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었습니다 I 박채린 미디어팀 활동가
등록 2022.08.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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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활동가 박채린입니다. 작별 인사를 미루고 싶어서였는지, 마감이 임박해서야 빈 문서를 열었습니다. 저는 8월 19일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있습니다. 

 

‘넌 감동이었어’라는 노래가 있어요.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데, 늘 같은 의문이 남았어요. ‘사람이 얼마나 좋아야 감동일 수 있지?’ 가사는 더 아리송해요.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사람을 사랑해서 세상마저 감동인 그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요. 

 

제게 큰 사랑을 주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부모님께 여쭤봤어요.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딸이 감동적이고, 세상이 감동적일 때가 있어?” 어머니는 “2.4kg으로 너무 작고 허약하게 태어난 애가 이렇게 밥도 잘 먹고, 몸집도 커져서 걸어 다니는 거 보면 그게 감동이야”라고 하셨어요. 어머니 사랑은 자식인 제가 감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넌 신기할 정도로 정말 잘 먹어’ 정도로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적은 없는 거 같은데”라고 답하셨어요. 

 

지금까지 사람에게 감동하는 그 감정을 제대로 느낀 적이 있는진 모르겠지만요. 저는 민언련에서 ‘감동이야’라는 말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했어요. ‘감동: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무언가를 느끼게 해 사람을 마음을 움직인다, 기적 같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세상을 바꾸는 것과 비슷한 일이니까요. 

 

노란 점퍼에 배낭을 메고 민언련을 종종 찾아오시는 회원분이 있어요. 늘 큰 박스 하나를 들고 오시는데요. 노끈으로 꽁꽁 묶은 박스를 풀면, 어떤 땐 빵이, 어떤 때는 케이크와 음료수가, 어떤 때는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겨있어요. 민언련에 제안할 내용을 손수 적어 정리해오실 정도로 민언련을 아껴주시는 분이에요. 저는 회원분들이 가져다주시는 간식을 너무 감사히 잘 먹으면서도 ‘내가 먹을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요. 일흔을 넘긴 이 회원분은 왕복 6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오세요. ‘감동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민언련에 들어오면서, 저는 예리하고 날카롭고, 언론인이 뜨끔할 보고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마음이, 태도가 바뀌었어요. 이 회원분의 6시간에, 모든 회원분의 후원에 부끄럽지 않을 보고서를 쓰겠다, 우리 사회에 어떤 언론이 필요한지 회원과 함께 고민하는 활동가가 되는 걸 최우선 순위에 두고 싶어졌어요. 민언련 노동조합원이 모은 돈으로 이 회원께 꽃다발을 드렸을 때 보여주신 밝은 미소가 떠오릅니다. 제게 감동을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기적은 사무처 안에도 있어요. 신입 활동가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출근길에 사고라도 나서 오늘은 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사실상 신입 활동가 교육이 전무한 상태에서, 민언련 이름으로 나가는 신문모니터 보고서를 담당하는 게 제겐 큰 부담이었거든요. 고민하고 고민하느라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어요. 한창 야근하고 있을 때 한 활동가에게 연락이 왔어요. 어제도 제 사내 메신저가 밤늦게까지 켜져 있어 걱정됐다며, 제가 절대 쓰지 않을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을 선물로 보내줘 그날 처음 웃었어요. 휴가 사용 등과 관련해 갈등을 겪을 때 제게 필요한 정보도 알려주고, 힘이 돼줬어요. 더 고마웠던 건, 또 다른 두 활동가와 함께 퇴근 후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공부하며 노동조합을 만들 준비를 해왔던 거예요. 민언련은 활동가 100%가 노조에 가입했어요. 아마 이 세 활동가에게 감동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외에도 보고서 쓰는 게 너무 힘들다는 제 하소연에 손수 자료를 준비해 보고서 작성법을 알려준 활동가, 업무가 많은 선거 모니터 기간 업무를 나눠서 해준 활동가, 고생하는 팀원들을 위해 수박화채 파티를 준비해 준 활동가, 이런저런 고민이 있을 때 재빨리 알아채고 말 걸어주고 위로해 주는 활동가까지. 보고서를 잘 쓰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감동을 많이 받기만 하고 주진 못했어요. 미안해요. 

 

감동을 제대로 느낀 적 없다고 했는데, 감동을 너무 자주 느낀 것 같아 갑자기 민망하지만, 민언련이어서 가능했습니다. 회원분들과 동료 활동가가 준 감동 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민언련과 같은 목표를 갖고 새로운 곳에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분의 감동을 기억하며 또 만나길 기다릴게요. 모두 감동이었습니다. 

 

박채린 미디어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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