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삭제는 해도 정정은 못하겠다니, 무슨 후안무치인가
한국경제·중앙일보는 ‘쿠팡 노조 술판’ 오보 사과하고 정정보도부터 하라
등록 2022.08.1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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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뿌리 깊은 노조 혐오가 언론 스스로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실보도’ 원칙을 무너뜨린 것도 모자라 ‘삭제는 해도 정정은 못하겠다’며 적반하장식 태도로 큰 실망을 사고 있다. 한국경제는 6월 30일 <[단독] 쿠팡 노조, 본사 점거하고 대낮부터 술판 벌였다>에서 ‘독자 제공’ 출처의 사진 두 장을 싣고 “노조는 로비에 돗자리를 펴고 마스크를 벗은 채 큰 소리를(로) 대화를 나누고,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조선닷컴(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뉴스1 등 다수 언론이 같은 내용의 오보를 쏟아냈다.

 

그러나 해당 사진 속 캔음료는 커피로 밝혀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당일 트위터에 현장 사진 등을 공개하며 “커피를 맥주로 거짓 보도하는 한국경제와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 자격이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경제 기사에 실린 사진의 화질이 흐려 기사를 읽는 사람이 직접 캔의 정체를 판단하지 못하게 한 점은 기사의 의도가 노조 투쟁 음해”라고 규탄했다. 쿠팡 노조는 물류센터 폭염대책 마련 등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6월 23일부터 서울 잠실 쿠팡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여왔다.

 

사실확인 없이 정체불명의 ‘독자 제공’ 사진을 근거로 ‘노조원들이 술판을 벌였다’고 ‘단독’까지 붙여 오보를 낸 것 자체가 중대 하자에 속하지만, 오보에 대처하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쿠팡 노조의 항의와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문화일보‧뉴스1은 정정보도문 게재, 세계비즈는 정정보도문 게재 및 기사 삭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의 경우 ‘기사 삭제는 가능하지만 정정보도문은 게재할 수 없다’고 버텨 언론중재위원회가 직권으로 기사 열람차단 조정 결정을 내렸다.

 

한국경제의 경우 ‘입증할 만한 근거를 갖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취지로 합의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오보가 아님을 반박할 자료를 내놓지도 후속 보도도 하지 않으면서 오보를 방치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무책임한 오보 사태 역시 이번뿐이 아니다. 2021년 5월 <삼성바이오, 화이자 백신 만든다>는 오보를 내고도 정정도 사과도 없이 다음날 온라인에서만 기사를 삭제했다. 2020년에도 3월 <마스크 사려고 줄서던 70대 남성 쓰러져 사망사고>, 5월 <단독/하룻밤 3300만원 사용…정의연의 수상한 ‘술값’>, 12월 <수능으로 문 정권 홍보?...‘한국사 20번 문제’ 어떻길래> 등 대형오보가 잇따랐다.

 

우리는 사실보도만큼이나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중요한 것이 정정보도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아직도 정정보도에 인색하다. 오보로 드러나도, 신문윤리위원회에서 주의 조치를 받아도 어떤 사과나 정정도 하지 않고 ‘배짱 영업’을 계속해왔다. 명백한 오보를 내고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는 언론의 오만한 모습이 참담할 뿐이다.

 

정정보도를 하느니 차라리 ‘삭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언론의 실수에 대해 흔적만 지우겠다는 불순한 의도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경제와 중앙일보는 쿠팡 노조의 정정보도 및 기사삭제 등의 청구를 수용하여 ‘술판 오보’에 대해 사과하고, 당장 정정보도부터 실어라.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는 것, 신속하게 오보 경위를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언론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2022년 8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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