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언론연대 논평] 박근혜 정권, 방심위를 검열 기구로 만들 셈인가
등록 2014.05.15 17:32
조회 635




박근혜 정권, 방심위를 검열 기구로 만들 셈인가

- 여야는 방송통신심의위원 추천 철회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 -


 

이명박 정권 이래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탄압한 기구를 꼽으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빠질 수 없다. 지난 8일 드디어 2기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이 이임식을 가졌다. 권혁부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방송과 인터넷의 부작용에 치열하게 맞서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떠나는 순간까지 늘어놓는 궤변에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참을 만 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비롯한 일부 위원들의 막장심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누가 와도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정자 명단을 보니 커다란 착각이었다. 2기 보다 더 최악이다.

 

방심위는 오랜 기간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고 개선방안이 많이 논의된 상태다. 특히, 위원의 자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방송의 공정성과 시민들의 표현물을 심의하는 위원들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사업자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시청자/누리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식견도 필요하다. 적어도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로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과 야당을 통해 새롭게 내정된 인물들이 보니 결격사항이 없는 자가 한 명도 없다. 어찌 이렇게 언론계와 시민단체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 참담한 심경이 든다.

 

5.16 미화, 대선캠프 출신 위원장 내정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 함귀용 변호사, 윤석민 서울대 교수를 추천했다. 그 중 박효종 전 교수가 새 방심위원장으로 유력하다고 한다. 여러 언론역사단체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박 전 교수는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다. 그는 ‘5.16은 혁명이며, 장기적인 결과로 봤을 때 (중산층을 형성하여) 민주주의의 보루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가 왜 박 전 교수를 방심위원장으로 추천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앞으로 방심위를 유신미화‧독재찬양의 선봉대로 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의 우편향 역사인식만큼이나 큰 문제는 바로 정치 전력이다. 그는 지난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정치쇄신특위위원으로 활약한 데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 전 교수를 지목해 “박근혜 캠프 인사 중 가장 잘한 인사”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그만큼 박 전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맹활약했다는 의미다. 이런 자에게 정치적 독립성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다. 대선운동을 펼쳤던 자를 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기구의 수장으로 앉힌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로, 넘어서는 안 될 금도를 넘어선 것이다. 청와대는 박효종 교수 내정을 즉각 철회해야 마땅하다.

 

공안통 함귀용, 참여연대 ‘압수수색도 들어가고 메일도 열어보면 되는데…안타깝다’

 

청와대는 3명의 추천위원 중 한 명으로 공안통 검사를 택했다. 지난 2기의 박만 위원장, 최찬묵 위원에 이어 이번에도 공안검사 출신이 내정된 것이다. 도대체 왜 방송통신 전문가를 제쳐두고 공안통 검사를 계속 임명하는 것일까. 청와대가 내정한 함귀용 변호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극편향된 성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2009년 자유기업원, 자유민주연구학회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공안적 시각에서 볼 때 방송의 좌편향이 심각하다”며 “지난 10년간 방송콘텐츠를 살펴보면 시사, 교양, 보도, 드라마 등 각 종 콘텐츠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좌편향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송했다”고 발언했다. 그는 또 “나에게 3조쯤 있어서 MBC를 사고 싶다 그러면 채널11번만 사면 샀지 노조 끼워서 팔면 절대 안 살 것”이라며 방송사 노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10년 참여연대가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서한을 UN에 보내자 이를 규탄하는 토론회에 참석하여 “이들이 이렇게 불순한 반국가단체행위를 한 목적이 무엇인지 규명한다면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행위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배후에 분명히 누군가(간첩을 의미) 있을 거라 생각 한다”며 “압수수색도 들어가고 그 사람들 메일도 열어보면 되는데 검찰이 미적미적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심의활동을 할 것인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

 

민간인 불법사찰 이인규 前 지원관 변호 맡기도

 

함귀용 씨는 지난 2010년에는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로 기소된 이인규 前 공직윤리지원관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겨레>는 지난 2012년 4월 기사에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진경락 전 과장, 김충곤 전 팀장, 원충연 전 조사관 등은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함귀용, 신재현 변호사와 11일 동안 모두 29통의 통화를 했는데, 특히 이들은 검찰 수사 개시 이후 본격적인 증거인멸이 이뤄진 6일부터 8일까지 모두 18통이나 전화를 주고받아, 이들이 증거인멸 등에 대해 변호사들한테서 법률적 조언을 구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함 변호사는 또 사기, 강간, 성적 학대, 부녀자 성폭행, 횡령 혐의로 기소된 JMS 교주 정명석을 변호한 전력도 있어 청와대가 어떤 기준으로 그를 추천한 건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윤석민 교수, ‘종편챙기기+보은인사’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종편도입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대표적인 보수 언론학자다. 종편의 선정적인 방송과 편파왜곡 보도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왔다. 종편에 우호적이었던 2기 방심위에서조차 지난 2년간(11년 12월부터) 총 174건의 무더기 제재가 내려질 정도였다. 그러나 종편에 대한 윤 교수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윤 교수는 “TV조선 등 종편이 뉴스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깊이와 생동감을 갖춘 새로운 양식의 보도를 축적하면서 갈수록 시청자들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종편을 추켜세운다. 그는 현재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그가 종편에 관하여 공정한 심의를 할 수 있을지 지극히 회의적이다. 윤 교수는 또한 2012년 9월에 박근혜 캠프 안에 구성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방송통신추진단에도 이름을 올렸었다. ‘종편 챙기기’와 더불어 ‘보은 인사’인 셈이다.

 

새누리당, 지상파 나눠주기‧부적절 인사 포함

 

새누리당은 차만순 전 EBS 부사장, 고대석 전 대전 MBC사장, 하남신 전 SBS 논설위원장을 내정했다고 한다. 차 전 부사장이 KBS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지상파 3사 출신에게 자리를 나눠준 모양새다. 세 사람 모두 방송사 경영진 출신이거나 고위 간부를 지냈다. 야당 추천 위원까지 합하면 지상파 사업자‧현업 출신 인사가 무려 4명에 달한다. 반면, 시청자단체나 시민단체 인사들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다양성 보장 차원에서 균형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업자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시청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력이나 위원 선임 과정에 문제가 있는 부적절한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차만순, 박근혜 비대위 국민배심원단 출신에 <지식채널e 광우병편> 방송중단 주도

 

차만순 전 EBS 부사장은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임명한 국민공천배심원단 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차만순 씨 역시 보은인사다. 차 전 부사장은 지난 2008년 EBS<지식채널e> 광우병편 외압 파문 당시 “EBS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방송을 내리는 것이 맞다”며 방송중단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고대석, 김재철 사단 출신 노조 탄압 전력

 

고대석 전 대전 MBC사장은 MBC 내 대표적인 수구인사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는 김재철 사장 재임 시절 대전 MBC 사장으로 승전했다. 2011년 1월 언론노조MBC본부가 낸 성명을 보면 그는 사장실 앞에 모인 조합원들을 향해 “이 새끼들, 남의 사무실 와서 무슨 짓이냐?”며 욕설을 하는가 하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또한 경영사정을 핑계로 사원선발은 미루면서 정작 본인의 사택을 옮기는 데 회사 돈 1억 원 이상을 들였다고도 한다. 기본적인 도덕성부터 의심되는 인사이다. MBC 논설위원으로 있던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한 달 앞두고 논평에서 “한때 대통령을 했던 사람의 말치고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혼자 깨끗한 척하던 사람의 항복 선언이다”, “자신의 말마따나 많은 사람의 분노와 비웃음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는 내용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남신, SBS에서 바로 방심위로, 내정과정 의혹

 

하남신 전 SBS 논설위원실장은 내정과정이 참 미스터리하다. 그는 지난 연말까지 현역 앵커로 SBS <나이트라인>을 진행했다. 4월말 퇴임했으나 정년퇴임을 한 것도 아니라고 알려졌다. 사실상 피심의대상인 지상파방송 현업자가 곧바로 심의기관으로 직행하는 케이스다. 아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만약 그가 SBS논설위원 신분으로 새누리당에 심의위원 추천 신청을 했다면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불과 지난달까지 SBS 보도국 간부였던 자가 SBS를 심의하겠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가능한 것은 잘못된 법제도 때문이다. 현행 방통위설치법은 방통위원의 경우 ‘방송·통신 관련 사업에 종사하거나 위원 임명 전 3년 이내에 종사하였던 자’는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물며 방심위 자문기구인 산하 특별위원도 ‘위촉을 기준으로 1년 이내에 방송업에 종사한 자’는 위원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방심위원만 ‘방송·통신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자’로 결격사유를 두어 하 씨처럼 사업장에서 심의기구로 한 번에 점프 뛰는 경우가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 씨는 이 법률적 공백을 이용해 방심위원에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설사 법제도가 이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법 이전에 양심의 문제, 언론윤리의 문제다. 오죽 황당했으면 애국보수매체에서조차 ‘윤세영 회장 로비설’을 제기하겠는가. 하남신 씨는 방심위원 내정과정의 전말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방심위 중요성 잊었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위원 추천 결과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방심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된 여야 6대3구조에서 야당추천 위원 한 명 한 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누구보다 방송통신심의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방심위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추천하여 정부여당 위원들의 다수결 횡포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했다.

 

윤훈열, 동교동계 ‘제 식구 챙기기’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방송통신 경력이 전무한 인사를 방심위원으로 추천했다. 바로 윤훈열 씨다. 윤 씨 추천의 문제점은 단지 전문성 부재에 그치는 게 아니다. 윤 씨의 이력을 보면 △DJ정권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 있었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으로 일했으며,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총선출마를 준비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의원과 같은 시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대선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바이오 소재 업체가 문재인 테마주로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상 정치인인 셈이다. 그의 형인 윤흥렬 전 스포츠서울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처남이자 둘째 아들 홍업 씨와 오랜 친구 사이다. 새정치연합 내 동교동계 출신들의 ‘제 식구 챙기기’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인사를 추천해놓고 어떻게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에게 정치적 독립성을 요구할 것이며, 정파적 심의를 문제 삼겠다는 것인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새정치연합이 추천한 박신서 전 MBC PD 역시 지난 연말 MBC를 퇴직해 현업에서 방심위로 직행하는 케이스에 가깝다. 비록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는 하나 하남신 전 실장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경우라고 볼 수는 없다.

 

방송심의위원 추천인가, 방송통신심의위원 추천인가?

 

지금까지 정부여당과 야당이 추천한 9인의 명단을 보면 대선캠프 출신 1인, 공안검사 1인, 방송학자 2인, 방송사 출신 4인, 정치권 출신 1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게 방송심의 위원 추천인지, 방송통신 심의위원 추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통신 분야 전문가는 단 1명도 없다. 통신심의는 대체 누가한단 말인가? 통신심의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방송심의와 통신심의는 기준과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크고 요구되는 전문성도 다르다. 이러다 자칫 방송의 잣대를 통신에 적용하여 과잉심의가 발생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스럽다. 어떻게 이리 통신심의를 홀대할 수 있는지 한숨만 나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니라 정권 호위 위원회를 만들 참인가

 

이번 방심위원 선임은 청와대의 <5.16 부활, 공안통치 강화, 종편 챙기기> 전략에 여야의 <보은인사>가 결합한 최악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내정된 인사들도 대부분 부적절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방송을 장악할 생각이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방심위원 추천을 통해 노골적인 방송장악 의도를 드러냈다. 명백한 대선공약 파기이다.

 

이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니라 정권 호위 위원회 명단이다. 심의기구가 아니라 검열기구다. 청와대는 박효종, 함귀영 씨의 내정을 즉각 철회하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역시 방심위원 추천을 싹 철회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 바란다. 

 

2014년 5월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