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중간광고와 수신료를 다루는 태도는 과학적인가?

언론운동의 ‘과학화’를 위하여
김동민(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등록 2018.10.02 17:06
조회 304

미디어 생태계에 격렬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국면에서 언론운동도 당위적 주장과 인상 비평을 극복하고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언련이 선도해온 언론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운동의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모니터였다. 모니터 결과를 근거로 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국민들의 각성을 기대한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언론운동은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상파방송과 종이신문 전성기의 산물이다.
신문 산업의 위기라는 말도 이미 먼 옛날의 추억이다. 그때는 신문이 저널리즘을 주도해왔다고 해서 신문의 위기를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위기로 과장했었다. 그래서 신문사를 지원하는 각종 지원방안도 강구되었다. 그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언론학자들과 언론운동단체들이 이러한 담론과 운동을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언론학자들이 전문지식을 가지고 참여함으로써 언론운동에 기여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문지식이 지금도 통할까? 언론학계는 새로운 상황을 인식하고 이론을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대체로 보수적인 학회는 자연과학의 이론에까지 접근하여 생소한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편이지만 진보적인 학회는 그 방면에 무신경하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초기의 언론학자 윌버 슈람(Wilbur Schramm)이 텔레비전이 전혀 보급되지 않은 지역을 조사해 낸 저서 『Television in the Lives of Our Child』에 대해 텔레비전 영상의 고유한 본성을 전혀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내용 선호도, 시청 시간, 사용되는 어휘 등에 국한되었다고 지적하였다. 프로그램과 내용 분석은 미디어의 위력이나 무의식을 파고드는 힘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슈람에 국한되지 않고 이후 언론학 전체를 지배해왔다. 맥루언이 ‘미디어가 메시지’라고 주장한 맥락은 언론학자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디어에 주목하지 않고 메시지에만 매달려온 언론학자들은 맥루언의 통찰을 이해하려들지 않았다. 언론학자들은 맥루언의 이론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은유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스마트 폰이 보급된 지 10년 동안의 변화만 상기해보아도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통찰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맥루언의 이론은 과학이다.

 

중간광고는 시청자를 불편하게 한다.
정책의 측면도 마찬가지다. 지상파방송이 경영위기에 직면하면서 중간광고와 가상광고, 간접광고 등을 요구할 때 언론운동단체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종편도 하는 중간광고를 여태까지 지상파방송만 금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한겨레신문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팀의 ‘지상파TV방송의 중간광고 도입에 대한 일반 시청자와 광고인의 인식 비교’를 인용하며 반대여론을 소개했다. 매비우스와 언론인권센터 활동가의 의견도 곁들였다. 제목도 섹시하다. <'지상파 중간광고' 다시 군불 때기, 시청자 권리 싹둑?>  


여론이라는 것은 만들어지는 것이며 변하는 것이다. 과학은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검증된 지식을 추구한다. 따라서 여론을 빌미로 정책을 결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심리적으로 이익보다는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프로그램의 중간을 끊어 광고 보기를 강요하는 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중간광고와 수신료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러나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는지 설명하면 여론은 바뀐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을 학습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시청자 주권은 책임을 수반한다.


수신료도 마찬가지다.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 9월 30일 방송은 공영방송의 신뢰도 회복에 대해 다루었는데, 저널리즘 전문가들의 진단도 대부분 사견(私見)과 인상 비평에 불과했다. 정준희 교수가 영국의 방송 수신료가 높다는 얘기를 스쳐가듯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사실은 그게 핵심이다. 


CJ와 넷플릭스 등 국내외 거대자본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경제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 아무리 신뢰도 회복을 위해 노력해본들 사상누각일 것이다. 거대자본의 물량투자와 OTT의 각개약진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사기업인 신문사도 국고로 지원하는데 이 마당에 공영방송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경험주의를 뛰어넘는 과학적 분석,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의 구축을 위한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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