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미디어정치 시대, 대중매체는 대선 제대로 보도하고 있나
고승우(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상임대표,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등록 2022.01.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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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큰 축제다. 정치 대리인 또는 정치 머슴을 뽑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선택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그것은 대중매체의 중요한 책무다. 선거에 참여한 정치집단은 자칫 과잉 또는 부당 경쟁을 하는 쪽으로 빗나가기 쉽다. 대중매체는 이를 감시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서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기여해야 한다.

 

대중매체는 오는 3월 9일, 20대 대선에 대해 제대로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대중매체가 확고한 선거보도 철학과 방법론을 확립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선거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이라 할 만하다. 정보화 시대가 계속 진화하면서 수많은 SNS가 등장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내고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시킨다. 대중매체는 이런 정보를 교통정리 하거나 팩트 체크해서 언론 소비자들의 상황 판단을 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부정선거’ 주장, 선거가 재앙될 수도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선에 얽힌 비극적 현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는 대중매체를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는 식으로 깡그리 무시하고 트윗 등 자신의 SNS를 통해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최근 트윗, 페이스북 등에서 퇴출당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운영될 신생 미디어를 만들겠다며 그 자금을 공모한 결과 10억 달러가 넘게 걷혀  2월 개국할 예정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부정선거 때문에 대통령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해 지지자들이 의사당으로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만들어 퍼뜨리는 근거도 없는 정보를 맹신하면서 추종하고 국기를 뒤흔드는 폭력행위에 가담했다. 듣고 싶고 믿고 싶은 정보에 휘둘리는 확증편향 현상이 21세기에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 되는가를 드러낸 대표 사례다. 선거가 자칫 국가적 재앙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을 세계는 목격했다. 미국 대중매체는 대선 등 주요 행사에서는 정치집단의 발언, 발표 등에 대해 보도에 앞서 팩트 체크를 우선하고 있다. 일단 보도될 경우 폐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도 이런 점을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한국 대중매체가 20대 대선 보도에서 드러낸 아쉬운 점은 한둘이 아니다. 언론 소비자에게 최대한 뉴스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그런 지적이 가능하다. 먼저 대중매체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언행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이전 속보 경쟁을 벌이는 식으로 보도하기 바쁘다. 인터넷 공간에서 조회 수를 의식한 행동이다. 이는 언론이 사회의 소금과 목탁이라는 제4부의 역할을 내팽개치는 것이란 비판을 자초한다. 이러니 당리당략을 노려 홍보전에 눈이 뒤집힌 정치집단은 나중에 어떻게 되든 우선 자기편에 유리한 정보를 만들어 내놓기 일쑤다.

 

두 번째, 대중매체 가운데 영향력이 큰 TV, 라디오와 같은 전파 매체의 경우 정당이나 정치인의 홍보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정치 관련 대담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거대 여야 정당 소속이나 그에 가까운 정치인이 출연하다 보니 시청자나 청취자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것과 거리가 먼 정치 관련 정보를 편식하게 된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당들의 입장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이고 정의에 가까운 것인지는 시청자나 청취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이다. 이런 방송은  확증편향을 심화시킨다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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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가면토론회>는 출연자들이 가면을 쓰고 음성 변조한 상태에서 정치·사회 문제를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가면을 쓰고 출연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비판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4회까지 예정돼 있던 <가면토론회>는 2회를 마지막회로 종영했으며, 다시보기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 ⒸJTBC <가면토론회> 화면 갈무리

 

언론은 후보 비리·의혹 탐사보도로 진상 밝혀야

 

세 번째, 오늘날 보편화된 미디어 정치의 담당자인 대중매체가 선거문화를 개선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거대 여야 정당 후보의 경우 이런저런 의혹이나 비리와 관련해 말이 많고, 그 결과 정책선거와는 거리가 먼 혼탁한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검찰, 경찰 등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이럴 경우 대중매체가 탐사보도 등을 통해 진상을 밝혀 사회의 파수견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네 번째 대중매체가 선거를 유권자의 축제로 승화시키기보다 시청률을 우선시하는 자사 이기주의에 기울어 있다는 점이다. JTBC ‘가면토론회’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가면을 쓰고 ‘익명 패널’로 출연한 게 대표적인 경우다. 방송사나 공당 대표의 상식, 도덕성 등에 심각한 의문을 자아내게 하는 사건이지만 대부분 대중매체는 모르쇠 했다. 전체 대중매체의 사명감이나 윤리의식의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한 외국 언론인은 언론이 갖춰야 할 기본적 자질로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손꼽았다. 한국 언론이 깊이 새겨야 할 발언이다. 언론중재법 소동 이후 언론의 자율적 규제가 화두가 되었지만 대선 정국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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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