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여름호] [회원인터뷰] 나의 MBTI는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미래가 기대되는 민언련 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최은경 회원)
등록 2022.08.0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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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회원은 2018년 초 정책위원으로 민언련과 처음 인연을 맺고, 올 3월 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되었다. 회 원・여성・청년을 대표하는 분들로 추천된 7명의 신임 이사 중 한 명이다. 성격유형검사 MBTI 결과에서 매번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유형을 유지하듯 언론학자가 아니었어도 어디에서든 사회운동 비슷한 걸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최은경 회원.

5월 13일 민언련 회의실에서 회원으로서 정책위원으로서 이사로서 그가 함께하고 싶은 민언련의 앞날과 언 론개혁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은경 회원은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골드스미 스대학교에서 석사를, 러프버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전남과학대학교 e스포츠과 교수를 거 쳐 지금은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영상 콘텐츠 전공 교수로 e스포츠 융합대학원 주임을 겸직하고 있다.

 

'탈옥인동',다른 세상을 만나다
최은경 회원은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다.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옥인동은 '사대문 안 도심'으로 불리던 곳이다. 2020년 11월 민언련은 옥인동(행정동 청운효자동)으로 이전했다. 민언련 역사상 최초의 소유 터전인 옥인동 사무실을 찾았을 때 최은경 회원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옥인동으로 민언련이 옮겨올 줄 상상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눈 뜨고 본격적으로 삶을 고민하게 된 건 오히려 옥인동을 벗어나고부터였다.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이유도 '탈 옥인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영수(민주언론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최은경 학창 시절 신문 읽고 TV 보는 걸 좋아했지만 '기자, PD, 작가가 돼야지' 이런 생각을 갖고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옥인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저한텐 동네가 세상의 전부였어요. 학교, 교회, 집만 오가면서 살았죠.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동대문구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토요일 아침, 학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당시 청량리엔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거든요. 제 또래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교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서 있는 거예요. 지나가던 남학생들은 휘파람을 불고... 옥인동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한 거죠. '이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그동안 보고 싶던것만 보고 산 게 아닌가? 어쩌면 이게 우리 사회 현실일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뭔가 끓어오르더라고요. 평소 학교나 TV에서 보여주지 않는 세상을 소개한 다양한 책과 영화를 찾아봤죠. 그러다 신영복 교수님을 비롯한 성공회대학교 교수님들이 쓴 책이나 칼럼을 보고 성공회대학교를 알게 됐어요. 제게 큰 가르침을 준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찾아갔고, 학교생활 동안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을 왜 비판해야 하는지, 대안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널리즘 본진을 향해 '직진'

조영수 대학 졸업 이후 영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는 등 언론 관련된 공부를 꾸준히 했는데요. 어떻게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건가요?

 

최은경 대학 졸업반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 될지 고민이 컸어요. 아버지가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셨는데 왜 그러셨는지 궁금했어요. 당시 저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사회, 언론, 사람들... 그러자 평범한 하루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하는 '보통 사람들'이 보였죠. 그땐 세상을 보는 시야도 좁았지만 제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이미 훌륭한 지식인들에 의해 이론도 방법론도 정립된 것 같고.

그런데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전공 서적이나 미디어 이론이 대부분 서양학자들이 쓴 걸 번역한 거였어요. 당시 한참 인용하던 스튜어트 홀, 제임스 커런이나 로버트 맥체스니도 그렇고. '왜 우리나라 학자가 없지? 하다못해 동양인도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죠. 해외 사례를 배우는데 영국은 저널리즘에 대한 시민 의식이 높다고 평가되면서 언론 제도도 많이 인용됐어요. 진짜 그런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객기가 들었죠. 그러면서 영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취업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20대에 새로운 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평생 후회될 것 같았죠.

 

조영수 그땐 온라인에서 정보 구하기가 지금처럼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최은경 먼저 관심 있는 영국 대학 홈페이지에서 입학 전형 자료를 정독하고 관심 있는 학교에 직접 이메일로 연락했죠. 그 과정에서 한국과 다른 대학 입학 시스템을 경험했어요. 좌충우돌도 많이 했고, 몰라서 용감했던 거죠(웃음). 그리고 영국문화원에서 영국 문화와 교육 관련 책, 비디오, 잡지, 신문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IELTS(영어능력 평가시험)를 준비하고, 영국유학 박람회도 찾아다녔습니다. 박람회에는 입학사정관이 직접 참석하기 때문에 대면으로 질문이 가능해서 궁금한 점을 메모해서 준비해 갔어요. 홈페이지엔 기숙사, 학비, 교육과정 등 최소 정보가 있긴 하지만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저로서는 질문이 굉장히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해

조영수 실제 경험한 영국은 어땠어요?

 

최은경 골드스미스런던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 디플로마(diploma)를 하고, 다음해 TV저널리즘 공부를 할 땐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했고, 영국이란 사회를 제대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와 달리 즐겁게 공부했고요. 졸업을 위해 반드시 패스해야 하는 전공필수 과목들이 있는데 재시험 기회가 없어 유학생에겐 상당히 부담이었지만,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학창 시절 막연히 관심을 가졌던 종군기자가 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영국을 대표하는 로이터통신사에 지원했고, 졸업하던 해 로이터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5년간 세계 각지에서 근무한 뒤 (당시) 서울엔 지부가 없으니까 도쿄에서 일하는 근무조건이었죠. 더욱이 로이터가 전쟁보다 금융뉴스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는 말을 들으니 더 고민되더라고요. 전쟁터에 가야 하는데 금융가 취재라... 자신도 없었고 뭔가 타협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교롭게 향수병으로 힘들던 때였어요. '낯선 도시에서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말과 행동에 늘 긴장하며 사는 외국 생활을 평생 해야 하는구나' 생각에 가족이 그리워졌죠. 잘 이겨낼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조영수 석사만 취득하고 한국에 다시 들어오신 거네요. 향수병에 걸려 귀국한 거라면 다시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에 주저했을 텐데요.

 

최은경 박사 준비하는 데 2년 걸렸습니다. 스스로 납득이 안 되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성격이라 1년은 '내가 왜 박사과정을 해야 하지?' 고민했어요. '나보다 더 젊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똑똑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내가 왜 박사과정을 해야 하나?'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이런 생각을 했죠. 제 결정에 반대되는 질문을 많이 하면서 답을 찾으려 했어요. 어느 날 '그럼에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는데, 그다음 1년은 박사과정에서 어떤 공부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박사 지원에 필요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면서 공부했던 시간이 뜻 깊었어요. 저는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관련한 책과 논문을 읽으면 정말 재밌어요. 언론과 미디어학이 연결돼 있어서죠.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그레이엄 머독 교수님이 연구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접하게 되었고, 논문과 책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뛰었습니다. 결국 머독 교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다시 유학을 떠났죠. 그리고 6년 동안 존경하는 머독 교수님과 후회 없이 공부했고, KBS 연구 통신원으로도 활동하고 학교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도 참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친정어머니 도움을 받아 육아와 공부, 일을 병행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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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없는 비판, 민언련의 핵심 기조

조영수 민언련 정책위원으로는 어떻게 오게 된 거죠?


최은경 김서중 교수님이 제안을 하셨어요. 성공회대학교 다닐 때 김서중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았거든요. 선생님이 민언련에서 활동하시는 걸 늘 응원했는데, 제게 그런 기회가 올 줄은 몰랐죠. 어느 날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민언련에서 새로운 정책위원을 영입하는데 그 중 한 명으로 추천됐다'고 들었다면서 함께 하자고 하셨죠. 이번에 민언련 공동대표로 선출된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님과 함께 2018년 초 정책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조영수 두 분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민언련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이가 된 거네요(웃음). 지난 3월 총회에서 민언련 이사로 선출되었는데, 정책위원으로만 활동할 때와 마음가짐이 다를 듯한데 어떤지요?

 

최은경 민언련은 소수 팬덤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민주시민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요. 민언련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외부에서 프레임을 씌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더 나은 언론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성역 없는 비판이 민언련의 핵심 기조이죠. 물론 성역이 없다는 게 기계적 중립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어느 누가 봐도 민언련은 비판의식이 분명한 곳, 납득할 만한 비판의 바로미터(barometer)를 갖고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회원은 물론이고 시민, 학계 등에 자리 잡았으면 하고요. 그래서 '민언련 정책위원'이란 타이틀로 글을 쓰거나 발표 및 토론을 하게 되면, 늘 민언련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이런 책임감은 이사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엔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검소하지만 전투적이고, 유행에 뒤떨어진다는?(웃음) 심지어 '시민단체는 전문성이 없고 편향적'이라고 공격하는 언론과 시선도 있죠. 영국 시민단체 활동을 몇 년간 밀착해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정부와 학계 그리고 시민 의식이 남달랐어요.

일단 시민단체는 정체성과 전문성을 우선 가치로 삼고, 사회는 그것을 인정해줘요. 기업이나 기관이 할 수 없는 걸 시민단체가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영국 시민단체는 정부와 기업, 학계를 긴장하게 하지만 상시 토론을 즐기며 공동 작업도 많이 해요. 그래서인지 활동가 대부분이 장기근무를 하고, 안팎의 전문가들과 활발히 협업하며 전문성을 키우고요. 기업이나 학계보다 참신하고 재밌고 창의적 캠페인을 시도하는 사례도 많아요. 제가 민언련에서 느낀 자부심과 자신감은 선진국 어느 시민단체보다 강했기 때문에 처음 정책위원으로 합류할 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민언련은 미래가 기대되는 시민단체였으면 좋겠고, 저도 최선을 다해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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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관행 굳히기보다 관습 깨는 데 앞장서야

조영수 약자를 위한 언론은 없다 기고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큰데요. 민언련도 미디어 속 혐오, 차별, 폭력 문제 대응을 주요 활동으로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가야 할까요?

 

최은경 우선 언론이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해요. 우리 언론의 역사는 100년이 되어가지만,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편협하며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면서 지난해 우리 사회 약자들의 절규와 통곡은 절정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해요.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일상을 우직하게 버티는 택배노동자들, 건설현장 노동자들, 대중교통 운전자들, 경비원, 청소원, 파트타임 노동자들, 1인 자영업자들 그리고 여군과 장애인의 사고와 죽음에 대한 맥락은 실종됐죠. 언론엔 자극적인 보도 경쟁만 난무하다 보니, 제도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감시와 비판,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시민의식 성숙에도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다고 봤고요. 민언련이 주요 활동으로 사회적 약자를 향한 미디어 속 혐오, 차별, 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활동이에요. 저도 적극 동참하려고 합니다.

 

조영수 언론학자로서 한국 언론(인)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주요하게 관심 갖고 있는 사안이 있다면요.

 

최은경 언론이 제4권력이라는 것을 배운 이후 언론권력의 본질에 대해 늘 고민했어요. 언론권력은 사실 언론인 개개인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과 시민을 대표했을 때 비로소 절대 권력을 견제할 제4의 권력이 되는 것인데, 몇몇 언론과 언론인은 그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며 자리를 보존해왔죠. 과거에 그랬는데 지금도 그러는 건 문제인거죠.

언론인은 모든 권력과 현장의 최전선에서 많은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고, 지적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가치를 판단해야 하며, 진실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용기를 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사라질지 모를 권력을 이용해 사회를 위협하는 언론(언론인)의 태도는 분명 경계되어야 하죠.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인식을 변화시키려면, 거버넌스 하나만 바꿔도 안 되고요. 법이나 윤리강령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어요. 언론과 언론인들이 관행을 상식처럼 굳히기보다 관습을 깨는데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언론인에게 권력을 이양한 시민들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데 주력하는 게 우선이고요.

 

조영수 학자를 선택하지 않았다면,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최은경 요새 성격유형검사인 MBTI가 트렌드잖아요. MBTI를 할 때마다 그 결과가 달라지는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항상 똑같이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가 나와요. 지금은 대학에서 교육자로 연구자로 지내고 있지만 학교가 아니었어도 어디에서든 사회운동 비슷한 걸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조영수 마지막으로 민언련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최은경 민언련에는 조직과 회원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사무처가 있습니다. 정책위원이나 이사는 조직의 어드바이저(adviser) 역할이고, 언론의 민낯을 꾸준히 감시하고 비판하며 개선 방향을 지적하는 분들은 사무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 내에서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나누면서 협업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최근 민언련에서 발표하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아이템 선정부터 조사와 취재, 보고서 작성은 물론이고 촬영과 편집 실력에 놀라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아이템이 많아요. 민언련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시민단체들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신구세대가 함께 호흡하면서 협력하는 선례를 민언련이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특히 젊은 활동가분들을 믿어주고 지지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정리 조영수 협동사무처장, 고은지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 봄+여름호(통권 221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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