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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귀족노조.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동절
등록 2017.05.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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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이 가져온 장미대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촛불대선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장미대선도 나쁘지 않은 이유는 대선 한복판에 세계노동절이 있기 때문이다. ‘빵과 장미’ 19세기 초기 노동운동의 요구를 압축한 구호이다. “오늘 우리가 교수대에 올라야 한다면 내일 우리가 의회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고 절규했듯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상과 정치적 권리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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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빵과 장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미국 노동자들. '빵'과 '장미'는 '노동권'과 '참정권'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촛불항쟁도 권력 농단으로부터 촉발됐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안보위기론이 색깔론으로 변질됐다면 경제위기론은 강성 귀족노조 논란으로 이어졌다. 낡은 이념공세로 보수와 진보 대결로 가겠다는 기득권 세력의 선거전략에 일부 언론도 동조하고 있다.

 

선거초반 동아일보는 “강성 귀족노조와 전교조 응징하겠다”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인터뷰를 실었고(4.10) 중앙일보는 “욕먹더라도 강성 귀족노조 적폐 해결”을 제목으로 뽑았다(4.17). 방송토론이 시작되자 홍 후보는 “경제위기의 본질은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강성노조에 얹혀서 정치한다”고 비난했고 ‘한결같은 홍준표...노동절에도 강성 귀족노조 때리기(아시아경제 5.1)’로 이어졌다. 

 

나는 강성 귀족노조와 싸워 이겼다? 

 

홍 후보는 경남지사 시절(2013년) 강행한 진주의료원 폐업과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반대한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이하 진주의료원노조)와 전교조를 예로 들면서 강성귀족 노조와 싸워 이겼다고 주장했다. 폐업 정당성 여부는 따로 논한다 하더라도 진주의료원노조가 강성 귀족노조인지, 홍 지사는 그 싸움에서 이겼나를 살펴본다. 

 

진주의료원노조는 1999년 딱 한 차례 파업을 했으며, 직원 임금은 5년간 동결됐고 폐업 전 8개월간은 임금이 체불된 상태였다. 홍 지사는 만성적자 병원에 연봉 8천만 원 노동자들이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고, 노조는 임금명세서를 공개하라고 맞섰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취재거부와 고소고발을 남발할 때 보수언론에서는 ‘강성노조에 굴복하지 않는 도지사’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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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진주의료원 강제 폐업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선 보건의료노조. <사진출처 : 민중의 소리>

14년간 무파업에 체불임금 사업장이 강성 귀족노조라는 주장도 언어도단이지만 지난해 대법원은 “도지사가 의료원을 폐업한 것은 권한 밖의 일로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도의회가 나중에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법원이 취소 결정을 해도 원상회복이 불가함으로 폐업결정을 취소하지는 않는다“고 이해하기 힘든 판결을 했다. 이에 앞서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사태의 진실을 보도한 <한겨레> 최상원 기자를 상대로 허위사실보도와 명예훼손으로 1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주민소환운동으로 번진 무상급식 지원 중단 소동이 전교조 굴복과 무관함은 물론이다. 결국 홍 후보는 위법한 권한남용으로 갈등을 조장했고, 손을 봤다는 대상은 공공의료와 급식중단을 당한 ‘서민’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들었나

 

그렇다면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 프레임은 모두 거짓인가. 홍 후보는 “3% 고액연봉자들이 파업을 일삼아 기업이 해외로 나간다”며 “해고를 쉽게 해야 정규직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나는 마치 ‘살인 많아야 자살이 줄어든다?’와 같은 궤변에 동의하지 않지만 노동시장 격차 해소에 기여하지 못한 노동운동의 한계를 반성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그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들었나? 의 관점에서 대안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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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를 쉽게 하면 비정규직이 없어진다고 주장하는 홍준표 후보. <사진출처 : JTBC 뉴스룸 캡쳐>

 

현대차 노사관계를 연구한 박태주 박사는 “임금에 대한 욕망은 고용불안의 사생아”라고 규정했다. “있을 때 더 벌자”는 심리는 1998년 1만 명이 넘는 정리해고의 트라우마이고,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26명이 죽어간 ‘사회적 살인’을 지켜본 뒤 더욱 강화됐다. 대기업 정규직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해고를 쉽게 하자는 주장은 또 다른 이기주의자를 양산할 뿐이다.  

 

국가와 사회가 최소한 아이들 교육과 노후를 함께 책임질 테니 정규직 노동조합도 비정규직과 함께 살자고 제안해야 되지 않을까. 일하는 사람 모두가 기뻐해야 할 노동절에 쉬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비명횡사한 무노조 삼성의 하청노동자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추모했고 다짐했지만 김 군 1주기에 우리는 또다시 슬픈 노동절을 맞이했다.   

 

김영훈(전 민주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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