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제까지 면피성 징계만 내릴 것인가
‘첫 사례’ ‘방송사 불이익 최소화’가 처벌기준 될 수 없다
등록 2020.09.11 17:20
조회 170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9월 9일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어 현직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정치인을 진행자로 섭외한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 CBS <김현정의 뉴스쇼>,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에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8월 4일 ‘현직 정치인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은 위법이다’ 논평을 발표하고, 다음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2조 ‘정치인 출연 및 선거방송’ 4항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3개 프로그램 심의를 요청한 결과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방송의 공공성·공정성을 유지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 준수 여부에 대한 심의를 총괄하는 기구로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엄정한 역할을 기대하는 시민들에게 또다시 실망을 안겨주었다. 방송사가 법 규정을 위반했을 때 사안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기준으로 제재를 결정해야 하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2조 ‘정치인 출연 및 선거방송’ 4항은 “방송은 공직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선거에서 선출된 자와 국무위원, 정당법에 의한 정당간부는 보도프로그램이나 토론프로그램의 진행자 또는 연속되는 프로그램의 고정진행자로 출연시켜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문제를 다룰 때 특정정당이나 정파의 이익, 입장에 편향되어서는 안된다”는 2항뿐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1항까지 위반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거에서 선출된 현직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을 보도 및 토론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은 해당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균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방송심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프로그램에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른바 ‘솜방망이 징계’로 비판 받아온 대표적인 사례가 행정지도 남발이다. 행정지도는 심의규정 등의 위반정도가 경미하여 제재조치를 명할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로 권고 또는 의견제시가 해당된다.

 

민언련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된 10개 방송사(지상파 3사 및 TBS/종편4사/보도전문채널 2사) 보도 및 시사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총 407건이 심의에 올랐다. 심의결과는 법정제재가 43건(10.6%)에 그쳤고, 행정지도가 272건(66.8%)을 차지했다. 행정지도는 방송사 재허가나 재승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행정지도에서도 권고가 173건(42.5%)으로 가장 많았다.

 

이번 권고 결정을 살펴보면 일부 심의위원은 “첫 사례이고 휴가기간 중 빚어진 일”이라든가 “처음부터 법정제재를 내리면 예고 없는 충격이 될 수 있다”, “방송사 불이익 최소화를 위해 행정지도를 내려야 한다”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누구를 위한 심의를 하고 있는가. 시청자, 시민들의 문제의식과 동떨어진 이런 안일한 인식은 반복되어 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8년 TV조선과 연합뉴스TV가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생중계해 심의대상이 되자 관련규정 미비를 이유로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그러자 2019년 지상파3사와 MBN, YTN은 문재인 대통령 모친의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또 방송으로 내보냈다. 그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초유의 상황’이었다며 해당 보도에 대해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결국 똑같은 문제는 2020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관련 보도에서 되풀이됐다.

 

이번 심의과정에서 “프로그램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와 이해충돌이 발생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친 한 심의위원의 발언은 민원이 제기된 방송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했는지 의문이 든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7월 22일 진행자로 나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임에도 부동산정책 관련 대담을 진행했다. 진행 도중 조 의원은 “제가 여당 국토위 간사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사실 당사자”라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6월 29일 방송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진행자로 나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출마 여부를 주제로 다뤘다. 진행자가 자신이 당사자인 문제를 방송에서 다루고 있는데, 심의위원이 이런 내용을 확인하고도 중립성과 이해충돌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심의위원으로서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방송심의소위원회 행정지도 결정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시민들의 민원접수와 함께 인지심의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가 이미 현직 국회의원을 진행자로 내세워 방송을 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당시 인지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런 심의를 계속 마주하며 그 존재이유를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미디어 영역에서 규제만능주의는 철저하게 경계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 규정을 엄연히 위배한 프로그램에 대한 면피성 경징계가 되풀이한다면 방송사의 실효성 있는 개선과 재발방지 조치를 이끌어낼 수 없다. 2011년부터 오보, 막말, 왜곡편파, 선정방송으로 방송품질을 떨어뜨린 종편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10년간 심의결과가 그 방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시청자를 위한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 실현과 공적 책임 준수의 책임을 견인할 임무를 더 이상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0년 9월 1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comment_20200911_04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