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가짜뉴스 판단에 사실관계 무관하다는 법원, 공론장 민주주의 후퇴시켰다
등록 2020.01.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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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최종 심급의 위상을 지닌 사법부가 미디어의 공적 책임을 후퇴시킬 판결을 내놨다. 지난 1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4부(김병철 판사)는 김지연 약사(한국가족보건협회)‧GMW연합·KHTV 등 동성애 혐오 집단이 기독교대안매체 <뉴스앤조이>에 제기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선고했다. 요지는 <뉴스앤조이>가 동성애 혐오 집단을 ‘가짜뉴스 유포자’라고 표현한 것은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고 공공의 이해와도 관련이 없으며 KHTV 등 원고를 공론장에서 배제하려는 의도이므로 그 표현을 모두 삭제하고 총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뉴스앤조이>가 ‘가짜뉴스’라 비판한 대상들은 오랜 기간 “동성애 하면 에이즈 걸린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성경이 불온서적이 된다”, “이슬람 난민 비판하면 처벌받는다”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허위정보를 유포해왔다. 놀랍게도 재판부는 ‘가짜뉴스’라는 표현이 ‘사실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인격권 침해’라고 판시했다.

어떻게 이런 판단이 가능할까? 이 판단에 따르면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부류에게 ‘가짜뉴스’라 비판하면 오히려 비판한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하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즉 사회적, 역사적 합의가 끝난 국가권력의 폭력이나 인권침해는 물론, 소수자와 약자를 낙인찍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명백한 허위조작정보라 하더라도 ‘가짜뉴스’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법원이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수자‧약자에 대한 혐오‧폭력‧차별이라면, ‘표현의 자유’에도 일정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사법부가 무참히 깨버린 셈이다.

 

‘가짜뉴스’ 비판의 정당성이 ‘사실관계’와 무관하다고?

재판부는 한 번에 4개 사건을 한꺼번에 선고했는데 요지는 똑같다. <뉴스앤조이>가 김지연 약사‧GMW연합‧KHTV(이하 원고)를 ‘가짜뉴스 유포자’ 등으로 칭한 것은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인격권 침해’라는 것이다. 일단 이 기본적인 논리 구조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애초 원고는 <뉴스앤조이>가 ‘허위사실’을 보도했으니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송을 낸 것이라고 한다. 원고들의 소송 청구 취지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자신을 가짜뉴스라 칭한 <뉴스앤조이>보도는 허위이므로 시시비비, 사실관계를 따져 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판부는 원고 측이 한 발언의 허위사실 여부에 초점을 맞춰 심리를 진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재판부는 사실관계는 따지지 않은 채 ‘가짜뉴스’라는 표현 자체를 문제 삼는 방향으로 재판을 끌고 갔다고 한다. 재판부가 원고 취지와 다르게 멋대로 핵심 청구 취지를 뒤튼 셈이다.

 

‘가짜뉴스’라는 비판의 정당성은 ‘사실관계’와 무관할 수 없다. 법원 스스로도 KHTV 판결문 중 ‘관련 법리’ 대목에서 “기사 삭제 청구의 당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표현 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 아닌 기사로 인해 현재 원고의 명예가 중대하고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는 상태에 있는지 여부”라는 과거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이렇게 ‘진실 여부’가 떡하니 판단 기준으로 제시된 판례까지 적어놓고도, 어떻게 ‘진실 여부’가 휴지조각이 되는 결론에 이르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소수자 혐오하는 ‘허위정보’의 책임, 애먼 사람에게 돌린 판결

‘가짜뉴스’ 판단에 있어 ‘진위성’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이번 판결의 일관된 논지다. KHTV 판결문에서 법원은 “이 사건 유튜브 채널(KHTV)을 통하여 주장하는 반동성애 및 차별금지법의 시행 반대 내용의 진위성이나 당부를 보도한 것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면서도 “유튜브 채널을 ‘가짜뉴스 유통 채널’ ‘가짜뉴스 유통 경로’라고 단정적으로 여러 차례 표현한 것은 원고가 운영하는 이 사건 유튜브 채널에 대한 미디어로서의 신뢰를 저하시킬 의도가 담긴 공격적인 표현으로서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보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심지어 김지연 약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동성애하면 에이즈” 등 김 씨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한 <뉴스앤조이>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고 써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결론은 똑같이 ‘가짜뉴스 표현 자체는 공공의 이해가 아니니 인격권 침해’라는 것이다. ‘반동성애’ 내용의 진위성은 ‘공공의 이해’인데 그 진위성을 위배한 유튜브 채널을 ‘가짜뉴스 채널’이라고 한 것은 ‘공공의 이해’가 아니라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말인가?

 

소수자‧약자 인권 보호는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최근의 ‘가짜뉴스 대응’ 논의에서도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소수자‧약자를 배제하고 모욕하기 위해, 그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허위조작정보는 공론장에 발을 못 들이게 해야 한다. 법적 규제가 어렵다면 허위로 소수자를 탄압한 정보는 ‘가짜뉴스’라고, 최소한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 비판의 권리마저 ‘공공의 영역’에서 배제해버린 이번 판결은 소수자‧약자 차별 허위정보의 책임을, 그 정보의 생산‧유포자가 아닌 비판하는 이들에게 전가해버린 것이다.

 

낙인 찍고 공론장 어지럽히는 것은 ‘혐오’를 하는 자들이다

법원이 제시한 판결의 주요 근거 중 다른 하나는 고스란히 이 사건의 원고, 즉 동성애 혐오 집단에 돌려줘야 할 말이다. 법원은 KHTV 판결문에서 “(‘가짜뉴스 유포자’ 등) 위와 같은 공격적인 표현은 사회의 올바른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오히려 원고를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단체로 낙인찍어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의 장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라고 명시했다.

 

지금 올바른 여론 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소수자들을 낙인찍어 여론 형성 내지 공개토론의 장에서 배제시키는 게 대체 누구인가? 소수자 혐오 집단인가 아니면 그 혐오 집단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꾸준히 지적한 <뉴스앤조이>인가? 진위 여부와 관계 없이 아무 말이나 만들어 소수자‧약자를 낙인찍고 공격하는 이들은 공론장에 참여할 자격이 있고, 그게 바로 ‘가짜뉴스’라고 지적하는 이들은 공론장에서 쫓겨나야 한단 말인가? 법원의 기우와 달리 보수기독교계는 공론장에서 배제되기는커녕 법원의 판결로 “반동성애 사역자들이 (<뉴스앤조이>에)줄소송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환호하고 있다.

 

사법부는 최근 유튜브‧SNS 확산에 따라 증대된 혐오 콘텐츠의 영향력과 ‘가짜뉴스’에 대한 사회적 대응 등 미디어계 현안에 깊은 이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뉴스앤조이>에 대한 이번 배상 판결은 최근 이어진 ‘종북’ 표현 관련 판결과 함께,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심지어 그 판결들끼리 앞뒤도 맞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12일, 대법원은 채널A가 우리 단체를 ‘종북세력 5인방’, ‘대한민국 안보를 해치는 선전·선동을 해온 단체’라고 규정한 사건에 대해 ‘종북’ 등의 표현이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 표명’이므로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허위왜곡정보를 ‘가짜뉴스’라고 지칭하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인격권 침해’라는 판결이 나왔다. ‘가짜뉴스’라는 표현이 ‘종북’이라는 혐오 및 배제의 기제보다 심각한 ‘인격권 침해’라는 사법부 판단 자체가 사법부에 혐오와 허위정보를 판단하는 기준이 엇나갔음을 방증한다.

 

혐오 정보 및 ‘가짜뉴스’는 미디어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합리성을 가늠할 중대한 이슈이다. 사법부는 법리는 물론, 미디어계의 변화, 소수자‧약자 인권 등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해 판결하길 촉구한다. 더불어 사법부가 건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언론계와 시민사회도 하루빨리 혐오 및 가짜뉴스 대응을 위한 실질적 공론화에 착수해야 한다.

 

2020년 1월 2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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