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언론에 의한 언어의 오염과 타락 
이명재(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22.05.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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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7월 4일 KBS <질문하는 기자들Q>는 언론의 언어가 우리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었다. 방송에 출연한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는 '당선자'와 '당선인' 사례를 들며, "당선자라는 표현은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당시 헌법에 명시된 당선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덧붙여 곧바로 당선자라는 표현을 거두고 당선인이란 표현으로 일제히 바꾼 언론의 태도를 지적했다. Ⓒ KBS <질문하는 기자들 Q> 화면 갈무리(2021/7/4)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에 대한 호칭을 놓고 ‘당선자’냐 '당선인'이냐는 논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요구를 대부분 언론이 그대로 따랐으니 논쟁은 없었다. 논쟁이 붙어야 할 사안에서 논쟁이 없었던 것이다. 극히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일제히 ‘당선자’를 버리고 '당선인'으로 불렀다.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최소한 곧 대통령이 될 분에게 ‘놈 자(者)’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발상에 대해선 따져봤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 발상에 담긴, 차기 대통령에 대해 ‘감히’ ‘불경스럽게’라는 생각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최소한 검증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당선자’로 명기된 헌법 제67, 68조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또 한시적인 역할에 대해선 대체로 ‘자’를 쓰며 지속적인 역할에 대해선 ‘인’을 붙이는 것이 통례라는 언어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당선자를 뽑아준 유권‘자’는 차치하고라도 ‘자’를 붙이는 ‘기자’ 자신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그 비하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는가. 참 모를 일이다. 논란을 제기해야 할 사안에서 논란이 실종돼버린 ‘당선인’ 사건은 차기 권력자와 그 주변에 대한 낯 뜨거운 일련의 보도 중 하나이자 예고편이었다.

 

논란으로 봐야 할 사안, 그래선 안 될 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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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혐오심판> 1화 방송화면 갈무리

 

거꾸로 논란으로 봐서는 안 될 사안들은 논란이 됐다. 장애인단체의 장애인권리 예산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놓고 언론은 당시 야당 대표의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발언을 인용하며 양측 간 ‘논란’으로 몰아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이유에 대해 질문 받은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경기력 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변하자 이를 ‘전장연 논란’으로, 게다가 과거 언론에 의해 가공된 ‘페미니즘 논란’까지 끄집어냈다.

 

논란이 돼야 할 사안에서 논란이 실종되고, 논란이 될 수 없는 것을 논란으로 만드는 언론의 행태들. 언론에 의한 언어의 오염이며 타락이다. 그릇된 언어는 그릇된 인식에서 나오고, 그릇된 언어가 다시 그릇된 인식을 부른다. 한국의 언론이 언어 왜곡의 발원지이자 오염원의 배양처가 되는 현실의 단면들이다.

 

검찰개혁 법안을 놓고 우리 언론이 하나같이 쓰고 있는 ‘검수완박’과 ‘완전박탈’라는 용어는 검찰을 ‘약자’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없을 만큼 기형적인 검찰 권력을 분산하자는 입법 취지에 대한 정확한 전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아 경찰에 넘기는 것이 아닌 데도 대다수 매체는 검찰 수사권을 100% 박탈하는 것으로 명명(命名)한다. 언론의 이같은–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합심과 협력의 결과 절대 권력을 누려온 검찰은 오히려 자신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기는 가련한 처지로 대중의 동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언론의 잘못된 언어와 명명과 작명은 언론을 넘어 우리 사회 곳곳으로 파급된다. 한국 언론학자들의 모임으로는 대표적인 단체가 네이버·카카오 의뢰로 작성한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연구보고서’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과 같은 언론운동단체를 ‘특정 성향을 가진 단체’로 규정하는 사태 앞에 나는 먼저 학자들의 인식에 개탄하지만, 한편으로 이른바 보수언론에 의한 ‘시민언론운동단체는 편향’ 주문의 위력을 실감한다.

 

선택적 객관성, 부실한 객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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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3일 발표한 '2022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43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인 2006년 31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70위로 떨어진 바 있다. Ⓒ 국경없는 기자회(RSF) <RSF’s 2022 World Press Freedom Index> 갈무리 화면

 

언론의 언어 오염과 타락은 한국 언론의 객관주의와도 많이 닿아 있다. 한국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받아들여져 온 ‘객관성’은 그 자체로 잘못될 게 없다. 문제는 선택적 객관성, 부실한 객관성에 있다. 객관성을 ‘철저한 팩트 기반에 입각한 보도’라고 정의한다면, 객관적인지 정확히 따져야 할 때는 팩트를 따지지 않는 반면 최소한의 보편 타당성을 거쳐야 할 때는 객관성의 이름으로 역시 팩트 확인의 노력 없이 단순 중계에 머무른다. 팩트체크는 팩트체크 부서에서만 따로 하는 것일 뿐인가.

 

때마침 2022년 세계 언론자유 순위에서 한국이 43위로 아시아 최상위권을 유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한국 언론이 거의 제한 없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순위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자유를 누릴 만큼의 자격이 한국 언론에 있느냐에 대한 답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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