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박수환 문자’ 속 언경 유착에 침묵한 언론들, 침묵 이유도 침묵하나?
등록 2019.04.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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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환 문자’ 속 언론과 기업의 유착, 왜 보도하지 않습니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3월 20~22일 31개 언론사 보도·편집 책임자들에게 발송한 질의서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정부 등의 권력이 재벌과 유착한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준엄하게 비판하는 언론의 감시 기능이 왜 언론과 재벌의 더러운 카르텔 앞에선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사라지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31개 언론사 중 YTN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언론사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전혀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언론사 보도국/편집국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와 사정은 있겠지만, 당사자 혹은 동업자 언론이 재벌(기업)과 유착한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무보도’의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사실상 입장을 표명한 언론들이 무보도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새삼 답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우리가 31개 언론사의 보도·편집 책임자들에게 질의한 건 단순히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드러난 언론과 재벌의 유착 문제를 왜 ‘받아’ 보도하지 않는지에 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이 어떤 보도를 한다는 건 검증에 대한 책임까지도 오롯이 지겠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에 타 언론의 보도를 무작정 ‘받아’ 보도하기 어렵다는 걸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접하는 시민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언론(인)이 권력과 유착해 부적절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기사를 팔아넘긴 행위는 보도할 만한 가치조차 없다는 것인가? 어떤 사안의 경우 타 언론이 먼저 보도했더라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파헤치고 심지어 온갖 추측성 보도로 부풀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세월호에 탑승하고 있던 학생들을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는 검증 없이 받아쓰던 언론들이 언론(인)의 비위에 대해선 추가 취재로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은커녕, 드러난 사실마저 외면하며 일제히 ‘무보도’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렇듯 우리의 질의는 보도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더구나 무려 8인의 기자가 로비스트 박수환으로부터 미국행 항공권, 명품, 전별금 등을 받고 박수환을 통해 박수환의 고객사인 기업에 자녀 인턴채용을 청탁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윤리규범 정비 이전에 발생한 일이라는 이유로 일괄 면죄를 결정한 조선일보 사례는 특별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아니다. 신문과 방송을 모두 소유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조선미디어그룹이 소속 매체인 조선일보 기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분명히 확인하고도 면죄한 이 사안을 왜 다른 언론사들은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가.

명확하게 드러난 언론(인)의 비위 앞에서 언론들이 다함께 무보도의 침묵을 이어가는 일이 반복될 때 언론 신뢰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해에 따라 비판과 침묵을 선택하고, 그 이유와 기준조차 밝히지 않는 언론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시민들이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 ‘비뚤어진 동업자 정신’ 등의 표현으로 표시하는 의문과 실망, 그리고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의 책임은 침묵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반복한 언론 스스로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인)과 재벌(기업)의 유착 관계가 드러난 이후 각 언론사의 보도국/편집국 내부에 대한 실태 점검과 기자윤리 실천을 위한 논의나 교육이 있었는지, 앞으로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의했다. ‘박수환 문자’ 속 비위 언론인들의 행태를 보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언론사 내부에서 기자윤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주의 환기에 나서며 교육의 시간을 마련하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지금이라도 각 언론사의 책임자들은 내부 실태 점검과 기자윤리 실천을 위한 교육에 나서라. 이를 통해 언론에 주어진 자유와 독립은 국민의 알 권리와 진실 추구를 위해 위임받은 권리이자 책무이며, 그렇기에 스스로와 서로를 경계하지 않을 때 이 책무의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든 언론인들이 명심하게 해야 한다. 언론인 한 명 한 명이 언론에 주어진 자유와 독립의 의미를 망각하고 부당한 압력과 유혹에 넘어갈 때 진실을 가리는 허위조작정보들은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가질 것이며, 그로 인해 올 불신과 부정의의 미래는 모두 언론인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끝>

 

4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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