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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 관련 보수신문 보도에 대한 논평(2008.3.20)
등록 2013.09.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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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바뀌면 비판기준도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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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2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1주년을 맞아 방송기자클럽에서 주최한 특별회견에서 약 50일 앞으로 다가온 17대 총선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 발언에 야당과 보수신문들은 즉각 ‘선거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2008년 3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대통령의 선거개입’이 논란을 빚고 있다.
3월 14일 이명박 대통령은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강원도 출신 장관들을 언급하며 “새 내각은 강원도 내각”이라고 말했다. 이틀 뒤 16일 대통령은 ‘국정철학 확산을 위한 장·차관 워크숍’에서 “지금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가 오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17일 이 대통령은 경북 구미를 방문한 자리에서 남유진 구미시장이 “구미공단을 넓힐 수 있도록 선물을 하나 달라”고 하자 즉석에서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또 18일에는 새만금 방조제를 방문해 “군산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고, 20일에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출마하는 충남 홍성을 육로로 방문하려다 헬기방문으로 바꿨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말과 행보는 약 20일 앞으로 다가온 18대 총선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 대통령의 요즘 민생 행보를 보면 대선 행보 같다”고 지적했고, 최재성 원내대변인도 “이 대통령이 선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자유선진당도 “선거운동 기간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이 대통령의 행보에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다루는 보수신문들의 태도는 4년 전과 딴판이다.
2004년 보수신문들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다음날인 2월 25일부터 관련 보도를 1면 머리기사로 싣고 “총선개입 논란이 일고 있다”며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조선일보는 26일 사설 <선관위장은 사표로라도 항의하라>에서 “대통령이 전 국민이 보는 TV 생방송에서 드러내놓고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다면, 이것은 누가 봐도 사전선거운동 혹은 선거 개입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또 ‘대통령의 발언이 특정 정당의 지지를 호소한 것인지는 검토해 봐야 한다’는 선관위를 향해 “선관위가 이런 식이라면 올 총선도 싹이 뻔해 보인다”, “선관위원장은 사표로써 국민에게 그 무력함을 사과하고 대통령에게 항의의 뜻이라도 표시할 일”이라고 강도높게 압박했다.
조선일보는 또 3월 3일 선관위가 노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해 “사전선거운동금지규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선거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하는 결정을 내리자, 다음날 사설 <선관위 결정 이후의 대통령을 주시한다>에서 “노 대통령이 이 의사를 계속 밀고 나간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것”, “헌법기관의 결정을 다른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정면으로 무시하고 짓밟는다면 이것이 바로 헌정의 위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며 ‘헌정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이어 3월 6일에도 사설 <국민이 탄핵론에 망설이는 진짜 이유>에서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에 대해 위법이라고 한 중앙선관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나선 것은 헌정 질서와 법치주의를 뒤흔들 만한 중대 사태”라며 선관위의 결정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우리 법체계에서도 대통령의 법위반을 제어할 장치는 사실상 국회의 탄핵소추밖에 없다”고 야당의 탄핵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3월 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다음날인 10일 조선일보는 사설 <대통령과 야당의 총선 인질 탄핵 도박>을 싣고 “국정의 만사를 오로지 총선 전략의 도구로 만드는 대통령과 어리석게도 여기 번번이 충동적으로 휘말려드는 야당이 벌이는 끝없는 행패 속에서 이 나라는 지금 침몰하고 있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총선전략’으로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켰다는 식의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이어 11일 사설 <깨끗이 사과하든지, 표결을 막지 말든지>에서는 “대통령이 깨끗한 사과를 못하겠다면 국회에서의 탄핵안 표결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야당의 탄핵안 발의는 합법적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탄핵의 정당성을 앞장 서 ‘대변’하고 나서기도 했다. 결국 3월 12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회에서 가결된다.

조선일보보다 정도가 덜했지만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또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개입’으로 규정하면서 탄핵을 정당화했다.
동아일보는 2월 26일 사설의 제목을 아예 <노 대통령, 정말 탄핵 받으려는가>로 뽑는가하면, 3월 4일 사설 <노 대통령, 선관위 결정 존중해야>에서는 “노 대통령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탄핵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탄핵을 ‘경고’했다.
동아일보는 탄핵 직전인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청와대 ‘탄핵 대응’ 이래선 안 된다>, <결국 노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노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해야 할 말> 등의 사설을 매일 실어 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더니 12일 사설 <누구를 위한 정면승부인가>에서는 결국 “노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위기대처 능력이 이 정도라면 불행히도 탄핵안 표결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며 야당의 탄핵을 부추겼다.
중앙일보 또한 2월 26일 사설 <선관위, 노대통령 불법 개입 왜 못 막나>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의 명백한 선거개입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라며 “선관위가 대통령의 불법 혐의를 애써 못본 체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번 총선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노 전 대통령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선관위의 대응을 촉구했다. 3월 5일 사설 <막다른 길로 들어설 셈인가>에서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항변에 앞서 선관위 결정을 수용하고 정중한 사과와 재발 방지 다짐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노 전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탄핵감’으로 몰아갔던 보수신문들의 잣대로 보면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선거개입’으로 비판받을 만하다. 2004년 노 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여당 지지에 대한 ‘희망사항’을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각 지역에 맞게 정부를 홍보하고 ‘정치적 안정’을 강조함으로써 여당을 간접 지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아일보의 3월 18일 사설 <이 대통령 총선개입 시비 자초 말아야> 외에는 관련 사설과 칼럼을 찾아볼 수 없다. 관련 기사조차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나마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듯한 동아의 사설은 ‘경제위기’와 ‘정치안정’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발언의 전후 맥락을 보면 경제가 어려울수록 정치적으로 안정돼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며 ‘감싸기’를 전제로 깔았다. 또 “요즘 한나라당 형편이 작년 대선 때와 같지 않다고 한다”며 “한때는 200석까지 넘봤지만 지금은 과반 의석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는 대목에 이르면 사설의 의도가 정말 ‘선거개입 중단’을 촉구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강원도 내각’ 언급 직후인 3월 15일부터 20일까지 사설·칼럼 외에 ‘선거개입’ 논란을 다룬 기사는 <표>와 같이 6건이다.

 

 

조선일보 

<이 대통령 ‘선거 개입’ 논란>(3/19)
<‘경제 대통령’의 거듭된 경제 위기론>(3/19) 
중앙일보  <손학규 “이 대통령 선거 개입 말라”>(3/18)
<“서민 생활에 주름살지는데 국가 현안 소홀히 하면 안 돼”>(3/19)
<이번엔 ‘경제위기론’ 공방>(3/20) 
동아일보  <“지금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 정치적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3/17) 

<표> 이명박 대통령 선거개입 논란 관련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사 

 

이 기사들은 대부분 청와대와 야당 사이의 공방을 단순전달 하는 데 그쳤고, 특히 중앙일보의 19일 기사는 “야당 지도부가 앞 다퉈 이명박 대통령의 ‘총선 개입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청와대가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며 청와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더 큰 문제는 ‘강원도 내각’ 발언이나 16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있었던 이 대통령의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발언 등을 아무런 비판 없이 오히려 부각해서 전달한 보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15일 <이 대통령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소개하며 “4월 총선을 앞두고 강원도를 배려하고 있음을 새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고 보도해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기는커녕 우호적으로 해석해 주었다.
중앙일보는 17일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 정치적 안정 매우 필요”>에서 “(이 대통령이) ‘정치 안정론’을 강조했다”며 “이 대통령은 이날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단결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겪은 사연이 압권이었다” 등 이 대통령의 발언을 한껏 부각해 마치 ‘청와대 브리핑’을 보는 듯 했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날 <“정권 바뀌어도 협조 안돼 야당같은 환경 안타깝다”>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적 단결’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했다”며 “이 대통령은 이날 ‘위기’라는 단어를 16차례 사용했다”, “취임 이후 소감, 특히 일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등 이 대통령의 심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같은 날 동아일보의 <“지금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 정치적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의 경우,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한 통합민주당 측의 ‘총선개입’ 비판을 소개했지만 기사량의 1/10 정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제목에서부터 ‘정치적 안정’을 부각시키고 내용에서도 “~강조했다”, “~역설했다” 등의 표현을 쓰며 이 대통령 발언을 띄우는 데 급급했다.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며, 2월 24일 노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해 “아직 정당의 후보자가 결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후보자의 특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내렸다. 특히 “문제되는 대통령의 발언들은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수동적이고 비계획적으로 행해진 점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발언에 선거운동을 향한 능동적 요소와 계획적 요소를 인정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선거운동의 성격을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목적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청구인의 발언이 특정 후보자나 특정 가능한 후보자들을 당선 또는 낙선시킬 의도로 능동적·계획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의 중립의무에 위반하였다’고 판결했지만 그 정도 사안이 ‘탄핵사유’가 될 만큼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는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은 ‘논란’의 소지는 있었다해도 야당과 보수언론들의 주장처럼 대통령을 탄핵할 사안이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야당과 보수신문들은 대대적으로 ‘선거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대통령을 직무정지 상태로까지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7대 총선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음으로써 탄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신문들은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고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은 대통령의 총선을 겨냥한 행보를 비판하기는커녕 감싸거나 돕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보수신문들이 최소한의 ‘일관성’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를 지적하고 총선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이중잣대’다. 국민들이 보수신문들의 이중잣대가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이런 이중잣대는 스스로의 ‘보도 일관성’을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고쳐야 한다.
<끝>

 


2008년 3월 2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