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한국 정치가 경계해야 할 적, 자연스러움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등록 2022.04.19 15:33
조회 263

대인관계에서 ‘자연스러움’은 미덕이다. 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 밖으로 내뱉는 말이나 행동이 서로 다르다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자연스럽지 못하면 항상 문제가 되었다. 자연스러움을 미덕으로 칭송하는 일은 비단 진실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도함도 문제가 된다. 합창에서 잘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친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가 그런 사례다.

 

내로남불 프레임 이상하다

 

대인관계에서 자연스러움은 대체로 미덕으로 인정돼 가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모든 영역에서 다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한국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일은 한국 사회의 이런 자연스러움이 경계를 넘어 맞서야 할 적으로 등장한다. 다음 사례에서 자연스러움은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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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7일 오후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연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대선에 보내주신 1614만명의 성원을 반드시 지방선거 승리로 보답하겠다"며 6·1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사진 속 텍스트는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두고 86세대 정치인들과 비교한 언론의 보도 제목이다. Ⓒ송영길 전 대표 SNS(사진), 조선비즈・동아일보・JTBC(텍스트, 상하순)

 

먼저 더불어민주당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586세대 용퇴론이다. 대선 기간 민주당이 이른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보고자 나온 결단이다. 결국 대학 입학과 의사면허 취소로까지 이어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특혜 비리와 같은 문제를 빌미로 민주당에 씌운 내로남불 프레임은 대선 정국 내내 민주당과 대선 후보를 괴롭혔다. 이제 민주당을 향한 내로남불 프레임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지금도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비난할 때 수시로 쓰고 있다. 민주당도 이런 이야기에 맥을 못 춘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는 송영길 후보를 둘러싸고는 민주당에서도 자성이라는 이름으로 이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다. 소위 ‘부모 찬스’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미래통합당의 김성태 전 의원도 KT에 딸의 부정 채용을 청탁한 혐의로 재판받았고 유죄가 확정됐다. 혐의에만 그치고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제 유죄가 될 만한 사실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수사 능력이나 의지가 모자랐거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게 할 저항이 조직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져서 유죄 판결이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사정을 짐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에 덧씌워진 내로남불이라는 프레임이 효과적으로 관통하는 이유는 뭘까?

 

민주당이 스스로 내세운 깨끗한 정당, 국가를 위해 청년 시절을 희생한 고결한 민주투사 이미지가 내로남불 프레임의 원천이다. 내세운 이미지만큼 철저하게 실천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민주당만 비난하는 일은 공정하지 못하다. 깨끗함을 추구하거나 지향한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나 정당이 가령 부모 찬스를 썼다면 본래 그럴 사람이니 놀랍지도 않아 비난할 일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시 비난받아 마땅할 터인데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한국 정치의 흐름을 보면 내로남불이 먹히는 분위기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싼 논쟁은 어떨까? 전지전능한 권력을 누리는 검찰을 보고 그런 조직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검찰의 모습은 어떠할까? 세상 어떤 권력도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조직이 아닐까?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제대로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심적인 검사라 할지라도 검찰의 전지전능한 권력이 없어지는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문제 현상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자연스러움 몰라도 너무 몰라

 

박정희라는 역사 속의 인물이 누리고 있는 자연스러움은 어떨까? 독재자라는 자연스러움과 경제개발 주역이라는 자연스러움이 공존하고 있다. 전자의 자연스러움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면 박정희라는 사람에 대한 자그마한 공치사에도 적의를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후자의 자연스러움이 장착된 사람이나 공동체에서라면 조그만 비난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국정 농단으로 실형을 산 후 사면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미안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인간적인 연민’의 표현이었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자연스러움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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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3일 초대 정부 2차 내각 인선안을 발표했다. 윤 당선자는 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했다. 윤 당선자는 "수사와 재판 같은 법 집행 분야 뿐 아니라 법무행정, 검찰에서의 여러가지 기획 업무 등을 통해 법무행정을 담당할 최적임자"라고 한동훈 후보자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덧붙여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 제가 주문한 것은 법무행정이 경제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무행정 현대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사법제도를 정비해나가는데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OhmynewsTV 생중계 화면 갈무리(4/13)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 대해 다양한 질문이 있자 ‘유창한 영어 실력’이라고 한 대답은 어떤 자연스러움에서 나온 걸까?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나온 자연스러운 발언일까?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는 ‘영어 잘하는 것’을 최대 무기로 삼기 어려울 만큼 영어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움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은 아닐까?

 

자연스러움은 참으로 무서운 현상이다. 나는 늘 고결해온 사람이라고 믿는 쪽도, 나는 언제나 잘 살아야 하는 특권계급이라고 믿는 쪽도 그들의 자연스러움이 정당하고 타당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정치를 통해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어렵다. 미디어가 이런 문제를 자주 파헤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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