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삼성뇌물명단’ 관련 청와대의 엠바고와 ‘YTN 돌발영상’ 삭제에 대한 논평(2008.3.11)
등록 2013.09.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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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 권언유착, ‘프레스 프렌들리’로 부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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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YTN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로 구성된 춘추관 운영위원회로부터 ‘3일간 청와대 출입금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7일 방송된 ‘YTN 돌발영상’이 “백 브리핑 실명비보도 원칙과 상호 신의를 위배”했다는 게 징계 사유다. ‘문제의’ 돌발영상은 지난 5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삼성 뇌물을 받은 현 정부 고위공직자 명단’을 발표하기 한 시간여 전에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사실무근”이라는 해명브리핑을 미리 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네티즌들로부터 거센 비난이 쏟아졌고 청와대는 YTN 측에 ‘돌발영상’의 방송 내용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오후 YTN은 ‘문제의’ 동영상보도를 아예 삭제했고, 각종 국내 포털사이트들에서도 해당 동영상이 사라졌다.
△비리 의혹이 제기되기도 전에 열린 ‘무조건 사실무근’ 식의 해괴한 청와대 브리핑 △이를 ‘취재 편의’, ‘엠바고’ 등으로 합리화한 청와대와 기자들 △보도내용과 관련해 언론사에 ‘수정’을 요청한 청와대와 해당 방송분을 삭제한 언론사 △부당한 엠바고를 깨뜨린 동료기자를 ‘상호신의 위배’로 중징계한 청와대 출입기자단.
우리는 일련의 과정을 접하며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구시대적 권언관계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우선 우리는 5일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이 엠바고를 걸고 나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부터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사제단의 ‘뇌물 수수자 명단’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둘째 문제다. 기자들이 사제단에서 내놓을 명단과 그들의 구체적인 비리 의혹에 대해 청와대의 대응을 꼼꼼하게 취재할 의지가 있다면 해괴한 ‘사전 브리핑’은 제안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동관 대변인이 사제단의 발표를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내용 없는 브리핑이 될 것은 뻔하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 각료 및 후보자들에 대해 온갖 의혹이 쏟아졌고, 그 중 일부는 사퇴를 하거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다면 기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확인 취재해야 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를 포기하고 대변인의 말을 받아쓰는 데 그쳤다.
엠바고는 공익 등의 이유로 일정 시간동안 보도를 유예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엠바고는 국민의 알권리를 포기한 언론의 ‘취재 편의’, 비리 의혹에 모르쇠로 대응하는 청와대의 ‘업무 편의’를 위해 동원되는 제도가 아니며, 권력과 언론의 부당한 신뢰 관계를 위해 지켜야 하는 제도도 아니다.


YTN이 ‘돌발영상’을 삭제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돌발영상’이 7일 오후 2시 40분 첫방송된 직후 청와대는 YTN에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YTN은 불과 4시간 뒤인 6시 40분 재방송을 끝으로 해당 방송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YTN은 ‘돌발영상이 엠바고를 어겼다’고 판단해 삭제했다지만 엠바고의 정당성을 좀 더 신중하게 따졌다면, 그리고 청와대의 ‘수정요구’가 없었다면 그토록 발 빠르게 해당 동영상을 삭제했을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YTN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한 것인가? 그 내용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언론통제’의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고, YTN은 부당한 압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YTN이 삭제한 ‘돌발영상’을 복원해줄 것을 촉구한다. 이번 사안은 ‘엠바고 파기’라는 형식 논리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비리 의혹에 대처하는 권력집단의 왜곡된 처신, 국민의 알권리를 포기한 언론인들의 안이한 태도, 권력과 언론이 ‘엠바고’라는 이름으로 맺은 부적절한 관계야말로 문제의 본질이다. ‘삭제’의 실효성도 없다. 이미 해당 ‘돌발영상’은 네티즌들에 의해 확산될 대로 확산되었고, 인터넷은 청와대와 기자단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들끓고 있다. 지금 YTN이 할 일은 ‘돌발영상’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권언 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우리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YTN 기자들에게 내린 징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5일 벌어진 해괴한 브리핑의 경위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해명부터 내놓기 바란다. 지금 국민들은 청와대 기자단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끝>
 

 

2008년 3월 1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