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코로나19가 보여준 불편한 진실, 아픔조차 불평등하다
최은경(민언련 정책위원, 전남과학대학교 교수)
등록 2020.10.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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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ixabay

 

2020년 새해를 제대로 축하하지도 못하고 맞게 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 멈춤과 거리두기를 소개했다. 우리는 도시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보내주는 공공안전경보 문자서비스를 받고, 밤사이 늘어난 감염자 수를 확인하며, 랜선 넘어 먼 곳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마스크 넘어 보이는 상대방의 눈과 목소리에 의존해 소통하는 것도 일상이 된 작금의 뉴노멀(New Normal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을 뜻하는 말)은 언제쯤 또 다른 뉴노멀을 맞이할 수 있을까. 

 

우리는 2월과 8월 일어난 지역사회 집단감염으로 코로나19의 경제적·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혹독하게 경험했다. 학교, 병원, 마트 같은 일상공간뿐만 아니라 방송사, 국회, 기업, 공공기관, 음식점, 카페, 놀이·문화 시설이 문을 닫아야 했고,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요구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외출과 모임,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다 보니 거리 풍경도 바뀌고 있다. 그 때문에 화려한 성공과 성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사회적 약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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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Joshua Lott, 로이터

(의료진이 2020년 4월 7일 시카고 로즈랜드 커뮤니티 병원 밖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코로나19, 유색인종·흑인·가난한 지역의 피해

 

국내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한 유럽과 북미를 대표하는 언론에 따르면, 영국의 첫 코로나19 확진자 2,249명 중 35%가 유색인종이었고, 미국 시카고 지역 코로나19 사망자의 72%가 흑인이었다고 한다. 미국 내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뉴욕의 경우 가장 가난한 동네의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부유한 동네의 사망률보다 15배 높게 나타났다. 

 

국가 간 건강의 불평등은 오랜 국제사회 문제로 논의된 바 있지만, 코로나19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곳은 없어 보인다. 예컨대 경제대국이라 일컫는 미국의 경우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은 경제적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백인보다 당뇨병과 심장질환, 폐와 면역 체계를 약화하는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치명적이라 결국 이들이 코로나19에 걸릴 확률뿐 아니라 중증 환자가 되거나 사망할 확률도 높아졌다. 

 

게다가 도시 곳곳의 강제이동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서비스업과 단기 고용에 의존하던 저소득층은 실업과 굶주림 때문에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소득의 불평등, 소수 인종에 대한 불평등, 직업과 주거에 대한 차이, 나아가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모두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 시대의 큰 숙제가 될 것이란 뼈아픈 비판이었다.

 

‘약자·재난 감성팔이’ 뉴스에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우리 언론은 어떠한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처참한 환경에 처한 학대 아동을 신문과 방송은 자주 보도하지만, 아동을 학대하고 방치한 보호자에게 공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거나 현재는 법과 시설이 부족하니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동정심을 담은 천편일률적 보도가 대부분이다. 그 많던 아동학대 예방정책과 수많은 예산에 대한 점검 또는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고, 후속보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책임자의 말은 인용하면서도, 그 말이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가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확인하는 언론도 거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언론은 약자에 관한 뉴스가 자극적일수록 관심을 둔다. 요양원에서 큰불이 나고 인명피해가 나야 보도가 되고,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야 방송 기자들이 몰린다. 코로나19로 요양원이나 격리시설 면회가 엄격히 금지됨에도 요양원 집단감염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요양원의 화재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개선하려는지 시민은 알아야 할 권리가 충분히 있음에도 권력을 가진 책임자에게 질문을 대신해줄 사람들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재민 1만 명을 넘긴 기록적인 한반도 장마는 어떠했는가. 긴 장마로 인해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 순식간에 물에 잠긴 마을 주민들의 보상문제나 복구 등에 대한 이슈는 매일 재생산되는 코로나19 ‘공포마케팅’ 뉴스, 도돌이표 같은 정치권 공방, 트로트 오락프로그램에 묻혀 어느 언론도 물어봐주지 않는다. 

 

마치 오늘 공분하고 동정하면 내일은 다른 일이 일어날 거라고 국민을 길들이려고 작정한 듯하다. 폭력, 학대, 화재, 재난은 누군가의 가족, 친구, 이웃의 삶이 송두리째 뺏기는 것과 같이 중대한 사건이었을 텐데 언론은 늘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인다. 과연 약자와 재난이란 소재를 이용해 만든 감성팔이 뉴스에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뉴스는 신속하고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현상에 가려진 진실을 보기 위해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그렇게 동시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뉴스, 가치 있는 뉴스를 생산하는 건강한 언론이 있어야 ‘예측할 수 없어 더 힘든’ 코로나19 시대를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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