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문화부·방통위, ‘뉴스토리’ 작가 무더기 해고·불공정 계약 실태 조사 나서라
등록 2018.03.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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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촬영감독의 체불임금 900만원을 상품권으로 지급해 ‘갑질’ 논란에 휩싸였던 SBS는 지난 1월 18일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협력업체와 프리랜서들의 진정한 요구는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당한 처우를 중단하여 열악한 제작환경을 개선하라는 것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한 달 여 만인 2월 23일 SBS는 자사의 시사프로그램 <뉴스토리> 작가들을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일방 ‘해고’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후 SBS는 작가들에게 유감 표명과 함께 계약 연장 등의 협의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들이 앞으로 SBS에서 이와 같은 일방 해고 사태가 자행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등의 요구를 하자 SBS는 수용 가능 범위를 넘어섰다며 당초의 ‘계약’에 따라 3월 30일로 ‘계약을 종료’하고 불방 제작비를 사규에 따라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뉴스토리> 작가들에게 처음 해고를 통보한 때부터 지금까지 SBS가 보이고 있는 태도는 어느 하나 문제가 아닌 게 없을 만큼 엉망이다. 그런데 최근 <뉴스토리> 해고 작가 4인이 공개한 계약서를 보면 이런 엉망의 모습은 SBS가 작가들에게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이하 표준계약서)보다 후퇴한 계약서에 서명토록 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지상파 방송사들이 3년여에 걸쳐 법률적 검토와 합의를 통해 완성한 표준계약서에선 계약 기간을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변경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SBS가 <뉴스토리> 작가들에게 서명토록 한 계약서엔 ‘계약기간 중 개편, 편성변경, 프로그램 폐지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계약만료일 이전이라도 계약이 즉시 종료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SBS 사측은 자신들에 유리하게 변형한 계약서를 앞세워 <뉴스토리> 작가들과의 계약을 종료하는 것일 뿐 해고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SBS의 이런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슈퍼 갑’의 오만함이며, 애초부터 ‘을·병·정’의 노동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체결하려는 의지는 없이 밖으로 보이는 그럴싸한 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다. 그렇지 않다면 ‘슈퍼 갑’인 방송사들로부터 일방 해고를 당하는 게 일상이었던 방송작가들의 권익보호와 집필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와 방송사들이 함께 만들어 권고한 표준계약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토록 한 후, 이를 일방 해고 수단으로 악용할 순 없는 일이다.
SBS는 두 달 전 ‘상품권 페이’ 갑질 논란 당시 분노한 시청자들 앞에 내놓았던 반성과 약속의 말을 지금이라도 이행해야 한다. 해고를 철회하고 △공식 사과 △사태 경위 조사 및 책임자 징계 △재발방지 대책 수립·공개 등 작가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부패한 권위주의 정부에 휘둘렸던 공영방송들이 저널리즘의 재건을 준비하며 비단 제작 자율성과 독립성만이 아닌 차별 노동의 시정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방송사 내에 만연한 차별 노동을 시정하지 않으면서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저널리즘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는 정녕 이 흐름에서 역행하길 원하는가.

 

표준계약서를 권고한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에 책임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당국 또한 사태를 관망만 해선 안 될 일이다. 지난 연말 방송 시장 불공정관행 개선에 나서겠다고 약속한 5개 정부 부처는 SBS의 <뉴스토리> 작가 일방 해고 사태에 대한 신속한 입장 표명과 함께 방송작가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표준계약서가 왜곡·악용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

 

방송작가들과의 표준계약서 작성 논의를 진행 중이거나 논의를 앞두고 있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에게도 경고한다. 혹시라도 SBS의 ‘꼼수’ 계약에 매력을 느낀다면 그동안 얼마나 차별의 관행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간 방송사들은 슈퍼 갑으로 기능하기 위해 방송작가들을 ‘프리랜서’로 명명했지만, 방송작가들은 매주 방송을 만들기 위해 방송사의 정규직 기자·PD 등과 유기적이고 융합된 형태로 아이템 발제, 취재 등의 노동을 함께 한다. 독립된 사업자로서 혼자 작업을 진행하고 완성품을 제공해 방송사 정규직 직원들의 검수를 받는 도급계약 형태로 일을 하지 않는 게 명백한 ‘현실’이다. 방송작가를 비롯한 스텝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방송 정상화를 시작할 수 있다. <끝>

 

3월 2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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