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검찰개혁’ 위한 ‘공보 관행 개선’, 검찰과 언론의 비판적 견제 관계 정립 계기 되어야
등록 2019.11.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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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막으려 제정했다는 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공보규정)이 언론 자유 침해 논란에 빠졌다. 검찰이 30일 발표한 공보 규정의 내용 중 일부 조항에 사회의 검찰 견제·감시를 애초부터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의 근본적 취지는 비대한 검찰 권력을 민주적으로 분산하고 견제가 가능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공보규정'은 언론의 비판과 감시를 통해 그 취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 제정되어야 하며 언론의 감시 견제를 근본적으로 막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언론도 검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습속에서 벗어나 수사 관계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권력의 감시자’로서 건전한 긴장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기준도 없는 ‘오보 기자 출입 금지’, 괜한 오해만 샀다

이번 공보규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제33조(오보 대응 및 필요한 조치) 2항이다. “검찰총장 및 각급 검찰청의 장은 사건관계인, 검사 또는 수사업무 종사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는 오보를 한 기자 등 언론기관 종사자에 대하여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건 관계인’의 인권 침해 방지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느닷없이 ‘검사의 명예’가 등장하더니 ‘오보를 한 기자는 검찰청 출입 제한’이라는 엄포로 이어지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보’의 기준조차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다. 혹여 검찰에 불리하거나 비판하는 기사들을 자의적으로 ‘검사 명예를 훼손한 오보’로 규정하여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조항은 기존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하 공보준칙)에 있던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한 기자 검찰청 출입 제한” 조항에서 보도 대상을 ‘사건관계인과 검사’로, 보도 내용을 ‘명예나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한 오보’로 구체화한 것이다. 애초 공보준칙이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하니 당연히 그 대상은 사건 관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번 공보규정에서 사실상 ‘검사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한 오보를 내면 검찰청 출입 제한’이라는 규정을 신설한 셈이다. 검찰이 ‘공보규정’ 재정립을 빌미로 검찰의 숱한 병폐에 대한 언론의 견제 및 비판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사건 관계인이나 검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오보를 내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언론이 악의를 가지고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오히려 검찰에서 기인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검찰이 특정한 의도를 가진 비공식 정보를 유출하고 이를 언론이 받아쓰면서 검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몰이가 이루어진다는 의혹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책임을 언론에 돌리고 '오보 기자 출입제한'으로 언론의 취재만 위축시키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적절치 못하다.

 

검찰 치부 고발해왔던 언론의 역할은 건드리지 말아야

검찰개혁과 함께 언론개혁의 요구도 크다는 점에서 검찰과 언론의 ‘공보관행’은 사실 양쪽이 모두 자성해야 하는 사안이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과 언론은 모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과 언론 모두 본연의 의무가 무엇인지, 자신들의 직무 원칙인지 성찰해야 하고 견제와 감시의 주체이자 때로는 그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신의 비위 관련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한겨레를 즉각 고소했고 부하 직원들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MBC <PD수첩>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의 공동취재를 통해 이른바 ‘스폰서 검사’ 및 그 측근들을 부실 수사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실태를 낱낱이 보도됐다. 비단 최근만의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드러난 검찰-정치권-재벌의 공생 관계, 2007년 이명박 BBK‧다스 사건 부실 수사,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틈만 나면 터져 나오는 전관예우 비리 의혹 등 오랜 기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들로 검찰이 사실상 권력의 꼭대기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검찰권력의 병폐가 만연한 와중에 언론은 검찰을 비판하고 감시하기는커녕, 검찰이 주는 정보에 끌려다니며 종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 본연의 의무인 검찰권력 비판 기능이 이미 약화된 상황에서, 이번 ‘공보규정’의 ‘오보 기자 검찰청 출입 제한’ 조항은 언론의 ‘검찰권력 견제 역할’에 재갈을 물리거나, 최소한 언론을 길들이는 수단이 될 우려가 있다.

 

‘검찰의 공보 관행’은 언론도 함께 고민하고 성찰해야

법무부만 ‘공보규정’ 개선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 ‘공보규정’ 내용 전반에 불만을 표하는 언론계 역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지금 언론계에서는 수사 검사의 언론인 접촉 원칙적 금지, ‘티타임’(검사가 기자와 만나 구두로 하는 사건 브리핑) 원칙적 금지, 출두‧압수수색 등 원칙적 촬영 불허, 포토라인 폐지 등 조항이 사실상 취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그동안 검찰에 출두하는 피의자, 참고인, 증인을 일단 카메라에 담아 일부 검사가 흘려준 사적 정보 및 진술들과 함께 자극적으로 보도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이번 ‘공보규정’ 뿐 아니라 기존의 ‘공보준칙’에서도 금하던 일이다. 기존 준칙 역시 검사가 특정 언론에만 피의자 신상정보, 수사 대상자의 진술 등 수사 정보를 비공식적으로 흘리는 행위를 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수사정보 비공식 유출’ 논란이 일었다. 법무부 자체 권고 규정만으로는 일부 검사와 언론인의 부당한 관행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언론도 일방의 주장을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검찰 발 비공식 정보 보도’, 인권 침해에 가까운 ‘검찰 발 수사 대상자 사생활 보도’, 부당하거나 부실한 검찰 수사의 무조건적 받아쓰기 등 그간의 악습을 청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언론이 법무부 ‘공보규정’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권력의 감시자’라는 언론 본연의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성찰적 관점을 지녀야 한다.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로서 ‘검찰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법무부가 ‘검찰개혁’을 위해 ‘공보규정’을 새로 마련한 취지 자체는 동의할 만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기존의 ‘공보준칙’ 내용을 선언적으로 되풀이 하는 경향이 강하다. 공보 관행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막고자 한다면 일부 검사와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패거리 저널리즘’을 야기한 검찰 출입처 제도의 혁신이나, 비공식적으로 수사 정보를 유출한 수사 인력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 마련 등 더 근본적인 방안들까지 검토해야 한다.

언론 역시 검찰과 부적절한 밀착 관행을 끊고 건전한 긴장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의 출발점은 ‘검찰권력 감시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법무부가 ‘공보규정’의 적극적 개선을 약속했고 언론계에서 예전과 달리 ‘공보규정’에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는 만큼, ‘검찰-언론’ 관계 재정립을 위한 사회 전반에 걸친 공론화를 기대해본다. 지금이야말로 법무부, 정치권, 언론계, 시민사회 모두가 비대해진 검찰 권력의 민주적 관리라는 대원칙 아래 ‘권력의 감시견’이라는 언론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적기이다. <끝>

 

 

2019년 11월 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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