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3월호] [여는글] 언론은 ‘권력 감시’ 그 이상의 존재다
등록 2021.03.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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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권력 감시’라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권력 감시가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인지 물으면 쉽게 ‘그렇다’라고 답하기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애매함이 발생하는 이유는 권력감시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서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권력 감시만으로 언론의 기능이 과연 충분한가라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언론은 ‘세상’과 그 ‘세상 속의 나와 우리’를 규정한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한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판단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누군지도 함께 판단한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말이다. 이러한 언론의 기능은 ‘권력 감시’를 훌쩍 넘어선다. 사람들이 언론을 필요로 하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언론은 세상을 통찰하고 해석해서 ‘이런 것이 세상이다’라고 끊임없이 제시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세상에 사는 당신은 ‘이러한 존재이다’라고 답을 해줘야 한다.

 

세상에 대한 통찰은 수동적으로 노려보기만 해서는 얻을 수가 없다.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선제적으로 사람들이 봐야 할 부분을 지목하고 사람들이 함께 떠올려야 할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비로소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나와 우리는 어떠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대략적인 지식과 영감을 얻게 된다.

 

언론은 인문학 서적이다

이처럼 언론은 매일 업데이트 되는 인문학 서적이다. 과장되거나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언론 기사를 접할 때, 그것이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든, 포털이든, SNS든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세상’이라고 하는 상을 재정립한다. 어떤 기사를 보면서는 ‘맞아, 세상이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기사를 보면서는 ‘아니 세상이 이런 거였나?’하기도 한다. 그저 하나의 기사일 뿐인데 우리는 세상 전체를 대입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이걸 흔히 ‘컨텍스트’라거나 ‘의제 설정’이라거나 ‘프레이밍’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언어들 역시 대단히 좁게 해석되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보도의 기술적인 방법론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치판단을 언론에 의지한다

가끔 언론 관련 강연을 하게 되면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도무지 어떤 언론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그것이다. 언뜻 들으면 신뢰할 만한 언론사를 콕 집어 달라는 것 같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파악하게 된다. 언론에 자신의 전적인 가치판단을 의지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이란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 자신에게 가장 정확하게 해석해서 제시해줄 언론사가 어디냐고 묻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은 나머지 대부분의 청중들 역시 가장 눈을 반짝거리며 답을 기다리는 게 바로 이 질문이란 점이다.

 

그때마다 나는 특정 언론이 온전히 세계관과 가치관을 제시해주지 않으니 그걸 언론에 맡기면 안 되고 본인이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스스로 규정해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답을 한다. 그것이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언론사라면 그래도 꽤 정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세상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줍니다”라고 답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언론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지 말길

보도자료 받아쓰기가 게으르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언론이 가진 가장 강한 힘이자 권한인 ‘창’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게 진짜 문제다. 언론인들 스스로는 엄청난 화두인 ‘권력 감시’ 여부에 사람들이 시큰둥한 것 역시 사람들이 정파적이라서만은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부디 언론인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조롱하는 표현이라고만 좁게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보다 더 큰 역할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다.

 

김진혁 이사‧미디어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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