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한 언론노동자가 남기고 간 것
이기범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위원)
등록 2020.08.24 15:05
조회 208

208703_323699_5325.jpg

(* 사진출처: 미디어오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11일 저녁 6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이재학 PD 뜻을 이어가겠다"는 매듭짓기 행사를 열었다.

사진은 행사장에 걸린 이재학 PD 걸개 그림.

 

한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인정받고, 방송계 내 부조리한 노동구조를 세상에 알리는 데에는 삶을 마치고 나서도 170여 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故 이재학 PD는 2004년부터 2018년 4월까지 방송 업무에 종사해 왔다. 그의 삶이 담긴 227페이지 보고서1와 10페이지가량의 합의서2를 따라가 보자. 고인은 2004년 청주방송 음악프로 조연출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음악방송과 특집 방송에 참여했고, 2008년 청주방송 자회사 엔터컴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사 후에도 개인 사업자 명의(2011.3~2013.11)와 개인 자격으로 방송 업무를 해왔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고인은 행사 관련 예산을 직접 짜기도 했고, 기안을 올렸고, 이미 제작한 프로그램 수정을 고인에게 요청했고 중계차를 타기도 하면서 조연출, 송출, 진행, 연출을 담당했다. 책상은 엔터컴과 기획제작국의 공용 사무실에 있었고, 각종 사업계약서 및 정산 시 AD, VJ, PD 등으로 기재했다. 2017년 약 1주일간의 업무 스케줄3을 보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력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4월 이재학 PD는 기획제작국 회의에서 스텝들의 인건비를 요구하면서 언쟁이 발생했고, 이후 그가 담당했던 프로그램에서 손을 떼게 됐다.

 

해고에 맞서 원직 복직 요구 소송을 약 1년 4개월간 진행하다 2020년 1월 22일 패소했다. 당시 생계를 퀵서비스 등으로 이어나갔다. 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회사 측의 허위 주장과 진술 등에 억울해했고, 진술을 번복한 동료를 원망하기도 했다. 청춘을 바쳐 일해 온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에 괴로워했다. 2월 4일 유서에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동료들은 이재학 PD를 ‘늘 헌신적이었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가 다닌 방송사 인력 구조는 정규직 78명, 비정규직 42명(도급, 파견, 프리랜서4)으로 비정규직은 2~30대가 28명으로 82%를 차지했고, 채용 공고(19명)를 통하거나 지인 소개(11명)로 입사했다. 근속기간은 3년 미만이 절반을 차지했고, 임금은 전반적인 업무량 대비 낮은 수준이었다.5

 

진상조사에 따른 이행 조건을 합의하는데 투쟁이 필요했다. 천막농성, 대주주 두진건설 앞 투쟁 등 언론노조, 청주지역 노동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대책위 그리고 유족들이 앞에 나섰다. 7월 23일 ‘청주방송은 고인의 사망에 관한 책임을 통감하고,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대하여 최초 4자 대표자 합의 정신에 따른다’고 했다. 또 고인의 명예 회복과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 개선안을 성실히 이행한다고 합의를 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이 이뤄진다. 노동자성 인정과 불법 파견 직군에 해당하는 노동자 9명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3명씩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방송작가 고용안정 방안 마련을 위해 TF를 구성하고, 정규직 전환 전까지 프로그램별 계약이 아닌 청주방송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또 파견직 노동자 직접 고용은 청주방송 노사 교섭으로 3개월 이내에 합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비정규직 노동자 운용 지침 마련, 촬영물 불방 시 보수와 휴업수당 지급, 운전기사 대기실 변경 및 근무환경 개선, 노사협의회 노동자위원에 비정규직 대표 참여 보장 등도 합의에 포함됐다.

 

단순히 한 방송사의 노력만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될 수 없기에 비정규직 관련 법 제도 개선도 주문했다. 특히 방송산업 비정규직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며, 조사를 근거로 고용구조 개선 방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재허가 조건에 고용 건전성 평가 항목 마련해야 하며, 방송 비정규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표준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방송법 안에 방송근로자 정의를 포함하고, 각 방송사에서 상생협의회 구성을 제도화하자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개선방안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함께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1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진상조사 기간 2020. 3.1~2020.6.1.)

조사위원: 김혜진(시민사회 추천)/ 이용우, 윤지영, 김유경(유가족 추천)/권두섭, 김순자, 김민철(노동조합 추천)/ 조민우, 김종기, 황현구(회사 추천).

22020.7.23. 4자 합의서(유족 대표 이대로, 대책위 공동대표 이용관, 언론노조 위원장 오정훈, 청주방송 대표이사 이성덕)

3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53페이지. 피플&이슈, 청풍논객, 아름다운 충북, 쇼! 뮤직파워, 로그인코리아, 토크콘서트 화통, TV닥터 건강클리닉 등 2017년 당시 고인이 참여한 프로그램 명.

4도급: MD 4명, 경비 2명, 청소 2명/ 파견:운전 9명, 행정 5명, CG 2명 / 프리랜서: 리포터 4명, 분장 1명, 작가 9명

5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139페이지. 프리랜서 월250만원 6명, 180~190만원 4명, 200만원 4명, 210만원 3명, 220만원 3명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