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영화이야기] 아카데미 시상식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작품 <부재의 기억>
등록 2020.03.03 14:33
조회 315

부재의 기억 포스터 1.jpg

부재의 기억 (In the Absence, 2018)

개봉 2019년, 한국

감독 이승준

 

아카데미 시상식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작품 “부재의 기억”

 

모두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카데미에 간 또 다른 한국 영화가 있다. 이승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다.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에 가려졌지만 <부재의 기억> 역시 단편영화 후보에 올 라 오스카 레드카펫을 밟았다. 화려한 배우나 제작자 대신 그 옆에는 학생들의 명찰을 착용한 세월호 유가족이 함께 했다.

 

30분이 안 되는 런닝타임 동안 <부재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에서 흐려져 가는 세월호 참사를 재구성한다. 깊은 바다에 점차 침몰해가는 세월호 현장 영상에 정부부처의 유선통화 기록을 얹는다. 한 공간에 존재하지 앉았던 영상과 음성의 싱크가 맞자 그날 부재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미 결과를 알고 바라보는 화면은 간절하지만, 화면에서 나오는 음성에서는 위기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구조보다는 보고를 목적으로 한 전화. 배의 선수만 물밖에 남은 시점에서야 뒤늦게 떨어진 형식적 지시. 매뉴얼이 아닌 개인의 영웅심리에만 기댄 작전. 미루고 미루다 ‘멋진 그림’ 운운하는 무책임한 말투. 권력 앞에서 들어갈 수 없는 공기를 배 안으로 주입하려는 쇼. 그 누구도 사건에 진심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책임을 미루는 사이 바다 속으로 세월호는 사라졌다.

 

음성으로 배 주변을 서성였던 사람들 대신 직접 바다 안으로 들어간 민간잠수부들이 있었다. 바다 속 세월호는 이들의 시야를 통해 기록된다. 변명에 가려져 어두워진 세상 속 진실만큼이나 심해에서의 세월호는 흐릿하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민간 잠수부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탐색한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할 수 있는 건 생을 향한 지난 흔적들뿐이다. 갇혀있던 이들의 시야는 얼마나 어둡고 답답했을까. 혹시라도 그날 국가가 부재하지 않았더라면…잠수부들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세상을 책망한다.

 

진실을 밝혀내려는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청문회 동안 정부의 책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한 증언보다는 윗사람을 지키기 위한 변명. 직업적 소명보다는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는 회피성 발언만이 가득했다. 이에 민간 잠수부 김관홍씨는 말한다.

 

 부재의 기억 1.jpg

 

“고위 공무원들에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 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왜 기억이 안 나는지.”

 

그날 가라앉는 것은 세월호와 아이들만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과 일말의 양심마저도 가라앉은 지 오래다. 짧은 런닝 타임이지만 <부재의 기억>은 과잉 없이 세월호가 촉발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기록한다. 책임 없는 권력과 무능한 관료주의의 민낯. 거리를 가득 채운 촛불과 대통력 탄핵은 세월호가 세상에 남긴 유산이다.

 

세월호가 인양되던 날 유가족들은 목포항으로 향한다. 이제는 세월호에 다가갈 수 있을지 알았지만 여전히 철창 밖에 존재한다. 철창을 발로 차며 들여보내 달라며 우는 그들을 진압하지 않는다. 철창 하나 사이로 대치하고 있는 경찰들 역시 몰래 눈물을 훔칠 뿐이다. 간결하게 몇 장면을 붙여 영화는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공권력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트라우마에 고통 받던 고 김관홍 잠수사는 끝내 스스로 눈을 감는다. 세월호는 물 밖으로 인양되었지만 그날의 고통과 질문은 여전히 수면 아래 깊숙이 존재한다.

 

6년이 지난 2020년 봄. 바다는 잠잠해졌고 누군가는 ‘또 세월호 이야기냐’ 반문 할 수도 있다. 스스로 역시 기억으로 세월호를 인식했던 건 아닌지 성찰해 본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보았을까.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된 하나의 ‘사고’로, 혹은 정치적 맹아로 인식되기 전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영화 속에는 잊을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이 존재한다.

 

영화 <부재의 기억>을 통해 세월호 참사는 또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관람객들은 자신의 상황과 대입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국가에 공분했다. <기생충>에 가려지긴 했지만 <부재의 기억>은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2018년에는 뉴욕 다큐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대단한 일이다. 다시 한번 세월호를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재홍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3월호  PDF 파일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_______2020__3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