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의 정쟁화, 대선 이후 ‘과학적 방역’ 미래는 있을까 I 공시형 기획팀 활동가
등록 2022.03.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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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의 정쟁화, 대선 이후 ‘과학적 방역’ 미래는 있을까 최근 흥미롭게 지켜본 사건이 하나 있다. 방역 전문가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가 ‘백신 접종을 독려하더니 자신은 1차 접종만 맞았다’며 비난받은 사건이다. 중앙일보 기사 제목은 <정부홍보물서 “백신 서두르라”던 교수, 본인은 다 안맞았다>였다. 아니나 다를까, 포털 네이버 기사 댓글은 ‘내로남불 정권에 딱 맞는 전문가’, ‘질병청도 안맞은 사람 색출하라’는 등 정부와 천은미 교수에 대한 비난으로 도배되었다.

 

천은미 교수는 그전까지만 해도 포털 네이버 기사 댓글에서 추앙받던 존재였다. 2021년 초 ‘백신 도입 늑장’ 논란이 일자 언론에 출연해 정부 비판 코멘트를 했다. 2021년 중반 코로나 재확산과 정부의 ‘백신 집단면역’ 계획도 비판했다. 대다수 방역 전문가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낼 때였고, 천은미 교수도 그랬다. 하지만 관련 기사 포털 댓글 내용은 이랬다. “천은미 교수처럼 솔직한 말이 필요하다”, “기모란을 비롯한 방역라인 전원 문책하고 천은미 교수를 사령탑에 앉혀 주세요”...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방역정책은 추앙의 대상이거나, 원색적 비난의 대상이거나 둘 중 하나다. 서로 반대쪽을 ‘과학 방역’이 아니라 ‘정치 방역’을 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대체 여기서 말하는 과학의 정의는 무엇일까? 미래 감염자를 예측하는 수학적 모델(SEIR)과 미분방정식 초기값을 추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증 가능성에 열려 있는 조금 더 일반적인 과학철학적 태도를 말하는 것인가?

 

코로나19 사태 초기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실리는 보건역학 칼럼니스트들의 글을 본 적 있다. 그들의 시야는 ‘자연과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는다. 봉쇄로 인한 경제타격, 의료물품의 원활한 조달 등 사회 다방면에 대한 고려가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방역정책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과 과정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대로만 하면 항상 옳은 답이 나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학은 데이터를 제공할 뿐이지 결론까지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 만약 방역정책이 정말로 과학의 영역이기만 했다면, 모든 국가는 의심의 여지없이 똑같은 방역정책을 동일한 수준으로 펼쳤을 것이고 효과도 같았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방역정책은 과학뿐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 여론의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가장 조심해야 할 지점은 과학을 맹신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적 논쟁’의 신뢰를 깨지 않는 것이다. 정부 방역대책이 부족한 점에 대해 비판은 필요하지만, 백신을 들여와도 비난하고 들여오지 않아도 비난하고, 봉쇄 수준을 높여도 비난하고 낮춰도 비난하고, 그러면서 각종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정치 방역’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정부에 참여하거나 조언하는 전문가들까지 댓글부대의 비난을 받게 된다면 누가 방역 사령탑에 앉아도 신뢰를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일보는 대선을 5일 앞둔 3월 4일 1면 기사에서 최근 방역완화 조치에 대해 ‘대선을 앞둔 정치 방역’ vs ’과학적 기준에 의한 것’이냐고 물은 여론조사 결과를 실었다. 설문 자체가 ‘정치 방역’ 프레임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 선대본에서 코로나위기대응위원장을 맡은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이제 천은미 교수를 “우리 쪽 전문가(2월 17일 시사IN 인터뷰)”로 소개한다. 논문과 데이터로 말하는 과학자의 용어는 아니다. 코로나19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감염병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선거가 끝나도 이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 방역’을 부르짖으며 실제로는 위기를 정쟁화하는 이들의 태도가 극히 우려되는 이유다.

 

공시형 기획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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