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시청자들은 왜 ‘시신이송’ 장면을 마주해야 하는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행정지도만 세 번째, 이대론 안된다
등록 2020.09.18 13:18
조회 749

9월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이송 장면을 방송한 KBS‧TV조선‧채널A‧MBN‧YTN에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는 법정제재와 행정지도로 나뉘는데, 행정지도는 심의규정 등의 위반정도가 경미하여 제재조치를 명할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행정지도는 방송사에 어떤 법적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

 

2018년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신이송 장면을 사용한 방송에 행정지도를 결정한 게 벌써 세 번째다. 시신이송 장면 방송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단 한 차례도 법정제재를 내리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솜방망이 징계를 되풀이하는 사이 방송사들은 개선의 노력은커녕 ‘죽음’의 길조차 상품화하는 보도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운구‧응급차 중계보도 금지 없다’ 행정지도

2018년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고 노회찬 의원 시신 이송을 생중계했다. TV조선은 시신을 이송 중인 차량을 따라가며 생중계했고, 운구차량을 확대해 보여주는 등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당시 TV조선은 시민들의 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심지어 TV조선과 마찬가지로 시신이송 차량을 생중계한 연합뉴스TV <뉴스13>에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심의 과정 및 결과에는 심의위원들의 몰지각함이 있다. 당시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심영섭 심의위원은 “심의규정에 운구‧응급차 중계보도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며 행정지도를 주장했다. 결국 심 위원의 주장에 전광삼, 박상수 심의위원까지 동조하며 다수결로 행정지도 의견제시가 의결됐다. 심 위원 주장대로 시신이송 장면 관련한 기준이 방송심의 규정에 없어서 제재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 품위유지 5호는 방송에서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TV조선, 연합뉴스TV 등의 시신이송 장면 방송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고, 불쾌감을 유발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해당 조항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심영섭 심의위원은 ‘관련 조항이 없다’는 핑계로 솜방망이 처분을 이끌었다.

 

2019년, ‘초유 상황’ 이유로 두 번째 행정지도

2018년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송 생중계 방송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회의 납득할 수 없는 심의는 2019년 지상파 3사인 KBS, MBC, SBS를 비롯해 MBN, YTN의 문재인 대통령 모친 시신운구 방송으로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의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상파 3사와 YTN은 시신운구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MBN은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송 생중계와 마찬가지로 시신운구 영상 방영에 시민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하지만 이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제대로 된 심의를 하지 않았다. ‘초유의 일이었다’, ‘방송 직전에 해당 영상이 들어왔다’ 등의 이유를 댄 방송사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까지 했다. 김재영 심의위원은 “이런 일 자체가 초유의 상황이라 언론사도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방송사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9년에도 시신운구 장면을 그대로 사용한 방송사들에게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유사한 문제가 2018년에 이어 반복됐지만, 방송사들의 재발 방지를 위한 엄정한 제재는커녕 또다시 ‘봐주기’ 심의로 넘어가버렸다.

 

2020년, ‘과거 유사사례’ 이유로 세 번째 행정지도

2020년에도 문제는 반복됐다. 7월 10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하자 KBS, TV조선, 채널A, MBN, YTN은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또다시 방송에 사용했다. 언론의 계속되는 이러한 행태에 시민들의 비판이 다시 쏟아졌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같은 문제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어 일어났는데도 어김없이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이번엔 방송사의 입장을 듣는 의견진술조차 거치지 않았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9월 16일 회의에서 2018년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송 생중계, 2019년 문재인 대통령 모친 시신운구 장면 방송 등의 사례를 들어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앞선 두 차례 심의가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점을 간과한 채 ‘과거에 유사한 사례를 행정지도로 의결했으니 권고로 하자’고 나선 것이다.

 

심의위원들은 이번 심의에서도 제27조 품위유지 등 기타 조항을 검토하지 않았다. 같은 문제가 세 번째 반복됐지만 이를 엄중하게 문제 삼는 심의위원은 없었다. 물론 허미숙 방송심의소위원회 소위원장은 “의도를 가지고 이 장면을 내보낸 것 같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이소영 심의위원도 “필요하지 않은 장면을 관행적으로 쓴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일부 심의위원이 지적한 이런 문제는 방송사만의 책임일까. 앞서 2018년과 2019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과정 및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방송사들이 ‘의도가 담긴 듯한, 불필요한 시신이송 장면을 관행적으로 쓰는’ 배경에는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를 반복해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문제를 일으켜도 제대로 된 제재를 받지 않으니 방송사들이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9월 11일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언제까지 면피성 징계만 내릴 것인가’ 논평을 통해 방송심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프로그램에 행정지도를 남발하며 형식적 대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무책임을 지적한 바 있다. 반복된 시신이송 장면 방송 문제도 형식적 징계로 어물쩍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의 공공성·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업무와 함께 방송의 공적 책임 준수 여부에 대한 심의 및 제재 등을 총괄하는 기구이다. 그러나 국민이 위임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으로서 존립의 의미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여온 안일한 태도를 각성하지 않는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언론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0년 9월 1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comment_20200918_044.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