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집단 이기주의로 뭉친 파벌의식, ‘당파성’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

‘정파적’이란 프레임으로 한국 언론을 바라보아도 되나?
등록 2017.06.1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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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정파적인가?

 

‘한국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08년 전후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의 2006년 판만 하더라도 언론의 정파성에 대한 질문이 채택되질 않았다. 

 

2008년에 가서야 언론의 정치적 편파성에 대한 조사결과가 보고되었다. ‘수용자들이 평소 신문기사 및 방송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기 위해 10가지의 부정적인 요인들을 제시한 다음 4점 척도에 답을 하도록 한 결과,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는 항목에 신문은 2.77점, 방송은 2.69점의 응답을 얻어 제시된 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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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08년 실시한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는 항목에 신문은 2.77점, 방송은 2.69점의 응답을 얻어 제시된 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진 :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보고서. 2008. 한국언론진흥재단)

 

이후에 이루어진 수용자 의식조사에는 정파성을 묻는 질문은 없었다. 언론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묻는 질문은 2008년 이전과 이후의 조사에서도 지속돼 연도별 추이를 보고하기도 했지만 정파성은 단발마로 끝났다.

 

언론관련 학술지에 한국 언론의 정파성 문제를 다룬 논문이 다수 실린 해는 2009년경이다. 자연 이즈음에는 이런 주제를 다루는 학술행사나 업계 토론회도 자주 열렸다. 언론 매체의 정파성과 한국사회 이념갈등의 문제를 놓고 많은 걱정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사회의 심각한 이념갈등에 언론의 정파성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논의도 잦았다.

 

정파보다는 당파가 더 어울리는 한국 언론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한국의 언론은 정파적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파성이란 당파성과는 차이가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용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그 둘의 차이를 정의하자면 전자는 정치적 이념으로 뭉친 파벌의식이고 후자는 집단 이기주의로 뭉친 파벌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의를 잣대로 한국 언론을 차분히 다시 들여다보면 정파적이라기보다는 당파적이라는 단어가 적합해 보인다. 그저 누가 우리 편인가에 따라 언론의 보도는 언제든 정치적 지향도 가치도 한순간에 다 내팽개쳐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보도다. 스스로 보수라고 칭하는 신문매체라면 시장의 공정한 작동을 저해할 수 있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되는데 사실은 이와 달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불공정거래 관행에 예사로 눈을 감았다. 사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건실한 중소기업이 많아야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신문은 이 문제에 강한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신문시장의 공정거래규정을 어긴 일도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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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보수라고 칭하는 신문매체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불공정거래 관행에 예사로 눈을 감았다. (사진 : EBS 지식채널e 화면 갈무리)

 

방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한 경험을 가진 나라에 비하면 이념적 스펙트럼 상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중도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경쟁하는 한국에서는 방송 역시 당파성밖에 가지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진보라고 이름 붙여진 정당이 집권할 때나 보수라고 이름 붙여진 정당이 집권할 때나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여 공정경쟁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로 내걸고 있기 때문에 방송 역시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해도 공영방송은 당파적일 수는 있어도 정파적일 수는 없다. 사영방송은 이념적 가치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더 우선에 두기 때문에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 왜 ‘정파적’이라 불리게 되었나?

 

이미 중소기업 이상의 반열에 들어간 신문기업의 경우, 대기업이 광고를 많이 줄 수 있어서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혼맥으로도 동맹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당파적 관계임에도 이들을 정파적이라고 부른 계기는 김대중 정권 시기부터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누구보다 강하게 부르짖어서 아무리 봐도 신자유주의와 어떤 정치인보다 잘 맞는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 정권을 좌파 정권이라고 딱지를 붙였기 때문에 졸지에 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당이 우파 정당, 보수 정당이 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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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정권 이후 언론에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정파적'이기보다 '당파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고 할 수 있다. 

 

그전 정권까지는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이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각이 중심이었으므로 여당지, 야당지와 같은 개념은 있어도 진보와 보수란 개념은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 김대중 정권 이후의 시기에도 여전히 정권과 가까운 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라는 측면에서 당파가 맞다. 그럼에도 진보와 보수가 사용된 데는 독재정권의 후신과 가까이 지내는 자신들의 모습이 더 이상 비루해지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좌파, 진보라고 몰아세운 덕(?)이다. 이로써 자신들에게 보수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이제는 정체를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보정당 진보매체와 보수정당 보수매체의 경쟁이 가능하고 이들 사이 제대로 된 정책 대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한국사회에서 보수라고 불려온,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신들이 그렇게 부른 매체에게서 보수라는 딱지를 떼어내야 하겠다. 

 

정연구(민언련 이사 /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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