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장삿속과 진영논리로 가득 찬 ‘노회찬 보도’ 중단하라
등록 2018.07.2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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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더불어 최소한의 원칙조차 지킬 역량이 되지 않는 언론들이 부적절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은 ‘자살 보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자살을 예방할 수도 있다’며 9가지 보도 원칙과 함께 실천 세부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관련 보도는 최소화하되, 꼭 보도해야 한다면 선정적 표현이나 상세한 설명은 피하고, 유가족을 배려하여 신중하게 보도하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무색하게 현재 언론은 노회찬 의원 관련 가십성 선정 보도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사건 발생 현장‧고인의 시신을 집요하게 보여주거나 사안과 무관한 고인의 사생활 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기본이다. TV조선은 선정적 자막을 붙여 운구 과정을 생중계했다. 온라인커뮤니티나 SNS에 올라온 고인 모독성 게시글을 아무런 여과 없이 캡처하고 상세히 소개하는 보도는 이루 다 셀 수조차 없다. 청탁과 대가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음에도, <뇌물 먹고 죽은 정치인을 미화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등장했다. 모두 검색어 유입을 통한 ‘클릭 장사’를 염두에 둔 기사로, 이런 종류의 기사는 어뷰징 형태로 여러 언론사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보수 언론은 ‘클릭 장사’를 넘어 ‘진영장사’까지 시도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노회찬 자살에 정치권 패닉…진보진영 재편으로 이어지나>(7/24)에서 “일각에선 노 원내대표의 사망이 향후 진보진영의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진보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도덕성’마저 균열되면서 ‘기존 진보 정치권 역시 썩은 건 마찬가지 아니냐. 이젠 진보의 교체도 불가피하다’라는 목소리가 분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빠르고 속 보이는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문화일보도 <정치권 “충격에 말문 막혀… 믿기지 않는다”>(7/24)에서 “진보정당이 현실정치 무대에 내세웠던 최대 무기인 도덕성의 훼손뿐 아니라 이에 따른 진보정당의 입지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 보도는 ‘진보진영이 위기에 처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표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엇보다 진영논리를 떠나 애도의 기간에 이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 자체가 악의적이다. 


한편, 경향신문은 24일자 1면 머리기사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길”>에서 “그가 목숨을 끊은 것 자체가 정치권에 향후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처럼 자살과 사회적 문제 해결을 연결하는 태도 역시 ‘자살의 유용성’을 대중에 각인시킬 수 있어 부적절하긴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고 헌신적이었던 그의 삶을 기린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부각하는 모든 보도에 반대한다. 언론에도 부디 관련 보도를 최소화해주길, 최소화한 와중에도 자살보도 권고기준(https://bitly.kr/ij3m)을 숙독하고 엄격히 준수하길 촉구한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취재해 애도와 슬픔을 ‘팔아먹는’ 언론의 행위를 자제해주길 바란다. 자살 보도는 자살 빈도와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소화하라. 그리고 장삿속과 진영논리를 앞세운 고인 모독성 기사를 즉각 중단하라. 


무엇보다 우리는 포털의 책임 있는 대책이 서둘러 마련되길 바란다. 지난해 민언련은 그룹 샤이니 멤버 김종현 씨 사망 이후 포털에 검색어 노출 제한이나 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소 정보 노출 등의 시스템 도입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반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인과 유족을 욕보이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살보도의 범람을 더 이상 방조해서는 안 된다. <끝>

 

2018년 7월 2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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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나 주변 사람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 다음 전화번호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