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채널A 지분 소유 제한 위반 아니라는 ‘외눈’ 판결 유감이다
무능과 무책임 행정으로 수렁에 빠진 방통위
등록 2018.11.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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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채널A 지분 소유 제한 위반에 대해 내린 시정명령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방송법상의 지분 소유 제한 규정의 의미를 훼손하는 상황을 만든 이번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또한 애초 부실한 행정으로 이와 같은 문제 상황을 만들어온 방통위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설립자 후손 4대 세습 이사장 영향력 간과한 법원 판결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제11부(부장판사 박형순)는 동아일보가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인 동아일보 손을 들어줬다. 2017년 8월 31일 내려진 이 시행명령은 채널A의 지분을 30%까지만 소유할 수 있는 동아일보가 이를 어겼으니, 6개월 이내 동아일보와 특수관계자의 채널A 지분을 30% 이하로 유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채널A 지분 29.99%를 가진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은 2012년 5월부터 채널A 지분 0.61%를 갖고 있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제16대 이사장을 맡았는데, 이로 인해 고려중앙학원이 동아일보의 특수관계자가 되면서 주식총수 30.60%로 지분 소유 제한 규정을 위반하게 됐다는 게 방통위의 판단이었다. 김재호 사장이 고려중앙학원의 이사장으로서 주요 경영사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본 것이다. 고려대를 운영하고 있는 고려중앙학원은 그동안 설립자 김성수의 장남인 김상만 전 이사장과 김상만 전 이사장의 장남인 김병관 전 이사장, 김병관 전 이사장의 장남인 김재호 이사장으로 장남 승계형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이렇듯 고려중앙학원에서 4대째 세습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동아일보는 고려중앙학원이 방송법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특수관계자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방송법 시행령은 단독 혹은 다른 자와의 계약이나 합의에 의해 법인의 대표자나 임원의 과반 이상을 선임할 경우를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로 보고 이에 해당하는 이를 특수관계자로 분류하고 있는데, 김재호 이사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동아일보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동아일보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학교법인의 이사장은 사립학교법과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의 권한만 행사 가능하며, 설립자 일가가 장자를 중심으로 이사장을 도맡아 왔다는 사정만으로 이사장이 학교법인을 자신의 뜻대로 운영해 왔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김재호 사장이 자신의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과 합하여 동아일보에 30% 이상을 출자한 특수관계자인 건 맞지만, 김재호 사장이 단독 혹은 다른 자와의 계약이나 합의에 의해 고려중앙학원의 대표자나 임원의 과반 이상을 선임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중앙학원은 동아일보의 특수관계자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사립학교법에서 임원 선임 시 이사 정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이사를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인사 중 선임하도록 한 규정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설립자의 가족과 후손들이 사학재단의 이사장과 주요 직책을 장악하며 비민주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문제된 사례를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실제로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하는 과정에서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으로 김재호 사장이 취임한 2012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총 35회의 이사회를 개최하는 동안 김재호 사장이 이사장으로서 모든 안건을 발의하고 대부분의 안건이 이사 전원 찬성으로 결의된 점 등은 인정했다. 그런데도 특수 관계자가 아니라는 판단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방통위가 수긍할 수 없는 이번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할 것을 요구한다.


구멍 뚫린 행정 반복하는 방통위

법원 판결과 별도로 위법 논란을 무려 5년 가까이 방치한 무책임 행정의 당사자인 방통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가 채널A 지분 소유 제한 법령을 위반했다고 방통위가 처음 판단한 건 2017년 2월이다. 시정명령까지 결정한 방통위의 판단대로라면,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5월부터 채널A 지분 소유 제한 법령을 어기고 있던 셈이다. 채널A 사업 승인 이후 진행된 두 번의 재승인(2014년, 2017년) 과정에서 방통위가 단 한 번이라도 채널A의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봤다면 뒤늦은 시정명령을 놓고 지금처럼 소송을 하며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더 큰 문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통위의 이 같은 행정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방통위는 2014년 4월 TV조선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주주 일동제약과 같은 해 12월 MBN 미디어렙 주주 한진칼이 지분 소유 제한·금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모른 채 사업 허가를 했다. 그리고 2017년 3월까지도 TV조선 미디어렙의 지분 소유 제한 위반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재허가를 결정했으며, 채널A 미디어렙 주주 사랑방미디어가 소유제한(특수관계자 포함) 위반임을 발견하지 못한 채 재허가를 내줬다.

한 번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 행정을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승인과 재승인, 종편 미디어렙 허가와 재허가 과정에서 거듭거듭 반복하는 방통위에겐 무능하다는 평가도 후할 정도다.

문제 행정이 이렇게까지 반복되고 있음에도 방통위는 내부의 책임을 제대로 묻거나 이 같은 문제 행정이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앞서 종편 미디어렙 ‘위법’ 허가에 책임 있는 공무원들에게 겨우 ‘경고’, ‘주의’ 조치를 했을 뿐이며, 재허가 담당 공무원의 경우 문제를 최초 발견하고 ‘은닉하지 않고 직접 나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들어 징계 수위를 경감했다. 방통위가 채널A 지분 소유 제한 위반을 판단했을 당시 담당 공무원은 2014년 재승인 당시 이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없었으며 특수관계자 부분 또한 인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구멍 뚫린 행정에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이미 퇴직해 법무법인 등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다른 정부부처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미 늦을 대로 늦었지만, 이제라도 방통위는 무책임한 행정을 아무렇게나 전시하고 내빼는 공무원들에 대한 일벌백계 원칙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더 이상 선후배이자 동료인 공무원들끼리 문제 행정을 적당히 덮어주는 방식의 감찰을 하는 걸 두고 봐선 안 된다. 종편 미디어렙 ‘위법’ 허가·재허가 사실이 밝혀졌을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내부에 감사를 맡길 게 아니라 외부 인사들로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투명하고 성역 없는 조사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셀프 감사’를 고집하며 생색내기용 징계에 그쳤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감찰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셀프감사’와 ‘생색내기’ 징계가 더 이상 전례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위법 논란을 부른 행정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공무원직을 떠난 이들과 이들이 행한 문제 행정의 경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 자신들이 행하는 행정의 무거움과 책임을 공무원들이 분명히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로 책임을 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끝>

 

11월 2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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