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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미디어감시연대 논평> 21대 총선, 스스로 문제 드러낸 종편
등록 2020.04.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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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채널A 기‧자의 불법적 취재 행태와 검·언 유착 의혹은 막장의 맨 밑바닥에 도달해 있는 우리나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종편도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여론마당에 정보와 의견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기인데, ‘과연 이래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넘어, ‘종편이 사회의 공기인가 흉기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종편은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날치기 통과된 법에 근거해서 2011년 12월 1일에 일제히 출범했다.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특히 이들 중 조선일보가 대주주인 TV조선과 동아일보가 대주주인 채널A는 10년 가까운 지난 역사 전체가 ‘흑역사’였다고 할 만큼 편파와 왜곡, 오염된 언어의 남발로 인한 ‘언론불신’의 풍조를 만드는 원인이 돼 왔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종편

대표적인 두 종편이 타락에 가까운 모습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가장 근본 이유는 태생 자체가 정파적 필요성에 기인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생적 필요성이 어떻든 언론이 스스로 언론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인식하고, 소속 언론인들도 최소한의 언론 윤리에 충실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됐겠는가 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두 종편이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넘어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면서 사실상 정치 집단과 운명 공동체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종편 출범 이후 우리나라는 18대와 19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19대와 20대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두 번의 지방선거를 치렀다. 대선과 총선에 한정해서 보자면 18대 대선과 19대 총선은 종편 출범 바로 직후였고, 19대 대선과 20대 총선은 탄핵 정국, 소위 박근혜 정권 심판이라는 명확한 성격으로 인해 종편의 영향은 아주 미미했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에 충분히 전달한데다가 또 탄핵의 직접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이번 21대 총선은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렇게 볼 때 확실히 이번 총선에서 종편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했고, 특히 TV조선과 채널A의 편파·왜곡 보도는 언론으로서 도를 넘었다. 총감연이 지난 3월 첫 주부터 최근까지 두 종편의 선거 방송 사례를 살펴본 결과 구체적인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서신’ 살리기에 과도한 집착

총선을 40여 일 앞둔 지난 3월 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서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그러자 당일 TV조선 <이것이 정치다>는 입장문 발표 2시간 만에 유영하 변호사를 직접 출연시켜서 15분 동안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TV조선은 이후에도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당일 방송의 3분의 1 가량을 ‘박근혜 입장문’으로 채웠다. 수감 중인 사람이 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입장 전달이 불법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TV조선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다. 반면 TV조선은 박 전 대통령이 말한 “거대 야당”이 미래통합당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굳이 거대 야당이 미래통합당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선거에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 TV조선의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TV조선뿐 아니라 채널A와 MBN도 4일과 5일 이틀 동안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같은 기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박근혜 서신’을 보도한 시간과 방식을 비교한다면 종편들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살리기에 얼마나 매달렸는지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야당의 비례는 ‘정당’, 여당의 비례는 ‘부당’

2월 말부터 더불어민주당에서 흘러나오던 여당의 비례정당 창당 가능성이 3월 초에 들어오면서 ‘연합비례정당’ 창당으로 가시화됐다. 종편들은 친 야권 인사들을 출연시켜서 이 문제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을 집중 공격했다. 그러면서도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해서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감쌌고, 위성 정당이 만들어진 원인을 놓고는 “이상한 선거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면서 4+1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3/11)에 출연한 박선규 과학기술대 교수는 “선거법 개정할 때 ‘당신들 지금 같은 선거법 제1야당 빼고 가면 우리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야’ 하고 경고했던 겁니다”라고 말했다. 또 같은 채널A의 <정치데스크>(3/13)에서 서정욱 변호사는 “준연동형 비례를 4+1으로 강제로 밀어붙였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미래통합당은) 정당방위나 자구행위로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김진의 돌직구쇼>에서는 위성 정당의 출현을 두고 ‘이상한 선거법을 만든 여당 책임’이라는 말도 나왔다.

 

TV조선도 ‘여당 비례는 잘못, 야당 비례는 정당’이라는 입장을 철저하게 고수했다. <신통방통>(3/10)에 출연한 TV조선 최병묵 해설위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경기 도중 규칙을 바꿔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거법은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법적 절차에 따라 바꾼 것이므로 ‘경기 도중 규칙을 바꾼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또 누가 먼저 했든 결과적으로, 거대 정당의 의석수가 감소하더라도 소수 정당에게 정치 참여를 열어 줘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훼손된 데에는 두 거대 정당의 책임이 크다. 그리고 ‘우리는 법 개정에 합의하지 않았으니까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식의 주장은 의회제도에 대한 근본적 부정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종편들은 ‘여당이 법 취지를 위반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만 계속 늘어놓았다.

 

부적절한 용어 남발하고 자의적 판단 기사에 ‘팩트체크’ 간판 붙이기

어떤 사안이든 정파적 입장에 서다 보니 왜곡은 기본이고, 간혹 근거 없는 보도를 하거나 욕설에 가까운 부적절한 용어를 동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경우다. 조수진 기자는 동아일보에서 오랜 기자 생활을 했고 채널A의 간판 출연자로 활약해온 현역 언론인으로 이번 총선에서 비례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 5번을 공천 받았다. 조수진 후보의 미래한국당 공천 소식이 알려지자 몇몇 언론에서 “막말 언론인 공천”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조수진 후보가 언론인 시절 종편에 출연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대깨조”(대가리가 깨져도 조국) 같은 막말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난 2019년 당시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 가족 관련 의혹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가 관련해서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자, 조수진 기자는 ‘청와대가 아무런 답변이 없으니 곽상도 의원의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제가 오늘 박지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내가 취재한 내용과 똑 같았습니다”라고 하면서 곽상도 의원의 의혹제기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의혹 제기에 대해서 청와대가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은 사실’이고, 또 ‘박지원 의원에게 전화해 보니 내가 아는 것과 같았다’라는 이유로 의혹 제기가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기자가 사실(fact)을 확인하는 방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사실 기자라고 부르기도 어렵지만 조 기자는 채널A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비슷한 수준의 말을 자주 쏟아냈다.

 

미래한국당에 독립운동의 정통성이 있다는 황당한 주장

이번 21대 총선 보도와 관련한 종편 출연자들의 주장 중 가장 황당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미래한국당에게 독립운동의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이 미래한국당 비례 1번으로 공천되자 채널A <정치데스크>(3/24)에 출연한 이경수 글로벌 리더십연구소장은 “민주당 내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후손인 이종걸 의원은 공천 경선에서 탈락했고, 반대로 미래한국당에서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이 1번에 공천된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서 “이 한 가지만으로도 이번 선거가 어디에 정통성이 있는 건지 잘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주 지엽적이고 단편적일 뿐만 아니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례를 들어서 역사적 정통성 운운하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말 이렇게 아무런 주장이든 내뱉어도 시청자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채널A 검·언 유착 의혹, TV조선 정치 편향적 방송…존립에 영향 줄 수도

종편들이 특정 정당과 한통속이 돼 오직 선거 승리만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 침소봉대하고 혹은 방송심의 규정까지 위반한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 드러난 채널A 이동재 기자의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은 종편의 행태가 어디에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지난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에 걸쳐서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채널A의 검·언 유착 의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채널A의 존립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중차대한 사안이다. 채널A 뿐 아니라 검찰도 치명상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첫 보도 이후 벌써 열흘이 넘도록 당사자인 채널A와 검찰은 자체 조사를 진행한다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 TV조선은 이 사건을 놓고 ‘조국 지키기냐, 윤석열 지키기냐’ 하면서 엉뚱한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이런 태도는 종편들이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조차도 지킬 생각이 없다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종편 출범 후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일부 종편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점유율이 선정적 보도, 막말과 왜곡으로 만들어낸 결과인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금 모습이라면 종편은 사실을 기반한 다양한 여론을 반영하고 공론장 역할을 하는 사회의 공기라기보다는 흉기에 가깝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종편의 폐해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앞으로도 국민의 삶을 바꿀 선거는 계속될 것이고, 전파는 분명 공익적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14일

총선미디어감시연대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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