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우리 모두의 성찰과 실천: 이성적 판단과 건강한 감정, 건강한 공론장의 재건

왜 다시 미디어 공공성인가?
정수영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19.10.22 11:29
조회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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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정감사 기간 동안 여야 의원들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것이 있다. 하나는 이른바 가짜뉴스(fake news)의 폐해다. 또 하나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한 방송법 4조의 중요성이다. 문제는 무엇을 가짜뉴스로 규정할 것인지, 이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방송편성에 부당한 간섭을 가하는 것이 누구인지에 관한 입장과 해석에서 여전히 크고 넓은 간극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짜뉴스가 유포 확산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확증편향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을 기반으로 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사실이나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이른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가? 무엇이 뉴스이고 무엇이 정보인가? 무엇이 허위이고 왜곡이며 조작인가? 사실(fact)과 진실(truth)은 같은 것인가? 어디까지가 합리적 의심이고 어디까지가 무분별한 의혹 제기인가? 어디까지가 정당한 취재의 영역이고 피의사실공표인가? 감정은 단지 주관적이고 충동적이며 비도덕적인, 그래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공감과 연민, 정당한 분노 등의 감정이 배제된 채 이성과 합리성만으로 공론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확증편향을 구성하는 믿음과 신념, 혹은 혐오와 차별, 증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 팩트 체크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뉴스 리터러시 혹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으로 작금의 문제적 현상들은 해결 가능한가?

 

합법과 불법, 옳음과 그름, 좋음과 싫음. 상이한 층위의 원칙과 기준들이 혼재한 가운데 두서없이 떠오르는 질문의 답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미로에 갇혀 있는 듯 혼란스러울 뿐이다. 

 

‘미디어 공공성’의 구현과 ‘미디어 공론장’의 재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금 다시 부상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국가적 동원의 수단에 불과했다. 공영방송은 국가적 임무를 수행하는 발전모델에 갇혀 있었다. 공공성이라는 가치와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뒷받침해 줄만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토대가 모두 미약하기 그지없다. 정치적 독립과 시민참여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더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공영방송이 건강한 공론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성찰과 실천이다. 

 

공론장은 공공이슈 혹은 다양한 권력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와 의견과 관점 등을 시민 공중들이 폭넓게 습득하고 자유롭게 교환하고 토론하면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한 과정이자 통로이며 공간이다. 이성적 판단과 건강한 감정들을 생산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공론(公論)을 형성해 가는 사회적 영역이다. 파편화된 정보와 소모적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편가르기식 갈등이나 단순 여론, 의사공론(疑似公論)을 조작하고 생성하여 유포하는 이른바 ‘재봉건화된 공론장’과는 다르다. 공론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정보나 주장이나 의견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못할지언정, 다만 그것들이 가짜이거나 허위이거나 왜곡이거나 조작은 아닐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과 신뢰를 교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broadcasting, 放送)의 개념과 범주를 어떻게 획정해야 하는 지도 모호하고 공영방송의 위상과 역할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공공성을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재건하고 미디어 공론장을 지속가능한 사회문화적 제도로 재건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 정치적 유불리나 상업적 이해관계를 넘어 건강한 공론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원칙과 기준이 필요한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환경과 토대는 무엇인가? 정부 행정당국, 공영방송 종사자, 그리고 시청자시민 각각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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