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대선보도 ‘계약서 없는 기사형광고’, 캠프 자처하는 언론
이명재(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21.12.20 18:04
조회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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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2022년 3월 9일에 실시될 예정이다. 2021년 12월 20일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대 대선 예비후보자 명부에 등록된 인물은 총 20명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민주정치의 꽃’을 선거라고들 한다. 그중 대통령 선거는 한 사회의 정초(定礎)를 놓는 대작업이자 정치에서 가장 치열한 순간이다. 다만 그 ‘가장 치열한 순간’이 우리 사회의 최정점이 될 것인지 최저점이 될 것인지는 사회의 선택과 선택을 낳는 총체적 역량에 달려 있다. 5년 만의 대선이 축제가 될 것인지, 향후 수년간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짓누르는 기나긴 악몽의 시작이 될 것인지는 자신들의 실력과 결정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최종 결정의 내용과 수준을 이끄는 게 바로 언론이다.

 

쏟아지는 선거보도, 과잉처럼 보이지만 빈곤하다

 

지금 선거보도는 그야말로 홍수처럼 넘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말하는 정치와 선거는 과연 어떤 것인가. 언론보도 대부분은 지극히 협애(狹隘)한 정치, 결과가 다른 모든 것을 용납시키는 정치술과 정치공학으로서의 선거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정치 담론의 무성함은 범람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지만, 그 풍요는 실은 빈곤의 이면일 뿐이다. 정치라는 이름의 반(反)정치일 뿐이며, 정치의 이름으로 정치를 죽이는 것일 뿐이다.

 

공자가 말했듯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정(正)’으로서 정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좌우하는 정치에 과잉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과잉보다는 결여로 인한 것이다. 과잉과 결핍이 우리 정치의 음과 양이다. 과잉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과잉을 부른다. 언론에 의해 정치는 넘쳐나는 듯하지만, 실은 공허함과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언론의 중대한 무책임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지금 상당수 언론이 보이고 있는 것은 무책임과 부실 따위를 넘어선 수준이다. 기사 형식을 빌어 특정 후보를 위한 광고를 쓰고 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적잖은 언론의 실상이다. 정치, 자본과 함께 기득권 동맹의 삼위일체 단일대오를 갖추고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무섭게 돌진하는 투우처럼 선봉대의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Just How Stupid Are We?)> 저자인 미국 저널리스트 리처드 솅크먼은 집필 동기에 대해 “도대체 왜 부시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결국 솅크먼이 이 책을 통해 제기하는 주제는 ‘대중의 어리석음’이다. 그는 정치인을 뽑을 때 유권자들은 마치 복음주의 교회의 신도들처럼 ‘느낌’에 따라 후보를 선택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부시에 대한 비판서가 결코 아니다. “부시와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미국 국민들에 대한 실망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부시에 대한 성토가 아니라 유권자에 대한 비판서다. 그는 “엉망이 돼버린 우리의 상황을 부시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태도”라면서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지도자 한 명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며 우리도 그 일들에 관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솅크먼이 한국에 와서 지금 한국 언론의 대선보도를 본다면 ‘과연 대중의 어리석음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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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4일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가 언론계에 만연된 기사형광고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칼럼과 무관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매일같이 쏟아지는 ‘특정 후보를 위한 보도’

 

최근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기사형 광고를 포털에 송고한 문제로 포털에서 퇴출당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기사형 광고'란 기사처럼 생겼지만, 광고주가 의뢰해 기사처럼 꾸며서 내달라고 하는 광고의 일종이다. 더욱 적확하게는 '기사 가장형 광고'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기사형 광고의 기망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지탄이 가해졌다.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해 편집해야 한다는 기사와 광고의 분리 원칙은 언론의 직업윤리이자 언론이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본 전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사형 광고는 그 기본과 원칙에서 자기부정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계약서에 의해 명확한 물증을 남긴 기사형 광고는 적발되고 응징을 받았다. 하지만 유력 신문의 지면과 일부 방송의 전파를 통해 언론의 외피를 쓰고 기사라는 이름으로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위한 보도’를 하는 기사형 광고가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대선을 하나의 시험이라고 한다면 진정 시험받고 있는 건 후보들이 아니다. 사회이자 우리 자신이다.

 

선거는 후보들의 자격을 묻기 이전에 국민의 자격을 묻는 것이며, 나라와 민주주의의 주인될 자격을 묻는 것이다. 답안을 내는 것도 후보들이 아니며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답안 중 하나는 우리가 언론을 언론으로, 언론을 하나의 제도로 가질 만한 역량과 자격이 되는지를 묻는 것에 대한 답안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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