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분열과 혼란의 시대, 전통언론의 책임과 역할은 무겁고 중요하다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20.01.28 14:30
조회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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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공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선동적인 언어와 일방의 주장들이 난무하고 확증편향이 증폭되면서 극도의 정파적 견해와 진영논리가 우리 사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고 있다. 그 속에서 언론 공정성에 대한 윤리와 규범으로서의 가치마저도 흔들린다. 심지어는 “진영논리가 왜 나쁘냐”는 노골적인 ‘진영 옹호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진영논리 속에서 소통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로지 너의 주장과 나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잘잘못에 대한 성찰도 설 자리가 없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유튜브를 중심으로 개인 미디어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까닭일까. 그러나 기술발달에 따른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로 전락한 전통언론들의 책임이 너무 크다.
  
뉴스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일부 언론학자들의 세계에도 있었다. 쉬람은 “뉴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했고, 터크만은 “뉴스는 선택과 배제를 통해 재구성된 현실”이라고 했다. 기틀린도 뉴스를 “특정 시각이나 해석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재구성된 이야기”라고 규정했다. 객관성을 ‘언론의 神聖’으로까지 여겼던 언론사학자 민디치도 “객관성은 아무도 정의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뉴스의 공정성 역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진단과 논란 속에서도 뉴스의 공정성은 전통적 기관언론들에게 최고의 보루였다. 실제로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거나 지킬 의지도 없었던 수구족벌 신문들조차도 뉴스의 공정성을 대놓고 외면하거나 무시하지는 못했다. 언론인들은 취재와 편집 과정에서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의무로 받아들였고, 언론사들은 장식으로나마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나름의 취재준칙과 행동규범을 마련했다. ‘공정한 뉴스’를 자부심으로 여기지 않을 언론사와 언론인은 거의 없다. 공정성은 뉴스의 신뢰를 높이고, 공중에 대한 언론의 보편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며,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현학적 논쟁은 매우 소모적이다. 100 퍼센트 객관적이고 공정한 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론종사자의 직업윤리와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공정’은 언론이 사회 公器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가치인 것만은 분명하다. 
  
2019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사태가 해가 바뀐 지금에도 검찰개혁과 뒤범벅이 되어 증폭되고 있는 것은 정파와 진영에 의해 ‘진실’과 ‘가치’라는 두 가지 담론이 구분되지 않고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조국 일가의 반칙과 특권행위,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등에 대한 진실의 문제가 그 한 축이라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검찰권 남용과 그것이 인권과 검찰개혁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가 또 다른 한 축이다. 
  
과거 정치검사들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는 눈을 감았고 정치적 반대편에는 온갖 형태의 죄목을 뒤집어씌워 민주화를 방해하고 정의를 왜곡했다. 검찰은 증거를 조작해 무고한 청년을 유서대필의 파렴치한으로 몰았고 서류위조까지 불사하면서 간첩을 만들어냈다. 이런 천인공노할 검찰의 만행은 국민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국민은 과거와 달리 살아있는 권력에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는 오늘의 검찰에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수사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의 어두웠던 검찰의 모습을 기시감으로 느끼기도 한다. 
  
언론의 문제로 돌아가면, 언론의 ‘정치적 독립’ 역시 일방의 편파보도가 난무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보다 진일보 한 것은 분명하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비판의 날을 세우는 언론의 용기 있는 태도는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모습이며 평가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과 마찬가지로 언론개혁 역시 언론의 ‘정치적 독립’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입처 제도의 폐해 등 언론사 내에 뿌리 박혀있는 잘못된 관행들이 타파되지 않고서는 언론개혁이 완수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 기관언론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진영에 포박된 정파적 개인미디어들이 마음 가는 대로 행사하는 그런 자유와는 다르다. 공중에 대한 의무를 가진 전통언론의 책임과 역할은 그래서 무겁고 중요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진실담론’과 ‘가치담론’이 뒤섞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국사건, 감찰무마 의혹, 선거개입 의혹 등에 대한 검찰수사는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의혹에 대한 진실 찾기의 출발점이다. 그에 대한 언론보도가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진실 찾기는 검찰 일방의 정보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법원의 재판과정을 포함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언론의 다양하고 치열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잔존해 있는 검찰내부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검찰개혁’이라는 가치담론에 의해 묻히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진실이 무덤 속에 들어갈 때 의혹은 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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