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법무부 가짜뉴스 대책을 우려한다
등록 2018.10.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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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이른바 가짜뉴스로 불리는 허위조작정보를 사건 초기부터 신속·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집단에서 특정한 의도 하에 제작·유포하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언론 공론장을 위협하고 훼손한다는 점에서 분명 심각한 문제다. 시민들에게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촉구하는 건 꼭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뿌리 뽑겠다며 정부가 대증 요법과 같은 강력 대응책을 마구잡이로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섣부른 대응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정부를 비롯한 규제 당국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제도를 만들거나 손보려 할 때 신중한 자세로 시민사회,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차분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칠 것을 일관되게 주문해왔다. 그리고 법무부가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 방침을 발표한 지금, 다시 한 번 신중한 고민과 토론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하나씩 짚어보자.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의 사실’로 규정했다. 또 현행 정보통신망법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이뤄졌을 경우에 한해 삭제 및 반박 내용을 게재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언론 기관이 아닌데도 언론보도를 가장해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정보통신망법에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의 범위에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 표명이나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제기 등은 포함하지 않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수나 의도를 구별하는 건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구분을 위한 기준을 설정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당장은 거짓으로 인식되더라도 후에 판단이 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근거 있는 의혹제기는 허위조작정보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근거의 유무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헌법재판소가 2010년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을 위헌 판결했던 것과 동일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법 제47조 제1항에 대해 공익의 개념이 불명확하며 허위의 통신이 어떤 목적의 통신인지 분명하게 하지 못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어떤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해서도 삭제 등을 요청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 또한 신중하게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며 정보통신망법 상의 임시조치(제44조의 2 제4항·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될 경우 30일 이내 범위에서 정보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가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재갈을 물렸던 상황을 목도했다. 민언련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임시조치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 신장을 위해 관련 제도를 손보겠다고 밝혔던 이유다.

 

언론중재법 상의 언론기관이 아님에도 언론 보도를 가장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방안 또한 신중히 재검토해야 한다. 언론 보도의 양식을 띤 정보로 수용자를 오인하게 만드는 건 분명 문제다. 하지만 이는 민간 자율규제 차원에서 악의성, 기망성 등을 구분하고 판단해 수용자로 하여금 가짜뉴스에 속지 않게 안내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를 만들어 대응할 문제다. 어떤 것이 허위조작정보에 해당하는지 세세하게 적시해 규제에 나설 경우, 자칫 관련 규제로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의 정당성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만들 우려가 있음을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규제가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닌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가짜뉴스는 건강한 언론 생태계가 훼손된 자리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우려가 있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규제책이 아니라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건강한 언론 생태계 회복이다. 말하자면 우선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9년 동안 언론 자유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개악한 방송·언론 관계법을 개선하는 게 먼저다. 또한 건전한 언론이 생존하고 강력해질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한 대책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입법부와 함께 건강하고 신뢰받는 언론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가짜뉴스가 힘을 얻는 현실을 연구하고 가짜뉴스에 대한 정보 구축을 위한 모니터링을 하는 등 자율 규제의 길을 찾고 가짜뉴스의 피해를 우려하는 시민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야 한다. 또한 언론 수용자인 시민들이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예방 차원의 미디어 교육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언론 수용자인 시민들이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현행법을 엄정 적용하고, 인권을 짓밟는 혐오 표현을 막기 위해 필요한 근본 대책이 무엇인지 시민사회와 함께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목적의 정당성이 결과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는 정부의 차분한 태도가 필요하다. <끝>

 

10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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