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물안궁' 상황에 대처하는 법 I 고은지 미디어팀 활동가
등록 2022.07.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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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물안궁 : ‘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를 줄여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 적 없나요? ‘이 얘기를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싶을 때. 저희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 때 성선설의 의미를 물어보면 성선설을 이야기한 맹자의 생애와 맹자의 다른 사상까지도 다 설명해 주시는 편이었는데요. 성선설의 의미를 물었다가 맹모삼천지교니 맹자의 유교니 하는 장황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초등학생의 모습이 그려지나요? 겉으론 영혼 없이 “아아~”를 남발하며 속으론 ‘맹자의 삶은 내가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그만 듣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초등학생의 모습이요. 그렇게 한바탕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음부터 궁금한 게 생기면 엄마한테만 물어봐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민언련 활동가인 저는 매일 많은 양의 언론 보도를 봅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이 얘기를 내가 왜 알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은데요. 연예인 이름 앞에 하트를 붙여 그 연예인 배우자나 애인의 직업 또는 나이를 소개하는 방식의 기사 제목을 볼 때 특히 그렇습니다. <‘연하의사❤️’ 이정현, 간만에 한 외출 행복해 “축복이 수유하다 왔어요”>, <검사❤️ 한지혜 딸, 지압길 걷는 13개월 아기..“애미야 쉬었다 가자”>, <‘12살 연상❤️’ 기은세, 럭셔리 고급 빌라서 전인화・한지혜・전혜빈과 파티> 등. 이런 제목의 기사 대부분이 연예인 SNS 글을 옮겨놓은 거라 내용도 ‘안물안궁’이긴 한데요(그 연예인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연예인의 SNS를 팔로우해서 해당 내용을 알고 있을 텐데 말이죠). 막상 기사를 클릭해서 보면 제목에 적혀 있는 연예인의 애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클릭 유도를 위해 주목끌기용으로 붙인 것에 불과하죠.

 

이런 기사 제목으로 일어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 +여름호 회원인터뷰 대상자는 지난 총회에서 새로 이사로 임명된 최은경 회원인데요. 인터뷰를 하기 전 한신대학교 e스포츠 융합전공 대학원・평화교양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인 최은경 회원을 조사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창에 ‘최은경 교수’를 검색해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방송인 최은경 씨 남편 직업이 교수더군요. 수백 개의 ‘교수❤️’ 최은경 기사를 피해서 제가 원하는 최은경 교수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어떤 기사는 제목에 ‘교수❤️’ 가 없더라도 기사 내용에 ‘한편 최은경은 대학교수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다’와 같은 문장을 넣어 ‘최은경 교수’라는 검색어에 기사가 걸리게 해놨더라고요.

 

연예인 배우자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대통령 부인이 외출하면서 입은 국내 브랜드 옷이 얼마나 잘 팔리고 있는지, 대기업 오너의 딸이 다른 대기업 오너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입은 옷이 어디 브랜드인지 궁금한 사람들? 물론 있겠죠. 그런데 언론이 이런 걸 메인에 배치함으로써 저처럼 이런 내용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도 ‘정말로 안 궁금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원치 않는 정보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를 왜 쓰냐고 물어보면 언론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언론은 엄연한 영리 기업이다. 기사 조회 수에 비례하는 광고단가는 언론이 돈을 벌 수 있는 방편이다. 조회 수가 잘 나오는 기사이기 때문에 메인에 배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이 포털 메인에 걸었기 때문에 조회 수가 잘 나오는 건 아닐까요?

 

7월 7일 아침 9시, 휴대전화로 네이버 뉴스 메인을 봤을 때 제가 구독하고 있는 22개 언론사 중 9개 언론사(한국경제, 머니투데이,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문화일보, 국민일보, 중앙일보)의 메인에 ‘이재용 딸, 엄마 임세령과 파리 패션쇼 참석’ 기사가 걸려 있었습니다. 해당 기사를 언론이 메인에 배치하지 않았더라도 조회 수가 잘 나왔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털로 기사를 소비하는 세상에서 많은 언론이 메인에 ‘같은 정보’를 배치하면 사람들은 ‘이게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중요한 정보인가 보구나. 나도 알아야지’라면서 클릭할 텐데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언론이 광고 핑계, 클릭 핑계, 조회 수 핑계 대지 않고 이런 기사를 메인에 배치하지 않게, 더 나아가 쓰지 않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고요. 언론이 뉴스 이용자 핑계를 댈 수 없게 소비를 안 해주면 어떨까요? 언론이 네티즌 주목끌기용으로 쓰는 기사를 클릭하지 말자는 것이죠. 저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7월 7일 아침, 이재용 딸의 파리 패션쇼 참석 기사를 하나도 클릭하지 않았거든요. 속으로 ‘안물안궁!’을 외치고 다른 기사를 클릭해서 읽었습니다. 하하하. 물론 워낙 많은 언론사 메인에 사진과 함께 관련 내용이 올라와 있어 이재용 딸이 엄마 임세령과 샤넬 커플룩을 입고 샤넬 패션쇼에 간 걸 알게 됐지만요. ‘아, 이재용 딸이 엄마랑 패션쇼 간 거를 내가 왜 알아야 하나.’

 

고은지 미디어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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