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통위, ‘청부 민원’ 직권취소 적극 검토하라
등록 2018.09.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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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간부가 ‘대리 민원’을 통해 사실상 ‘정권 청부 심의’를 이행한 사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절차적 하자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상식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단이다. 

 

지난 3월 19일 4기 방통심의위는 업무 감사 결과 김 아무개 전 방송심의기획팀장이 2011년부터 2017년 사이 2·3기 위원장·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46건의 방송 관련 민원을 일반인 명의를 빌려 신청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이 중 19건은 법정제재를, 14건은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적발된 대리 민원 사례에는 2015년 방송된 KBS 광복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 1편 등과 같이 방통심의위가 과거 ‘편파 심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당시 KBS 여권 성향의 이사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며 정치적으로 공격했고, 해당 프로그램은 ‘법정제재’인 경고를 받아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때 감점이 되었다. 방심위는 부적합한 절차에 따라 미운털이 박힌 프로그램을 법정 제재하고 방통위는 재허가·재승인 때 감점을 하는 행정처분을 하여 프로그램을 통제한 것이다. 이 외에도 김 아무개 전 팀장은 JTBC나 MBC 뉴스 데스크 등 정권에 불리한 보도와 관련하여 대리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당시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심의 절차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수년간 반복’했다는 이유로 김 아무개 전 팀장을 해임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미디어오늘이 27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청부 심의’ 관련 조치내역에 따르면, 방통위는 ‘청부 민원이어도 민원 제기 후 심의 절차에 문제가 없다면 행정 처분은 위법하지 않다’라고 판단해 이 ‘청부 민원’ 사건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방통위는 방통심의위 직원도 심의대상을 인지할 수 있고, 민원 제기 사실만으로 방송사업자에 제재조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심의대상이 자체 인지에 의한 것이든 민원 제기에 의한 것이든 향후 심의절차는 동일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원 제기가 부적법하면 이후 절차가 무효인 것은 상식이다. 애초 부적절한 민원제기가 없었다면 이후 절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발견된 제2차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 법이론이다. 민원 제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이후 절차에는 문제가 없으니 행정제재조치도 적법하다는 방통위의 판단은 비상식적이다. 무엇보다 편파심의, 청부심의, 셀프심의라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방심위는 민원 신청 뿐 아니라 자체모니터링을 통해 심의 대상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런 ‘정상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방심위 전 위원장, 전 부위원장 그리고 방심위 간부가 굳이 부적절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청부 심의를 지시하고 실행한 것은 정권의 방송 장악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심의를 악용하면서도 그 실체를 숨기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안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일한 태도다. 


방통위의 이러한 ‘셀프 면죄부’는 국회입법조사처의 법률 검토 결과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변재일 의원실이 법률 검토를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국회입법조사처는 타인의 성명을 도용한 민원 신청은 부적법한 것으로, 이를 전제로 한 심의절차 개시는 흠결이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또 국회입법조사처는 처분청은 자신이 한 행정처분에 대해 흠결 또는 사후적으로 철회할 사유를 발견했을 시 행정처분의 취소 또는 철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방통위가 셀프 민원에 대한 행정제재조치를 직권 취소를 할 수 있고, 제재 대상자는 행정처분취소 소송이 가능하다고도 판단했다.

 

앞서 방통심의위는 김 아무개 전 팀장에 대한 업무감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 “법이 정한 테두리에서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조사결과 발표와 검찰 수사 의뢰는 그간 방심위가 정치심의, 편파심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공언대로라면 청부 민원을 지시한 전임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물론이고 방통심의위를 사찰해 심의를 정권의 영향력 아래 둔 청와대 등 정부 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적폐 정권의 방송장악 구조를 낱낱이 밝혀내고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김 아무개 전 팀장이 3월 19일 방심위의 파면 결정 직후인 3월 22일 징계 처분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고 장기 근속으로 위원회에 기여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파면’에서 ‘해임’으로 징계를 완화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이러한 징계 감경에 대해서는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다. 이는 방통심의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조직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방통심의위의 이러한 안일한 조치에 이어 방통위까지 몰상식한 결정을 내리는 행태는 이 정부가 방송 분야의 폐단을 척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


지금이라도 방통위는 부적법한 절차에 따른 방통심의위 심의 결과를 토대로 취한 행정제재조치에 대한 직권취소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방송심의에 대한 객관성, 공정성을 회복할 유일한 길이다.<끝>

 

9월 2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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