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양심적 언론인들이 방송사 비정규직 권리 보장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상품권 급여’ 방송사 ‘갑질’ 정부 조사가 필요하다
등록 2018.01.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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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방송사들이 촬영감독과 방송작가 등 프리랜서 방송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했다는 사실이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195호 ‘월급통장에 상품권이 찍혔다’ 기사로 알려졌다. 권력 감시와 함께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저널리즘의 본령이라고 강조하는 언론사들이야말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로 철저하게 나뉘는 계급 사회이며, 이 과정에서 위법과 갑질이 횡행한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통화로, 직접, 전액,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고 있다는 사실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충격인 건, 해당 보도 속 ‘상품권 급여’ 사례로 언급된 SBS 예능프로그램과 관련해 한 PD가 촬영감독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제보 사실을 확인하려 들고, 상품권 급여를 ‘관행’이라 주장했다는 점이다. <한겨레21> 보도에 따르면 SBS는 자사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 제작에 참여했던 프리랜서 촬영감독에게 6개월 치의 밀린 임금 900만원을 상품권으로 지급했다.

SBS PD가 제보자 색출에 나서고 ‘상품권 급여’ 지불을 관행이라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자, SBS는 오늘(1월 11일) 오전 “SBS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외부 인력에게 용역 대금의 일부가 상품권으로 지급된 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일”이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상품권 급여’ 사례와 규모를 조사 중에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뒤늦었지만 개선 의지를 표명한 건 일단 다행이다.

하지만 ‘절대 갑(甲)’인 PD가 자신들의 위법과 갑질 사실을 폭로한 기사를 보고 제보자 색출에 나섰음에도 SBS 사측이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건 큰 문제다. SBS는 ‘상품권 급여’ 실태 조사와 재발 방지 약속에 앞서 제보자가 느꼈을 위협과 폭력에 대해 진정어린 사과와 함께 그가 이번 제보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먼저 했어야 했다. 그나마 SBS가 <한겨레21> 보도로 알려진 사안, 다시 말해 ‘상품권 급여’ 사례에 대한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슈퍼 갑’인 방송사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외주 제작사 등에 행하는 ‘갑질’은 비단 ‘상품권 급여’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SBS는 지금이라도 제보자 색출에 나선 내부 직원 문책과 함께 제보자에 대한 진지한 사과를 전함과 동시에 불이익 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슈퍼 갑’인 방송사와 방송사 내부 직원들로부터 불합리한 처우를 강요받는 을·병·정의 위치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작금의 상황이 또 다른 불안 요소로만 작용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고용노동부 등의 관리 당국 또한 제작 현장에 만연한 갑질과 위법의 실태를 확인하고 시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현재 논란이 된 건 SBS이지만, 이런 갑질과 위법의 구조는 비단 SBS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겨레21> 보도에 따르면 SBS만이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도 정규 편성에 실패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의 임금을 문화상품권으로 지급했다. 예능 프로그램들에선 연차가 낮은 작가를 구인할 때 ‘고료: 상품권 지급’이라고 명시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 방송사의 갑질 구조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엄정한 조사를 진행한 후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방송사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작가 등 비정규직 노동자나, 또 중층적 하도급 구조 하에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인권 등 권리실태와 관련한 실태 조사를 진행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방송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종합적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혹시라도 방통위의 조사가 대충 끝날 위험을 방지하는 동시에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언론 부문 비정규직단체 등 당사자 조직과 언론․시민단체, 언론노조 등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특히 방통위는 지상파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이 ‘상품권 급여’와 같은 갑질과 위법을 행하는 과정에서 방송법의 협찬 관련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또한 살펴야 한다. SBS나 방송사들이 급여 대신 지급한 상품권들을 SBS나 방송사들이 자기 돈으로 구입해서 지급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과연 그 수많은 상품권들의 출처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만일 항간의 추측대로 비공식 협찬 비용의 일부로 그 출처가 확인된다면, 이 기회에 협찬 제도의 근본적 개선책 마련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갑’의 신분으로 을·병·정의 위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제작 현장에서 마주하는 언론인들, 특히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투쟁했던 양심적 언론인들이 앞장서서 방송계의 ‘착취 구조’를 끊어내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정권의 나팔수로 존재한 언론 환경에서 굴욕을 감내했다는 언론인들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 귀 기울이겠다는 약자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끝>

 

1월 1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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