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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방심위의 KBS <뿌리깊은 미래> ‘경고’ 조치에 대한 민언련/역사정의실천연대 공동 논평(2015.4.28)
등록 2015.04.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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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조차 확인 못하는 방심위, 이런 정도면 심의할 자격없다

- 방심위의 정치․편파 심의에 부쳐 -

 

 

4월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위원장 박효종)가 KBS 광복 70주년 기획 <뿌리깊은 미래> 1부 (2월 7일 방송)에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결정했다. 방심위는 4월 1일 방송심의소위원회(위원장 김성묵)에서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으로 의견을 모았고, 23일 전체회의는 방송에 대한 ‘경고’ 조치를 확정했다. 

KBS <뿌리깊은 미래>는 광복 이후 폐허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국민의 삶의 단면을 담은 영상에 잔잔한 내레이션을 입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교한 정치나 역사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아니다. 제작진도 “해방 전후의 정치사를 다룬 역사다큐가 아니라 해방 후 70년 동안 ‘일반인’들의 관점과 실생활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과정을 다룬 휴먼다큐에 가깝다”고 밝혔으며, 따라서 “국내 정치 상황도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KBS 공영노조’와 이인호 이사장의 문제제기 이후 이뤄진 방심위 심의에 주목

우리는 먼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이 KBS 안의 세 번째 노동조합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늘 논란이 되어 오던 ‘KBS 공영노조’와 뉴라이트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인식에서 심각한 편향성을 드러내던 이인호 KBS 이사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월 11일 KBS 공영노조는 성명을 통해 <뿌리깊은 미래> 1부가 “해방공간과 6·25전쟁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기획 취지를 내세웠으나 대한민국과 미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공산군에 의한 피해를 누락하는 등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공영노조는 또한 “우리 역사에 부정적인 내용 일변도의 반미·반대한민국 목적의식을 가진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버전 2.0으로 업그레이드된 <백년전쟁> 시즌2나 진배없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이인호 KBS 이사장도 KBS 임시 이사회에서 “이 다큐를 본 사람들로부터 ‘내용이 편향됐다’는 항의 전화를 사방에서 받았다”며 “이런 식이면 KBS 수신료를 어떻게 인상하겠느냐는 항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야당 추천 이사들이 “이사장의 발언은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며 프로그램 관련 내용은 시청자위원회 등에서 심의하면 된다”고 지적했지만, 이 이사장은 “이사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제작진이 사실을 잘못 알거나 한쪽에 경도됐을 경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같은 논란을 겪으면서 <뿌리깊은 미래>는 방심위에 방송민원이 접수되어 심의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KBS 공영노조와 KBS 이인호 이사장, 그리고 여당추천 방심위원들이 한 목소리로 비판하면서 문제 삼은 방송내용이 무엇인지 짚어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박효종 방심위원장 크게 잘못된 멘트라고 말한 ‘소년병’ 표현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실  

먼저 방심위가 표현을 문제 삼은 ‘소년병’부터 그렇다. 방송은 6‧25 전쟁 중에 “학생들도 동원됐다. 15살 앳된 학생도 전쟁터로 나갔다. 그들을 소년병이라 불렀다. 소년병 3천 명 중 2400여명이 전쟁터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박효종 방심위원장이 나서 “크게 잘못된 멘트다. 우리에겐 소년병 없었고 오로지 학도병이다. 학도병은 동원 되지 않았고 모두 자원입대했다. … 자유를 지키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고 싸운 학도병들을 은연 중 아프리카 철없는 소년병이나 IS의 소년병을 연상시키는 용어를 쓴 게 가당키나 하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의 ‘소년병’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학계에서는 이미 객관적 사실로 인정받은 것이다. 실제로 리베르에서 펴낸『고등학교 한국사』345쪽 본문에는 “대한민국은 국군뿐만 아니라, 소년병, 학도의용군 등의 참전, 국민의 노력 및 유엔의 지원으로 수호될 수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학도의용군과는 구별되는 소년병의 존재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비상교육에서 펴낸『고등학교 한국사』357쪽의 ‘학도병이 행진하는 모습’ 사진 설명에도 “당시 청소년들도 소년병, 학도의용군 등으로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수호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두 권의 교과서는 2013년 한국사 교과서 파동 당시 이른바 ‘좌편향’으로 비난받은 교과서도 아니다. 

만약 박효종 방심위원장의 주장이 맞다면 소년병을 언급한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국사편찬위원회는 ‘크게 잘못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조장한 ‘친IS 대한민국 정부기관’으로 순식간에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박효종 방심위원장이 취임 당시부터 뉴라이트의 편향된 역사관으로 방송을 재단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음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이번 <뿌리깊은 미래> 제재는 그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무지와 몰상식에 따른 편향성이 박효종 방심위원장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뿌리깊은 미래>의 제재에 총대를 멘 다른 방심위원들의 역사인식 수준도 위원장의 수준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함귀용 위원이 부인한 부역혐의자 전원 재판 주장도 거짓 역사

이번 심의에서 문제가 된 것 가운데는 서울수복 이후 부역자 처벌 관련 내레이션도 들어 있다. 실제로 방송에서는 “전쟁은 삶터뿐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 또한 파괴했다. 피난 갔다 돌아온 이들이 한강다리가 파괴되어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이들을 찾아내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공산군에게 협조했다는 것이 그들의 죄명이었다. 부역 혐의자에 대한 검거는 뚜렷한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빨갱이라고 외치면 그대로 검거됐다”라는 내레이션이 등장했다. 이에 대해서 함귀용 방심위원은 “6‧25전쟁 당시 수복한 후 부역혐의자는 전부 재판을 받았고 그 기록이 다 나와 있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복 후 부역혐의자가 전부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외눈으로 보는 데만 익숙한 공안검사 출신에게나 통하는 거짓 역사이다. 먼저 부역혐의자는 어디까지나 혐의자였을 뿐 부역자는 아니었다. 부역자는 당시 사법부의 재판을 통해 부역행위를 한 ‘범법자’로 확인된 민간인을 말한다. 반면에 부역혐의자는 부역했을 것이라는 의심 외에 당시 사법부에 의해 아무런 증거도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을 가리킨다.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부역혐의자라는 이유로 정당한 사법절차 없이 희생된 민간인의 존재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국가기구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수복지구인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기소와 재판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채 검거와 연행 이후 임의 내지 즉결로 처형된 학살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도 국가기구의 조사결과마저 무시하고 부역혐의자가 모두 재판을 받았다는 함귀용 방심위원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거짓 역사를 기준으로 방송심의를 한 것이다. 

 

고대석 위원, ‘군 관계자의 지시로 한강다리 폭파’ 틀린 말은 아닌데 교묘해서 문제라니

더욱이 피난가지 않고 잔류한 시민들은 정부의 말을 믿은 죄밖에 없었다. 잔류파가 생긴 근본적인 이유는 인민군의 남침 당시 국군이 북진하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선무방송을 틀어놓고 대통령과 정부가 가장 먼저, 그것도 국민 몰래 피난을 떠난 데 있었다. 따라서 책임을 말한다면, 한강 인도교를 폭파시키고 도망을 간 정부의 책임이 우선이다. 

그런데 방심위는 <뿌리깊은 미래>에서 “그런데 피난민들이 열심히 건너고 있던 한강다리가 폭파됐다. 그것은 군 관계자의 지시였다. 수백 명의 피난민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내레이션까지 문제 삼았다. 고대석 방심위원은 이 내레이션에 대해서 “틀린 말은 아닌데 의도를 알 수 없지만 교묘하다. 그러면 군이 피난민들을 죽였다는 말이냐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트집을 잡았다고 한다. 군의 지시에 의해 피난민들이 건너가고 있던 한강다리가 폭파되었다는 것은 한 치도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을 방송했다고 제재대상이 되는 것은 2015년 한국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비극적 희극이다. 방심위에서 이 내레이션을 정말 문제 삼으려면 한강다리 폭파의 근본책임이 군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에 있음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을 지적해야 했다. 

 

남침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객관성 위반이라니, 심의가 장난인가

6·25전쟁의 원인을 ‘남침’이라고 굳이 밝히지 않았다고 객관성 위반으로 지적한 것도 방심위의 월권이다. 참고로 앞에서도 예를 든 비상교육『고등학교 한국사』에는 “1950년 무렵부터 남북 정부는 서로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38도선 부군에서 잦은 무력충돌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남침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누가 봐도 북한이 남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서술이다. 

<뿌리깊은 미래>의 관련 내레이션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총격전은 38선 부근에선 의례히 있던 일이었다. 정부도 괜찮다 했다. 탱크가 도시 한복판에 등장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전쟁을 실감했다”라고 했다. 이는 앞의 교과서 서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했고 방송은 방심위의 제제를 받았다. 

방심위의 논리대로 한다면 이 교과서도 남침이라는 용어가 빠져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된다. 교과서를 쓴 저자나 펴낸 출판사는 물론이고 검정을 통과시킨 국사편찬위원회도 제재를 받아야만 할 상황이다. 무엇보다 방심위는 앞으로 6·25전쟁을 다루는 드라마나 보도프로그램이 남침을 적시하지 않으면 모두 제제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되묻고 싶다. 

 

방심위가 지적한 대구 10월사건, 흥남 철수 관련한 부분도 학계에서 검증이 끝난 사안

이밖에도 방심위가 문제 삼은 것은 1946년 10월 1일에 일어난 대구 10월 사건을 미군정의 양곡정책 실패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언급한 부분,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세가 불리진 뒤의 흥남철수와 관련해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 소문이나 미군에 의한 흥남부두 폭파설을 언급한 부분 등이다. 함귀용 방심위원 등은 이러한 방송 내용이 모두 미군과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악의적인 것이었다고 문제 삼았다. 그러나 미군정의 양곡정책 실패 때문에 대구 10월 사건이 일어났다든지 중공군의 개입을 전후해 미군이 원자폭탄 투하를 계획했고 그러한 소문이 북한 주민들이 흥남에 많이 모이게 된 한 원인이었다는 사실 등은 이미 학계에서 검증이 끝난 문제이다. 이미 학계에서는 상당히 근거 있는 것으로 인정된 문제를 방송에서 언급했다고 반미 선동 방송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심위 이대로라면, ‘객관성’, ‘공정성’ 심의는 하지 말아야 마땅

우리는 방심위의 심의가 이처럼 객관적인 자료나, 전문성에 기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국민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만을 토대로 결정되어지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방송 내용이 자신들의 수구 냉전적 사고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역사적 고찰 없이 중징계를 밀어붙이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또한 이러한 중징계는 방송사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강화해 조금이라도 정권에 입맛에 안 맞는 내용을 만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방송 길들이기’이다. 

더불어 우리는 방심위원들이 이처럼 ‘허무맹랑한’ 심의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방심위의 심의과정과 직원의 부적절한 처신도 한 몫 한다고 본다. 방심위원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심의와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 전문적인 소견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적인 소견이 없다보니 방심위원들의 터무니없는 발언과 엉터리 심의결과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방심위는 지금이라도 심의 과정에서 전문적이며 객관적인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방심위 직원들은 이에 대해 제대로 업무를 지원해야 한다. 지금처럼 자기감정대로, 내키는 대로 심의를 하겠다면, 방심위는 최소한 ‘객관성’ 과 ‘공정성’에 대한 심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방심위의 코미디에 가까운 심의결과에 불복한 방송사들이 법정 공방을 벌이고, 법원에 의해 번번이 방심위의 패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사회적인 손실이며 예산낭비이다.

한편 우리는 KBS가 이번 심의결과에 순응해 정권의 눈치나 보면서 자기검열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이번 심의결과에 맞서 적극적인 반론을 펼치면서 법정 투쟁에도 나서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영방송의 자존감을 되찾기를 요구한다. <끝>

 

 

 

2015 4월 2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역사정의실천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