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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역사의 좌표를 위한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박태순)
등록 2016.01.0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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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소녀상을 왜 지켜야하나
소녀상, 역사의 좌표를 위한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박태순(민언련 정책위원)

 

 

당사자, 국민이 배제된 위안부 협상 합의
지난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 최종 합의가 발표되고 나서 국내 여론은 정부의 밀실, 졸속, 굴욕적 협상에 대해 비판 소리와 원천 무효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수상은 정부의 대표자로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 한다’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하겠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된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과 법적 책임, 배상의 의미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마치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로 인한 희생에 대한 유감과 이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져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한국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하여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피해 당사자들이 배제된 채 이루어진 이러한 정치적 결정의 대하여 국민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정서가 가득하다.


지난 12월 30일 온라인 매체인 <돌직구 뉴스>가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에 대해 ‘신중치 못한 합의’라는 의견이 62.2%로 나타났으며,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74.6%로 나타났다. 5일 중앙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53.7%)이 ‘만족한다’는 응답(35.6%)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또한 소녀상 이전에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는 응답(74.4%)이 다수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위안부 협상 합의는 어떠한 역사적 정당성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 담합의 산물인 ‘불가여적 합의’가 한·일 양 국민 간에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소녀상, 정치적 흥정 대상이 아니다
일본정부는 합의문 발표이후 국내의 반대여론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의 프레임대로 위안부 협상에 한 후속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가고 있다. 지난 12월 28일 일본정부는 한국 정부가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합의에 따라 적절하게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월 5일에는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가 우려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적절하게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표명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스가 관방장관의 발표로 인해 위안부 협정 문제의 중심 이슈가 내용에 대한 문제에서 소녀상 철거 문제로 변해 버렸다. 이제 시민들은 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싸움에 매달리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지난 12월 30일 이후 대학생과 위안부 할머니들, 시민들은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한·일간 위안부 협상 폐기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촛불문화제와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결책을 만들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전혀 다른 합의를 내놓았다. 그리고 뒤늦게 일본과의 정치적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민을 설득하려 나서고 있다. 공소시효가 없는 ‘반인륜 범죄’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협상이 이제는 소녀상을 제거하는 압박이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소녀상은 역사를 위한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
소녀상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조형물이 아니다. 소녀상은 과거 역사적 사건을 지정화(localization)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제의 반인륜적 범죄와 이 범죄의 희생, 그리고 인류의 비극적 역사의 한 지점을 형상화 시키고, 현재에 지정학적으로 자리매김 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 사건에 대한 가시적이고 지정학적인 자리매김을 통해 역사는 현재화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역사는 현대인들의 인식 속에 살아있는 기억으로 존재하게 된다. 소녀상은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의 형상화인 동시에 지리적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상징체이다.


모리스 알박흐(Maurice Halbwachs)에 따르면, 기억의 지정화는 그 기념물을 보는 사람과 그 기념물이 표출하는 정신을 가로지르는 이미지로부터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지정화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인식을 불러일으키며, 기억에 대한 사회적 틀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통의 감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이런 점에서 소녀상은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일본사회 더 나아가 인류에게 과거 반인륜적 역사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의 틀을 만들어주는 기억의 지정화라 할 수 있다.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한국인, 일본인을 넘어서 모든 인류에게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따라서 현재의 일본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에 대하여 진정으로 반성하고, 여타의 아시아 국가와 자신들에 의해 희생이 된 정신대 할머니들과의 공통의 기억과 인식을 갖고자 한다면 오히려 소녀상을 대사관 앞마당에 설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미래와 후세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습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건축한 베를린의 유태인 박물관은 홀로코스트의 의미를 정신적, 물리적으로 이해시키고 비극의 역사를 심도 깊게 표현하는 기념물로 세워졌다. 추방, 이주, 감금, 죽음, 홀로코스트에 의한 역사의 단절 등 유태인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구성하면서 인류의 비극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독일은 나찌의 만행과 홀로코스트에 대하여 주변 피해 국가 및 유태인과 공통의 기억과 인식을 공유하면서 후세대를 향해 역사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과 독일의 전후 태도를 비교하고 일본의 보다 진지한 역사적 반성과 실천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통의 집단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녀상은 한국사회 뿐 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도 중요한 역사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상징물인 것이다.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