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전통 미디어의 멸종, 위기일까? 기회일까? (김동민)
등록 2016.10.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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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신구 미디어의 미래 

전통 미디어의 멸종, 위기일까? 기회일까?


김동민(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인 독일 ‘악셀 슈프링거’의 최고경영자(CEO) 마티아스 되프너가 전통의 미디어에 대해 ‘멸종 위기’를 경고했다. 중앙일보 2016년 9월 29일 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전통의 콘텐츠 생산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사용자에 의해 생산된 콘텐츠와 상업적 이해에 따라 만들어진 전문적인 정보만이 넘쳐나는 일종의 독점적 체제가 형성될 것”이고 “소문과 사실이 뒤섞이고 선전·선동과 정보의 자극적 혼재 상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미디어의 몰락은 곧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진단도 했다.

 


 

멸종 위기라는 전통 미디어는 그동안 여론을 독점적으로 지배해온 지상파 방송과 메이저 신문들을 의미한다. 되프너는 사용자에 의해 생산된 콘텐츠의 독점적 체제를 우려했지만 진짜 독점적 체제의 폐해는 전통 미디어가 보여주었다. 전통 미디어가 멸종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도 위기일까?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미디어와 저널리즘 변화

저명한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2011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미래의 물리학(The Physics of the Future)』에서 신문사의 입지가 날로 좁아지고는 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정신분열에 가까운 해괴한 논리에 시달린 대중들이 결국은 지혜를 찾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사실(fact)은 지혜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정신 나간 블로거들의 헛소리에 염증을 느낀 미래의 네티즌들은 지혜가 담긴 글을 갈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이나 신문사가 생존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카쿠는 대부분의 기술이 4단계의 변화를 겪고 있다면서, 종이는 마지막 4단계에 접어든 상태로 가장 쉽게 버려지는 물건이 되어 도시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도 4단계에 도달하여 귀중품이 아닌 생필품이 되었다. 

 

 


반면에 컴퓨터는 IBM의 1단계와 퍼스널 컴퓨터의 2단계를 거쳐 인터넷의 3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머지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변 환경을 장식하는 4단계로 접어들 것이라고 한다. 카쿠의 5년 전 예견이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디어와 저널리즘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연동되어 변화한다. 따라서 종이신문 및 지상파방송의 몰락과 인터넷의 지속적인 발전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멸종기로 가는 ‘공룡’ 전통 미디어, 새로운 ‘종’에 자리 내줄 것    

생명의 역사에서는 숱하게 많은 종들이 등장했다가 멸종하곤 했다. 지금도 한 해에 3만 종이 넘게 멸종하고 있다. 그 사이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한 종의 사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주름잡던 한 무리의 종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6,5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 시기에 공룡이 멸종했는데, 이로 인해 포유류의 세상이 되었고 먼 훗날 인류의 조상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어떤 종의 멸종은 다른 종에게는 기회인 것이다. 인류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개 포유류의 존속기간이 100만 년이라고 하니 현생인류는 80~90만 년 남은 셈이 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멸종하든지 다른 종으로 진화하든지 할 것이다.

 

 

전통 미디어의 멸종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할 수는 있겠다. 언어나 문자와는 달리 기계적 수단인 매스 미디어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명멸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인쇄기술의 발달이 신문을 낳았고, 전자기학에서 예견한 전파의 발견이 방송을 낳고 컴퓨터를 낳았다. 책상 위의 컴퓨터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었으며 사물인터넷(IoT)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지금의 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양자컴퓨터의 등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 이래 처음 겪는 전통적 지배 미디어의 대멸종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되프너가 말한 “소문과 사실이 뒤섞이고 선전·선동과 정보의 자극적 혼재 상태”나 카쿠가 말한 “헛소리”는 같은 얘기다. 그러나 이게 인터넷만의 문제일까? 대한민국에서 전통적 미디어의 선전·선동과 헛소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해괴한 논리와 헛소리에 염증을 느낀 네티즌들은 지혜가 담긴 미디어를 갈구하고 있다.

  

전통 미디어는 공룡과 같은 존재다. 자연 생태계에서 공룡이 멸종하고서야 작고 왜소한 포유류들이 비로소 마음껏 자연을 활보하며 성장하고 다양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듯이 미디어 생태계도 전통 미디어가 멸종하면 미디어 다양성이 확보되면서 새로운 저널리즘의 전통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희박하지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다른 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류와 문명의 짧은 역사에 비하면 전통 미디어 종의 200년 지배는 공룡의 1억 8천만년 지배에 가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