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가 아니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록 2020.03.24 16:54
조회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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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코로나)

*태양-달(지구의 위성)-지구 순서로 배열될 때 달(지구의 위성)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지면서 그 둘레에 백색으로 빛나는 부분을 코로나라 한다.

 

국내외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지구촌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국가로 보인다. 지난 3월 11일 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유행병(Pandemic)으로 선언하고 전 세계가 이에 대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방역뿐 아니라 관리 및 시민참여에 있어서 최고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각국 정상과 외교 및 보건 관료들의 지원과 협력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며 각국 언론은 우리가 어떻게 이 유행병에 대처하고 있는지 연일 보도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뉴욕타임스가 대구 르포기사를 통해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보다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하나의 기본 틀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힌데 이어 WHO가 팬더믹을 선언한 날, 워싱턴포스트는 헤드라인에서 “한국이 민주주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연이은 이러한 찬사에 화룡점정을 찍듯이, 3월 20일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 예루살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는 대만과 싱가포르와 함께 광범위한 진단, 투명한 보고, 적극적인 시민 협력으로 성공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대유행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해외 언론과 지성인의 긍정적 평가들에서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 창의적이며 개방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의 개발과 운영 및 지자체와의 상호 협력이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참여하고 역동적으로 연대하며 희생하는 우리 시민들의 존재, 그 자체가 이 모든 작동하는 위기 대응체제의 근원적 원동력이라는 평가에 있어서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호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주의를 완성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렇다. 

 

COVID-19에 시민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생명과 사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을 때, 우리 언론은 바로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위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언론은 시민들의 뇌리를 날카롭게 헤집을 작정이라도 한 듯이 펜과 마이크로 무장한 채,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비통"·"TK 모독"…'대구·경북 봉쇄조치' 발언 파문 확산, 뉴스1, 2/25), 공동체를 차별하고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헤럴드 경제, 1/29), 자국의 대응을 모멸하고 (일본과 달라도 너무 다른 우왕좌왕 정부, 헤럴드경제, 1/30), 시민들을 능멸하며 (한국인어서 미안합니다, 중앙일보, 3/4), 고통 받는 이웃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나라 전체가 세월호다, 중앙일보, 2/28) 행태를 보였다. 우리나라가 진정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언론에게 주어진 자유가 이처럼 공동체의 분열과 사회 불안과 혐오를 조장하는데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는 언론의 자유를 감내해야 하는 비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또 하나 내가 우리나라가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유발 하라리라는 자유주의적 지성인들(Intellectuals)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경이롭게 바라볼 때 공통적으로 대조한 국가가 있다. 중국이다. 그 대조 방식은 매우 선명하고 상식적이어서 아무도 반론이나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이러한 이념적 대립에 무척 친숙하다. 정보의 통제와 인권 보다 정권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을 가진 공산주의 국가에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민주주의 국가와의 대결은 냉전 시대를 연상시킨다. 혹자들은 현대의 이러한 이념적 갈등 양상을 신냉전이라고 평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표선수로 중국과의 신냉전적인 이념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모범사례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우리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념과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서구 언론과 지성인들의 평가에 관심이 없다. 그러한 평가에 들떠 있는 언론에 대해서도 냉소를 보낸다. 그 이유는 외부의 찬사와 내부의 자화자찬은 우리가 아직 민주주의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은폐시킬 뿐이며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등 서구 민주주의 체제의 실패를 외면하게 할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리고 더 넓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그렇다. 

 

한 달도 남지 않은 4.15 총선은 비례용 위성정당이라는 합법적인 반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정당화시키는 과정으로 전락하였다. 일시적이나마 ‘행사’할 수 있었던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동원’되는 권리로 희화화된 것이다. 어쩌면 기존의 형식적 민주주의의가 민낯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언론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거를 ‘판’으로 만들고 자사의 정치경제적 득실에 따라 그러한 위성정당들에 줄 세우기와 줄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시민을 살리기 위한 여당과 정부의 긴급 추경 예산은 오로지 자신의 지역구와 당파적 이익을 위해 보수 야당에 의해 차단되고 오히려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공공의료 인프라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거대 자본은 모든 의료 인프라를 민영화하고자 하고, 우리 시민 개개인의 정보와 활동이 데이터라는 기술적 용어로 거래되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야만 부당한 노동 환경이 드러나더라도 우리를 대표하는 국회는 우리를 소외시킬 뿐이다. 이러한 국회와 언론의 참담한 행태들은 우리의 반민주주의의 증거들이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가 아니다. 두려운 것은 반민주주의가 일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감각마저 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총선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경구를 애써 붙잡아 본다.    

 

*시시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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