(2019, 남태제, 김성환 감독)을 완성했다.

1983년 경북 월성군의 바닷가에 원자로가 준공되었다. 준공 당시의 행정구역명을 따서 월성원자력발전소라 이름 붙였다. 그 후 행정구역명이 몇 차례 바뀌면서 월성원전은 현재 경주시 양남면에 속해 있다.

양남면에서 450여 년째 대를 이어 살아온 토박이 김진선 할아버지의 집은 월성원전에서 9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아래 세대는 고향을 떠났다. 떠났다기 보다는 고향에서 내몰렸다. 원전이 들어온 탓에 고향은 위험해졌고 따라서 그들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양남면에서 30년 넘게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는 황분희 할머니는 몇 년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그녀의 집은 월성원전에서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울산에 살다가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자 공기좋은 곳을 찾다가 잠시 살 요량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살아보니 좋아서 아예 눌러앉았다. 이제는 손자 손녀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하면서 비로소 월성 원전이 두려워졌다. 이사를 하고 싶어도 집과 농토를 사겠다는 이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살고 있다. 2016년 체내 방사능 수치를 검사했는데 가족 모두에게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4살짜리 손자 몸에서 검출된 어른의 2배 이상의 방사능 수치에는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월성원전 3.5Km 거리 산자락 밑에서 염소를 키우며 아들 손자와 함께 3대가 사는 오순자 할머니도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딸과 아들도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한 집안에 갑상선암 환자가 몇 년 사이에 세 명이나 생긴 것에 의사도 의아해했다. 어느 날부턴가 오순자 할머니의 집 위로 가로지른 월성원전에서 시작되는 송전 철탑. 그것이 발암의 원인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월성원전에서 5Km 가량 떨어진 대본리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은 자신들의 세대에 갑상선암이 급증한 것을 의아해한다. 해녀들은 물질하면서 물을 조금씩 마시게 되는데, 월성원전으로부터 인근 바다에 유출된 방사능 물질이 갑상선암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판도라>영화에서처럼 사고가 나면 도망갈 길은 꽉 막힐꺼야”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은 원자력 발전소가 자신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자로 건물 위로 가끔 치솟는 버섯구름을 볼거리라며 좋아하기도 했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홍보했고, 914미터 바깥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지역주민들은 그 말을 믿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지진으로 인한 대형 원전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원전 사고의 무서움을 인지하면서 곁에 있는 월성원전이 다시 보였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감의 근원은 발생확률이 낮은 사고가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에 있었다. 사고가 벌어지면 가장 가까이 사는 자신들에게 가장 큰 피해가 닥칠 것은 너무나도 뻔했다. 2014년 8월 월성원전 인접 지역주민 30명은 한수원을 상대로 이주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가능성보다 더 이들을 일상에서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이 몇 십년 동안 일상적으로 방사능 피폭을 당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2016년 가족 모두에게서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는 결과지를 받아 든 이후에는 어린 손자가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혹시라도 암이 아닐까 하는 나쁜 상상을 하게 된다는 고백에서 알 수 있다. 2016년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이후 한반도가 지진으로부터 더 이상은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예측이 더해지면서 이곳 주민들의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는 현실감을 장착했다.

인근 주민 대상 방사능 수치 검사 통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원전 가까이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몸속 방사능 수치도 높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5Km 떨어지면 방사능수치가 1/3 수준으로 떨어지고 30Km 떨어진 경주시내 거주자들에게서는 방사능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1주일에 한번 씩은 경주 시내에 나가서 월성원전의 위험을 알리려고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시들하다. 그래서일까? 월성 원전에서 300Km 가량 떨어져 있는 서울 시민들 상당수가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유가.

그렇지만 알아야 한다. 서울의 그 많은 ‘나’들이 매일, 어쩌면 과하게 쓰고 있는 전기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그리고 그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전소 근무자와 발전소 인접지역 주민들이 건강상 재산상 피해를 보면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대부분은 힘없는 약자라는 것을. 5천만 ‘나’들과 무관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원전 인접 지역에 살면서 원전 덕에 경제적 혜택을 보는 ‘나’들이 있다 해도, 피해를 보는 이가 단 1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피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우리마을 양남마을에 있는 집이 정말 좋아요.

봄이 오면 집안 가득 예쁜 꽃들이 피고, 여름 바닷가에 가면 시원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할머니가 삶아주신 옥수수를 먹으며 마당에서 물놀이도 하고, 가을이 되면 예쁜 색으로 익은 사과랑 감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겨울이 되면 옹기종기 모여 우리 밭에서 자란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우리집이 정말 좋아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우리집이 정말 좋아요.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아빠 엄마와 우리만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세요. 하지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사는 우리마을이 좋아요.”

황분희 할머니의 어린 손녀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 집에서 계속 살게 해 줄 의무가 5천만 ‘나’들에게 있는 것이다.

 

 

글 염찬희(회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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