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출입처 제도 폐지’ 선언한 KBS 신임 보도국장의 결단을 환영한다
등록 2019.1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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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철 신임 KBS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국장(이하 보도국장)이 ‘출입처 제도’의 폐지를 선언했고, KBS 보도국은 이런 엄 국장에 신임을 표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KBS의 시도가 한국 언론계의 기형적 관행인 ‘출입처 제도’의 여러 병폐를 해소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더불어 KBS를 시작으로 언론계 전체가 그간의 악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취재 시스템 마련을 위한 논의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언론의 병폐는 대부분 ‘출입처 제도’에서 기인

출입처 제도는 한국 언론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관행으로서, 검찰‧정부부처 등 기관과 기업이 기자실을 별도로 만들어 기자들을 관리하고 담당 기자는 해당 기자실에 출입하며 기사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지금에 이르러 언론이 권력 기관과 자본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한 문제점이 장기간 지적됐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시민들의 비판적 언론관 확대, ‘조국 사태’ 등 최근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언론 개혁 의제로 떠올랐다. 시민들이 ‘언론 개혁’을 요구하게 된 배경에는 ‘출입처 제도’가 근본적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검찰이나 정부부처 등 권력기관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거나 심지어 그 일방의 입장이 진실인 것처럼 ‘단독’을 붙여 보도하는 행태 △맥락과 관점 없이 그러한 입장들만 나열해 차별성이 없는 보도들 △권력기관과 특정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 △‘비출입 기자’를 배제해 일종의 패거리를 형성하는 출입처 기자들의 폐쇄성 등 최근 대중이 인식하게 된 문제점들은 상당 부분 ‘출입처 제도’에 기인한다.

 

‘출입처’의 폐쇄적 문화는 ‘저널리즘’에서 너무 멀어졌다

지금까지 ‘출입처 제도’는 취재의 편의성과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이제는 그 수명을 다했다. 출입처 기자들이 하루를 출입처에서 보내며 출입 기자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사실상 대부분의 취재와 기사 방향이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언론사가 수없이 많은데도 내용이 비슷한 기사만이 양산되고 그 내용은 대부분 기관이 뿌린 보도자료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사에서 사건 전반의 맥락이나 근본적 의제는 찾아볼 수 없다. 검찰이 특정 언론에만 비공개 정보를 유출하여 여론전에 언론을 이용한다는 문제의식이 최근에 대두됐으나, 박정희‧전두환 시대부터 ‘출입처 제도’는 독재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나팔수로 악용하는 통로였다. 시민들이 그러한 저널리즘에 속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으며 SNS‧유튜브 등 시민들의 미디어 수용 및 직접 참여 경로가 확대되면서 오히려 언론이 시민들의 저널리즘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는 사이 언론인들의 저널리즘 정신과 역량 자체가 무너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속보‧단독 경쟁 벗어난 ‘탐사보도’로 충분히 ‘출입처’ 대체할 수 있다

엄경철 신임 KBS보도국장은 ‘출입처 제도 폐지’를 공약하면서 “시민의 삶 속으로, 시민사회 속으로 카메라 앵글이 향하기 위해 모든 부서에 주제 이슈 중심의 취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합뉴스룸 취재 기능의 절반 이상을 ‘탐사 및 기획 취재’로 바꾸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권력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의 측면에서 매우 반가운 제안이나 언론계는 썩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출입처를 안 챙겨서 놓치는 이슈도 많았는데 폐지하겠다고 하니 우려가 된다”는 식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이 아직도 속보‧단독‧받아쓰기라는 스스로의 관성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 ‘조국 사태’에서 많은 언론이 검찰 발 받아쓰기로 ‘피의사실 공표 저널리즘’이라 비판 받고, 조국 가족 자택 앞 뻗치기로 ‘파파라치 저널리즘’이라는 조롱을 받을 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와 MBC <PD수첩>은 스폰서 검사,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전관예우 폐습,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탐사 보도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이끈 것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보도지침’ 사건부터 박근혜 국정농단 보도까지, 출입처 없이도 세상을 바꾼 언론인의 분투였다. 그 역사는 ‘의제 중심 보도’, ‘시민 중심 보도’를 하겠다는 엄경철 신임 국장의 청사진과 맞닿아 있다. 우리 이웃들의 인권이 침해된 현장, 권력의 부패가 돌출된 이슈를 장기간에 걸쳐 보도하면 속보나 단독보도 없이도 여론이 호응하며, 이것이 본래 언론에 맡겨진 책무이다.

 

‘출입처 관행’ 혁파, 권력기관과 기업도 태도 바꿔야

‘출입처 제도’ 폐지로부터 시작될 언론 개혁 논의는 비단 언론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출입처 제도’를 악용한 것은 권력이었으며 ‘출입처 제도’가 구시대 유물로 전락한 배경에는 ‘관 주도 사회’라는 특수한 구조도 한몫했다. 기자들을 관리 대상 또는 선전 창구로 보고 출입처에 모아놓으려 하는 권력기관과 기업의 습속, 출입처 보도자료가 아니면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으려 하는 기관들의 폐쇄성은 언론이 ‘출입처’에 의존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언론이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며 새로운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큼, 권력기관과 기업들 역시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더 열린 태도로 취재에 응해야 한다.

 

과거의 상처 있는 ‘출입처 제도 개선’, 선도적으로 결단한 KBS 보도국장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미 노무현 정부가 시도했던 출입처 제도 개선의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기존 기자실의 폐쇄성 및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기자실을 ‘브리핑룸’으로 대체하려 했으나 기존 관행의 권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정권 자체가 무너졌다. 이런 과거의 상처를 고려할 때 KBS 신임 보도국장이 던진 ‘출입처 제도 폐지’라는 화두는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언론인 스스로가 언론개혁의 시발점을 마련한다면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공론장에서 언론개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운 언론 개혁은 언론 스스로만이 할 수 있다. 그 초석을 다진 KBS 신임 보도국장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모든 언론과 권력기관, 기업 등이 ‘출입처 제도 폐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길 촉구한다. <끝>

 

2019년 11월 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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